[직설] 개인과 개인
“연수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과 충고를,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으며 30대를 보냈다.” 소설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마주치면 똑같은 글씨인데도 굵게 도드라져 보인다. 별일 아니라는 듯 문체는 덤덤하지만 조언과 충고보다 비난과 조롱을 받는 것이 별일 아닌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일까. 안보윤의 ‘너머의 세계’(<현대문학> 2023년 5월호)에 나오는 연수라면 그렇게 말하는 일도 어색하지는 않다. 한때 중학교 교사인 연수는 도를 넘게 장난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학생 한모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한모가 자신이 교실에 들어가려는 찰나마다 앞문을 닫아버리거나, 다른 학생들 앞에서 놀리듯이 햄스터 같아서 귀엽다고 말하거나, 여교사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물리적으로 위협할 때마다 연수는 교사로서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고 당황하거나 혼자서 괴로워할 뿐이다.
그러나 연수를 정말 괴롭게 하는 것은 단지 한모의 지나친 행동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다른 편에 있다. 학교로 찾아와 연수를 아동학대로 교육청에 신고하겠다고 소리치는 학부모, 사태 해결을 위한 적절한 절차를 밟기보다는 교육청에 민원이 들어가지 않고 학교 차원에서 처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교장과 교감, 괴롭힘을 당한 교사를 오히려 탓하고 지적하는 동료 교사들의 말에 시달리다가 연수는 결국 학교를 떠나고 만다. 연수가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던 이유는, 어차피 사건은 아무 일 없음으로 결론이 나고 말 테고, 자신이 병가나 휴직계를 내고 나면 학교는 다시 평화로워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교를 떠나 이제 어떤 곳에도 몸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끝나는 소설의 마무리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비하면 차라리 행복한 결말처럼 보인다. 지난달 근무하는 초등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교사, 아동학대 혐의로 학부모에게 고소를 당해 직위가 해제된 특수교사를 떠올려본다면 말이다. 소설과 현실의 근본적인 공통점이라면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공적인 교육 체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학부모와 교사 개인끼리 서로를 고발하며 맞서게 되는 구조다. 특히 유명 웹툰 작가가 자신의 아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를 신고한 사건은, 작가가 아동학대 혐의의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이나 발달장애학생이 교실 내에서 취했던 특정한 행위 등으로 자극적으로 소비되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정동을 쏟아낼 계기라도 만났다는 듯 인신공격과 장애아동혐오로 얼룩진 장으로 번졌다. 며칠 전에는 해당 작가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이 증설될 수 없도록 비장애인 학부모들이 조직적으로 반대서명을 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대립 구도가 재생산, 강화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교권 문제가 단지 일부 학부모의 극성 민원과 일부 교사의 고된 경험에서 비롯했다는 착시를 일으킨다. 장애학생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특수학급 증설 반대서명을 한 학부모이기 이전에 차별 없는 통합교육 구축을 위한 제도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고 특수교사 개인의 희생에 기대는 교육 시스템이고, 교사 인권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교사를 고발한 일부 학부모이기 이전에 교사들이 학교에서 노동자로서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인력과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제도적 환경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시스템에서 각각 보호받지 못한 개인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고발하는 방식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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