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LH의 눈속임 쇄신
도마뱀한테 손가락을 물린 소년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죠, 이탈리아의 거장 카라바조 작품입니다.
위기의 순간, 도마뱀은 위장술에 능합니다. 주변 색깔에 묻혀 최대한 몸을 감추기도 하고 더 급할 땐 스스로 꼬리를 잘라내기도 하지요.
여기서 나온 말이 '꼬리 자르기'. 공동체가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특정인에게 책임을 지워 내쫓을 때 흔히 쓰는 표현입니다.
"내 마음 같아서는 내가 총대를 메고 싶은데…나는 계장 아이가" -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부패에 연루된 세관들이 조직 보호를 명분으로 꼬리 자르기에 나섭니다. 주인공은 부양 식구가 적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밀려나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사람이 총대 메라, 이거였죠.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로 한국토지주택공사, LH 임원 4명이 총대를 메고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사실 이들은 임기가 이미 끝났거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던 사람들이었죠.
철근 누락에 이은 전수조사 대상 누락, 사실 은폐 등으로 인적 쇄신을 전면에 내걸며 꺼내든 '전체 임원 사직서 제출' 카드가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던 겁니다.
사실 처음도 아닙니다. LH는 2년 전 부동산 투기 논란 때도 상임이사 4명을 교체했지만, 이 중 2명의 임기는 달랑 9일 남은 상황, 심지어 퇴직 임원 전원은 연봉 1억 원 수준의 사내 교수로 다시 임용됐습니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학생이고, 건달은 싸워야 할 때 싸워야 건달입니다. 주둥이로 나불나불한다고 다가 아닙니다" -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어차피 그만둘 임원들을 앞세워 쇄신이랍시고 발표하다니, 이거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국민 기만 아닐까요.
도마뱀이 스스로 잘라 내버린 꼬리를 재생시키기 위해선 에너지의 대부분을 다 쏟아야해 그동안은 성장이 멈추는데, 그나마도 재생된 꼬리는 볼품도 없고 제 기능도 다 못합니다.
그런데도 보여주기식 꼬리 자르기만 하시겠습니까. 그럼 결말은 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제 기능 다 하지 못하는 꼬리라도 달고 어떻게든 연명해 보겠다고요? 그런데 어쩌죠, 꼬리를 잘랐다고 해서 모든 도마뱀이 다 사는 것도 아니라네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LH의 눈속임 쇄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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