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와 환율, 한국 경제 상저하고의 조건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3. 8. 1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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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저신용 대출 크게 줄면서
저신용층 소비 실종 우려
일본‧중국 환율로 비상인데
원화 환율은 이들보다 더 상승

# 정부는 올해 경제 성장이 상반기에는 저조해도 하반기에는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는 수출 반등이라는 전제를 깔고 내놓은 주장이다. 그러나 수출 회복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 이에 따라 최근 살아나고 있는 소비를 하반기 반등의 발판으로 삼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와 함께 성장의 규모를 제대로 표현해줄 환율 안정도 동반돼야 한다. 이른바 상저하고가 가능해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지 알아봤다.

신용 취약층이 불법 대출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불법 카드 대출 광고물. [사진=뉴시스]

■ 상저하고의 조건➊ 소비=올 하반기 경기 회복은 수출이 아닌 소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살아나서 이제 넉달 정도 남아있는 하반기 성장을 이끌긴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소비심리가 개선되면서 소매 판매는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기대인플레이션율은 낮아지고 있는 점은 희망적이다. 한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올해 1월 전월 대비 -2.1%에서 시작해 2월 5.3%, 3월 0.4%를 기록했다. 4월 소매판매는 -2.3%였지만, 5월과 6월에는 각각 0.4%, 1.0% 증가했다.

기대인플레이션율도 올해 3월 3.9%에서 4월 3.7%, 5월 3.5%, 6월 3.5%에 이어 7월에는 3.3%로 낮아지는 추세다. 기대인플레이션은 경제주체들이 현재 정보를 바탕으로 예상하는 1년 후의 물가상승률을 말한다.

그런데 최근 중·저신용자들의 경제 시스템 이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이 양정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신용회복 신청 건수는 올해 급증했다. 신용회복 신청자 수는 2018년 10만6808명에서 2021년 12만7147명, 2022년 13만8202명, 2023년 6월 말까지 9만1981명이었다.

중저신용자는 신용 평점이 하위 50% 이하인 사람이다. 정부가 정책자금을 편성하고,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늘리려는 이유도 중·저신용자가 금융 시스템에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본이 엔화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자 구두개입에 나섰다. 사진은 스즈키 슌이치(왼쪽) 재무장관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뉴시스]

그런데 올해 들어서 저축은행, 인터넷전문은행이 중·저신용자 대출을 줄이면서 서민 대출이 카드사로 몰리기 시작했다. 저축은행은 연체율이 상승하자 올해 2분기 중금리대출 규모를 1년 전보다 50% 줄였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올해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취급액을 6개월 만에 각각 30.3%, 61.4% 늘렸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2분기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은 각각 27.7%, 24.0%로 정부가 제시한 연말 목표치에도 미달했다.

중·저신용 대출 수요는 장기카드대출(카드론), 정책자금 등으로 몰렸다. 하지만 정책자금인 햇살론 조달금리, 카드론 대출금리는 다시 상승하는 추세다. 전업 카드회사 7곳의 올해 2분기 카드론 규모는 6개월 전보다 3.5% 늘어났고, 금리도 6월 말 기준 연 12.88~14.76%로 상승세다.

대부업체들도 대출을 줄이고 있다. 14일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우수 대부업체 20곳의 대출 잔액은 1년 전보다 30% 줄어든 1459억원이었다. 2021년 7월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24%에서 20%로 인하됐는데, 대부업체들은 조달금리가 높아지면서 신규 대출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소비를 진작시키는 방법은 다양하다. 기준금리 인하, 대출 규제 해제, 현금 지원금, 세율 인하 모두 소비 지표에 도움이 된다. 정부가 주도하는 토목 공사를 늘리거나, 금융 규제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경제주체가 빚을 감당 못 해 지급불능 과정에 빠지면, 어떤 경제 부양책을 써도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

개인회생은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개인에게 채무 일부를 일정 기간 변제하고 나머지는 면책해 주는 제도다. 개인파산은 재산과 소득이 전혀 없어 생계의 위협을 받는 수준까지 떨어진 개인의 모든 채무를 면책하는 제도다.

법원의 판단으로 개인 파산자도 복권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파산 이후 10년이 지나면 법원의 판단 없이도 복권된다. 개인파산 선고를 받으면 공무원 등 150여개 이상의 직업을 가질 수 없고, 은행연합회에 5년간 기록이 보존돼 금융거래에 제한을 받는다. 5~10년은 경제 시스템에서 사실상 이탈한다는 뜻이다.

정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2019년 '정책성 서민금융상품 이용자의 행태 분석' 보고서에서 정책자금인 햇살론 이용자 7365명을 조사한 결과 "햇살론으로 완화된 차입제약이 이용자의 소비 수준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햇살론 이용자의 월별 카드 지출액은 미이용자보다 19만5000원 증가했다.

■ 조건➋ 환율=한국은 유엔의 경제 규모 조사에서 2020년과 2021년 10위를 차지했지만, 지난 7월 발표한 2022년 순위에서는 13위를 기록했다. 당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단기적으로 환율 변동으로 인한 순위 변화"라며 "우리는 지난해 석유 가격 상승 등으로 달러 대비 환율이 많이 절하됐는데, 순위가 오른 국가는 에너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라 환율 영향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올해 기준금리의 추가 인상 없이도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원화의 변동성이 유독 크기 때문이다.

최근 1개월 동안 원‧달러 환율 상승 속도는 다른 통화들에 비해서 상당히 빨랐다. 원화 가치는 러시아 루블화보다는 덜 하락했지만, 일본보다는 더 떨어졌다. 16일 기준으로 최근 한 달 동안 일본의 엔‧달러 환율은 145.44엔으로 4.87% 상승하고, 러시아 루블화 환율은 7.62% 상승했는데, 원‧달러 환율은 최근 1개월 동안 5.22% 상승했다.

러시아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자 15일 기준금리를 8.5%에서 12.0%로 3.5%포인트나 인상했다. 루블화 환율은 지난해 8월 달러당 61.27루블에서 올해 8월 14일 장중 달러당 102루블까지 상승했다. 러시아가 금리를 인상하자 15일 루블‧달러 환율은 달러당 97.01루블까지 내려왔다.

일본도 환율 상승에 위기감을 느끼고 구두개입에 나섰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은 15일 "외환시장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며 "과도한 움직임에 적절한 대응을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되는 것도 문제다. 미국의 금리가 오르면 달러 가치도 상승한다.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가 6월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금리차까지 최대 수준으로 벌어져 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올해 1분기 1.25%포인트에서, 2분기에는 1.75%포인트, 현재 2.00%포인트까지 확대됐다. 달러 인덱스는 지난 7월 19일 99.98에서 8월 1일 102.08, 15일 103.09까지 올라갔다.

중국이 디플레이션 위기에 빠지면서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도 부담이다. 한국 원화와 중국 위안화는 대체로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고, 산업 여러 부분에서 한데 묶여있기 때문이다.

원화는 2018년 이후 중국 위안화와 연동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원화와 엔화의 움직임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대조된다. 2022년 이후에는 한국 원화와 중국 위안화 간 동조화 현상이 심화했다.

원‧달러 환율과 위안‧달러 환율 간 상관계수는 2021년 0.65에서 2022년 0.96으로 상승했다. 8월 들어서도 비슷한 움직임이다. 지난 1일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90.50원, 위안‧달러 환율이 달러당 7.18위안이었다.

러시아가 루블화 환율이 급등하자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했다. 사진은 모스크바 시내 외환거래소 건물. [사진=뉴시스]

8일에는 원‧달러 환율은 1320.00원, 위안‧달러 환율은 7.23으로 동반 상승했다. 두 나라 환율은 11일 달러당 1332.00원과 7.26위안으로, 16일에는 달러당 1337.10원과 7.30위안으로 또 상승했다.

우리 무역수지가 2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은 환율 안정이라는 면에서는 도움이 된다.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무역수지는 올해 6월 11억4600만 달러, 7월 16억52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다만, 이는 수입이 수출보다 더 줄면서 생긴 불황형 흑자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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