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가 변질시킨 ‘참교육’ 어떤 말인지 알려주고 싶어요”

강성만 2023. 8. 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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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바늘 끝에 사람이’ 펴낸 전혜진 소설가
전혜진 작가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소설가 전혜진(43)이 최근 낸 단편집 ‘바늘 끝에 사람이’(한겨레출판)는 한국전쟁과 제주4·3, 광주민주화운동, 전국교직원노조 창립 등 한국 현대사에서 일어난 국가폭력 문제를 들여다본다.

4·3을 다룬 단편 ‘단지’는 국군의 무차별 학살로 가족을 잃은 무당 소화가 죽은 이들의 손가락과 손톱을 모아놓은 단지를 매개로 이야기를 풀었고 ‘너의 손을 잡고서’는 광주 학살 현장에서 죽은 자를 살리려고 피를 뽑았던 여고생 미경이 훗날 양호 교사가 되어 여학생들에게 성희롱을 일삼는 동료 교사의 폭력에 맞서 학생들을 지킨다는 이야기가 뼈대다.

작가 정보라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분들의 투쟁을 글로 옮길 자신이 없다. 전혜진 작가는 그 투쟁의 무게를 차분하고 명징하게 전달한다. (…) 전 작가의 글은 꼿꼿하고 강하다.”

어려서부터 순정만화 덕후였다는 전 작가는 2007년 라이트노벨(삽화가 들어간 오락성 강한 소설) ‘월하의 동사무소’로 데뷔한 이래 에스에프(SF)와 호러, 추리, 사극 등 이른바 장르소설 작가로 활동해왔다. 한국 고전 속 여성 영웅을 탐색한 ‘규방의 미친 여자들’이나 세계 수학사의 여성 인물을 알리는 ‘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 등 논픽션도 여러 권 냈다. 3년 전에는 순정만화 덕후 내공을 살려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라는 책도 썼다.

전 작가를 지난 14일 오후 경기 부천시 삼산체육관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바늘 끝에 사람이’ 표지.

이번 소설집 ‘바늘 끝에 사람이’ 역시 호러와 스릴러 등 장르 소설적 특성을 차용하고 있다. 특히 표제작인 단편 ‘바늘 끝에 사람이’는 150년 뒤 미래의 노동권을 다룬 에스에프로, 산재로 한쪽 팔을 다친 노동자가 작업 능률을 따지는 자본의 요구로 멀쩡한 다른 팔까지 기계로 교체한 뒤 ‘회사 소유 몸’이라는 굴레에 묶여 착취를 강요당하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먼저 국가폭력 주제로 소설집을 낸 이유를 묻자 전 작가는 ‘참교육’이란 말을 꺼냈다. “요즘 일베 같은 곳에서는 누굴 두들겨 팼다, 크게 혼쭐을 냈다는 말로 참교육을 쓰더군요. 전교조 선생님들이 민주주의적이고 인간을 존중하는 교육을 하겠다는 뜻으로 썼던 말이 폭력적인 뜻으로 바뀐 거죠. 전교조 선생님들은 참교육을 말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고 일부는 죽기도 했잖아요. 참교육이란 말이 일베와 그 배후 세력에 의해 변질되기 전에 어떤 말이었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가 이번 책에 실은 단편 ‘안나푸르나’는 ‘참교육’을 부르짖으며 교사를 폭행하는 요즘 학부모 유튜버와 1980년대 말 ‘참교육’ 배지를 달고 학생들에게 사랑을 베풀다 갑자기 사라진 교사를 병치시켰다. “작품 모델이 6학년 때 옆 반 선생님이셨어요. 방학 무렵 해직당하셨고, 개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소설집 반응이 궁금했다. “너무 한쪽으로 쏠려 불편했다는 인터넷 댓글이 눈에 띄더군요. 애초 세상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데 그걸 지적하는 게 불편하다면 계속 쏠려 있으란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는 이어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말했다. “1년에 200명 이상 노동 현장에서 죽어 나가고 금융사는 채용 때 아예 성비를 정해놓고 여성을 차별합니다. 저는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겠지만, 동성부부의 경우 이성부부인 저만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요.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은 더하고요. 수도권과 지방의 차별도 있지만, 지방 간에도 차별은 존재합니다. 고작 대학교 입학할 나이에 전라도나 제주 출신 친구들은 지역 억양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표준말을 써요. 그게 차별의 타깃이 되니까요.”

SF 등 장르소설 작가로 활동하다
최근 단편집서 4·3, 5·18, 전교조 등
현대사의 국가폭력 문제 들여다봐
호러·스릴러 등 장르소설 특성 차용

공무원 일하며 매일 원고 15~20매씩
여성 인물 알리는 논픽션도 여러 권

그는 책 후기에 “국가폭력 주제를 장르소설로서 환상을 가미하는 게 조심스러웠다”고 썼다. “내가 당사자도 아닌데 써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작품에 외지인을 등장시켰어요. 그래야 너무 뻔뻔하지 않게 쓸 것 같더군요. 노동권을 다룬 에스에프는 노동운동가 김진숙 선생님에게 미리 보여주고 ‘괜찮다’는 답을 들었죠. 4·3 소설을 쓸 때는 제주를 세 차례 찾아 학살 현장을 둘러 보았어요.”

전 작가의 또 다른 직업은 그의 표현대로 “컴퓨터를 고치는 동네 공무원”이다. 유치원과 초등생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런 여건에서도 그는 데뷔 이래 하루 15~20매씩 원고를 꾸준히 쓰면서 공저 포함해 70권이 넘는 책을 냈다. 최근작 ‘규방의 미친 여자들’ 참고문헌에는 학술논문이 12편이나 있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는 아이가 제 품에서 내려가려고 하지 않아 아기띠 포켓에 핸드폰을 꽂은 채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 소설을 썼죠.” 이번 소설집 쓰기의 가장 큰 어려움도 “한참 심각한 대목을 쓰고 있는데 자던 아이가 일어나는 것”이었단다.

전혜진 소설가. 강성만 선임기자
‘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 표지.

작품이 쌓이면서 인세 수입도 적지 않지만 당장은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 없단다. “에스에프 작가 중에는 따로 직업이 있는 분들이 많아요. 직장이 있으면 몸은 힘들겠지만, 팔리지 않더라도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죠.”

소설가가 왜 공을 들여 논픽션을 쓰는지도 궁금했다. “대학 수학사 수업 때 배운 여성 수학자가 소피 제르맹(프랑스, 1776~1831) 딱 1명이었어요. 하지만 여성의 교육 기회가 늘어나며 점점 더 많은 수학자, 과학자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말을 이었다. “1990년대 순정만화는 다양한 장르와 당대의 가장 첨예한 이야기들까지 다루던 장르였는데도, 여성들이 만들고 향유하던 문화라는 이유로 ‘순정만화’로 뭉뚱그려지기 일쑤였어요. 우리 이전에 누군가 있었고, 그 작업이 계속되어 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여성들의 구전문학이나 여성들이 즐겨보던 소설들, 여기에 담긴 당시 여성들의 욕망에 대해서도요.”

작가로서 그는 에스에프 뿐 아니라 추리소설의 요소가 들어간 작품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문제를 만들고 푸는 일에 흥미를 느낍니다. 추리소설을 잘 쓰려면 정교한 트릭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 집중하기 힘들어요. 작품으로 상도 받고 싶지만 그렇게 하려면 (글에) 대패질을 많이 해야 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지금은 힘들어요. 몇 년 지나야죠.”

글쓰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글쓰기가 만족을 주는 것보다는 쓰지 않으면 안 되니 쓰는 것이죠. 글의 내용 측면에서도 누군가는 써야 하는 것을 쓰고, 개인적으로도 글을 쓰는 일이 숨을 쉬는 일 같다고 느낍니다. 글을 쓰면서 인간답게 살죠.”

작가로서 롤모델은? “소설로는 미야베 미유키(일본)나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이지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은 고구려 시대가 배경인 순정만화 ‘바람의 나라’를 쓴 만화가 김진 선생님입니다. 그분의 만화 ‘숲의 이름’이 제 인생의 책이죠.” 이유는? “에스에프, 판타지, 고대사와 근현대사, 심리극 등 정말 다양한 장르를 거대한 스케일로 다루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게 그냥 순정만화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의문점의 출발이기도 했죠. 1988년 순정만화 잡지 ‘르네상스’ 창간 이후 순정만화는 다양한 장르를 포괄했고 당대의 가장 첨예한 이야기들까지 다뤘죠. 지금 ‘바람의 나라'는 30년째 연재 중인데 30년짜리 복선들이 느슨해지지 않고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30년 뒤에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애트우드는 80대, 미야베와 김진 선생님은 60대인데 현역이시죠. 저도 건강관리를 잘해서 30년 뒤에도 계속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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