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상반기만 급여 1억… 정유·車·조선 `인건비 인플레이션`
현대제철 1인당 임금 18.4%↑
한화오션·삼성중공업도 '껑충'
일부 물가상승률보다 5배 올라
조선업, 업황불황·인력난 이중고
기업들 임단협 앞두고 시름 가중
"연내 경기 회복이 될 지 여부도 미지수인데 인건비는 매년 올라가니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 사업재편이 불가피하지만 현행 노동법 상에서는 전환배치 외에는 답이 없고, 젊은 인재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한 석유화학업체 임원은 최근 경영 상황에 대해 이 같이 하소연했다.
코로나19와 경기침체에 따른 실적 부진에도 국내 주요 제조업종의 인건비 증가폭이 물가 상승률을 뛰어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들은 파견·도급직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노조의 정년연장 요구로 노동 경직성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조선업종은 인력 부족난에 시달리고 있고, 정유업종은 '평균 연봉 2억원' 시대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등 업종별 양극화도 뚜렷해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고용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16일 본지가 자동차, 조선, 철강 등 국내 업종별 15개 제조업체의 반기보고서를 비교·분석한 결과 전자를 제외한 대부분 업종에서 최근 5년간 지급한 1인당 급여 증가율이 물가 상승률을 상회한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는 2019년 6월 99.49에서 올 6월은 111.20으로 11.8% 올랐다.
이 기간 소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정유사들은 올 들어 연봉이 대폭 올랐다. 에쓰오일의 경우 올 상반기에만 1인당 평균 1억442만원을 지급해 2019년 상반기보다 74.8%나 급증했고, GS칼텍스(9946만원), SK이노베이션도 같은 기간 59.8%, 30.1% 각각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당시 유가 급변으로 실적 역시 큰 변동성을 보였고, 올 상반기 업황도 좋지 못했지만 급여만큼은 굳건한 모습이다.
자동차업종의 경우 현대차의 경우 올 상반기 지급한 1인당 평균급여가 4500만원으로 15.4%, 기아는 4800만원으로 26.3%, 현대모비스는 4300만원으로 19.4% 각각 증가해 물가상승률을 상회했다.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3사는 급여 외에도 최근 2년간 별도의 특별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는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면서 연말에 역대급 성과급을 지급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제철의 경우 올 상반기 1인당 평균 급여가 4500만원으로 5년 새 18.4% 늘었다.
최근 인력난이 심화된 조선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해 한화그룹에 편입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은 올 상반기 1인당 3800만원을 지급해 2019년 동기 대비 18.8%,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은 4000만원으로 17.6%를 각각 늘어 물가상승률을 상회했다.
양사 모두 업황 불황 등으로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총 고용 규모는 한화오션 6.6%, 삼성중공업은 11.6% 각각 감소했지만, 1인당 급여가 늘면서 총 지급 금액은 8.7%, 4.1% 각각 늘었다. 조선업계는 최근 인력난에 시달리면서 정부까지 나선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올해 여름휴가를 마치고 임단협에 본격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노조의 경우 올해 요구하는 기본급은 18만4900원(호봉승급분 제외)으로 작년(9만8000원)의 2배 가까운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또 상여금 900%, 회사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에 더해 자녀 고등학교 입학시 축하금 100만원, 정년 연장(만 64세) 등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업종의 경우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이미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특히 한국조선해양 3사 노조가 공동 요구안을 통해 기본급 18만49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그룹사 공동 교섭 태스크포스(TF) 구성, 노사 창립기념일 상품권 각 50만원 지급 등을 요구한 상태지만 사측과 이견이 커 조율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파견·도급직을 허용하지 않는 국내 제도가 인건비 압박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독일·일본 등 제조 경쟁국들은 직접생산 공정을 포함해 최소한의 업종만 파견근무를 제한하고 있지만, 한국은 32개 업종만 허용된다.
미래 신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겪는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어 유연한 고용 제도를 기반으로 한 양극화 해소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근로시간이 멕시코에 이어 두번째로 긴데 생산성은 매우 낮다"며 "후진적 노동 경직성을 해소하고 고용을 유연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체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인인 만큼 중소기업이 성장하도록 기업에 걸린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노동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기업들은 회의를 줄이고 업무 집중도를 높여 생산성·효율성을 올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은희·장우진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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