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범죄, 수사기관의 엄정한 대응만으론 예방할 수 없다

한겨레 2023. 8. 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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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킨 피닉스가 인생 연기를 펼친 영화 '조커'는 흔한 범죄 이야기 같지만, 인간이 인간을 다루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른바 '무차별 범죄'의 범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대응이 시민을 향한 무차별적 폭력 행위를 예방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 위험한 것은 사회로부터 차별과 혐오 등으로 고립된 이들이 끔찍한 범죄를 보고 잘못된 신념을 갖고 또 다른 범죄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무차별 범죄의 예방은 결국 삶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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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범죄]

지난달 21일 오후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역 4번 출구 인근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백수웅 | 변호사·‘테러를 프로파일링하다’ 저자

호아킨 피닉스가 인생 연기를 펼친 영화 ‘조커’는 흔한 범죄 이야기 같지만, 인간이 인간을 다루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사회로부터 고립되거나 정신 장애가 있는 이들의 말을 사회가 철저히 외면한다면 제2의 조커는 등장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사회로부터 고립되거나 정신 장애가 있는 이들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온라인에는 신림동 흉기 난동, 서현역 테러, 살인 예고 등 섬뜩한 키워드가 등장했다. 전염병처럼 번지는 살인 예고에 시민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경찰은 살인을 예고한 지역에 무장 경찰을 배치했고 법무부는 흉악범 제압에 정당방위, 정당행위를 적극적으로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흉기 난동에 강력하게 맞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른바 ‘무차별 범죄’의 범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대응이 시민을 향한 무차별적 폭력 행위를 예방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먼저, 무차별 범죄가 ‘테러’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지 논란이 있다. 테러는 정치·종교적 목적을 가진 폭력으로 국가 등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는 범죄로 정의한다. 무차별 범죄는 표면상으로는 구체적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차별 범죄를 개인의 정신 문제나 일탈로만 바라보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한 접근방법으로는 미래에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큰 무차별 범죄를 막지 못한다. 무차별 범죄의 원인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무차별 범죄를 행한 범인은 테러 단체처럼 전달하려는 종교·정치적 목적은 없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있다. 무차별 범죄가 외로운 늑대형 테러로 불리는 이유다. 그들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끔찍한 폭력을 통해 대중들이 공포를 느끼기를 원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주목받기를 원한다. 실제로 끔찍한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언론은 범행을 저지른 피의자를 주목한다. 사람들은 피의자의 성장 과정, 배경 등에 관심을 둔다. 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됐던 범인은 끔찍한 범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다. 더 위험한 것은 사회로부터 차별과 혐오 등으로 고립된 이들이 끔찍한 범죄를 보고 잘못된 신념을 갖고 또 다른 범죄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무차별 범죄는 예고 없이 발생한다. 범죄의 결의는 외부가 아닌 범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의 엄정한 대응만으로는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 무차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범죄의 원인을 범인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모한 폭력 행위에 나서는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기득권만의 이야기를 대변했던 정치권도 반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전 사회가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며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무고한 시민을 향한 폭력을 멈출 것이다. 무차별 범죄의 예방은 결국 삶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영화 ‘조커’의 명대사이자 필자가 수첩 속에 간직하고 있는 문장이 있다. 조커는 자신의 일기장에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이라고 적어 자살을 암시한다. 현재의 삶보다 죽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사회를 향한 무모한 폭력과 분노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나 아닌 우리 모두가 지금의 삶이 죽음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 우리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무차별 범죄는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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