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동관 농지구입 사건의 전말

김원철 2023. 8. 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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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일 경기 과천시 과천경찰서 인근에 마련한 청문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뉴스룸에서] 김원철 | 사회부장

“큰일 할 수 있게 한번만 기회를 줘.”

이동관씨는 수세에 몰려 있었습니다. 절박했습니다. “이 기사 나가면 진짜 곤란해져.” 유능하다는 세간의 평가답게, 그는 사안의 심각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전화가 당시 한 일간지 4년차 사회부 기자였던 저에게 걸려온 건 2008년 4월28일 저녁 7시께. 그의 농지 취재를 위해 강원도 춘천 일대를 뒤지다가 서울 본사로 복귀한 직후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농지의 시대였습니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명언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때였죠.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보수진영은 기세등등했지만, 2000년 처음 시행된 인사청문회를 수비수 입장으로 맞닥뜨린 건 처음이었습니다. 초대 장관 후보자 중 다수가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아킬레스건은 ‘자연의 일부’, 그중에서도 ‘농지’였습니다. 농지는 난감한 부동산입니다. ‘투기의혹’ 외에도 여러 문제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짓말입니다.

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농지법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저 이 동네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 농지 사도 되죠?’(위장전입), ‘도시 사람이지만, 진짜 농사지을 거예요.’(농업경영계획서 위조). 도시 거주민의 ‘농지 보유’는 이런 거짓말들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2008년 2월24일, 정권 출범 하루 전 장관 후보자 한명이 낙마했습니다. 곧이어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다’던 명언의 주인공과 또 한명의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죠. 온 국민이 농지법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2008년 4월24일 공개된 고위공직자재산 내역은 ‘청문회 2라운드’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습니다. 이번에도 ‘농지’가 문제였습니다. 청와대 박미석 사회정책수석과 이동관 대변인이 주인공이었습니다.

박 수석이 낙마했습니다. 농지보유 사실도 문제였지만,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경사실확인서를 뒤늦게 조작했다는 의혹이 결정타였습니다. 거짓말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불은 이동관 대변인에게로 옮아 붙었습니다. 그는 강원도 춘천시 농지 8109㎡를 부인 명의로 지인 3명과 함께 공동 보유 중이었습니다. 서울에 살지만, 춘천 농지를 직접 경작하겠다는 농업경영계획서도 제출했습니다. 이 점이 문제가 되자 재산공개 이튿날 그는 “직접 경작해야 하는 실정법의 구체적 사실을 몰랐다”며 사죄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거짓말’이 문제였습니다. 제3자가 그의 부인 명의의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했는데, 대리 제출 사유에 ‘해외 출타’라는 거짓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당시 국내에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제 손에 있었던 것이 그날 그가 저에게 전화한 이유였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언론사 간부에게 “나중에 꼭 은혜를 갚겠다”며 “압력이 아니라 호소”(이튿날 본인 주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벼랑 끝까지 몰렸던 그는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니 버틸 수 있었던 걸까요? 아닙니다. “압력이 아닌 호소”였다던 통화 이튿날인 2008년 4월29일 문화방송 ‘피디수첩’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했습니다. 이후 전개는 모두가 아는 대로입니다. 광화문은 촛불로 뒤덮였고, 대중은 그를 잊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큰일’을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5월21일, 춘천시 농정과는 이동관 대변인 부부에게 통지문을 보냅니다. ‘스스로 경작을 한다고 하더니,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농지법 위반이다. 땅을 팔아라. 팔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

2008년 11월 그는 통지문대로 농지를 처분했습니다. 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죠. 그러나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큰일’을 해나갔습니다.

이동관씨의 불법적인 농지 보유는 의혹 아닌 팩트입니다. 그가 시인한 유일한 불법행위입니다. 그 외에 많은 의혹도 추가되고 있습니다. 오는 18일, 10여년 전 ‘큰일’을 통해 ‘언론장악 기술자’라는 평판을 완성한 그의 ‘두번째 청문회’가 열립니다.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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