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토마토 농사를 마치며

한겨레 2023. 8. 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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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한국사회]

한창 수확할 때의 토마토 밭. 원혜덕 제공

[똑똑! 한국사회]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여름이 다 갔다.

입추 지났다고 아침저녁으로 잠깐 선선한 기운이 스치기도 하지만 아직도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 폭염에 주의하라는 안내문자가 계속 온다. 그럼에도 여름 농사의 가장 큰 일, 토마토를 수확하고 주스로 만드는 일이 끝났기에 여름이 다 갔다고 느낀다.

우리는 50가지 넘는 작물을 기른다. 일반 농가보다 농지가 더 많은 것도 아니고 집에서 먹으려고 기르는 채소가 많아서 대부분 한 이랑, 많아야 서너 이랑 기른다. 벼, 보리, 귀리, 들깨 등의 곡식은 적게 심어서는 소출을 낼 수 있는 작물이 아니기에 면적을 좀 더 많이 할애한다. 판매를 위한 채소도 여유 있게 기른다.

우리 농장에서는 수확한 작물 대부분 직접 가공한다. 밀을 길러서는 농사일이 없는 겨울철에 빻아 직접 빵을 만든다. 들깨로는 들기름을 짠다. 루바브는 잼을 만든다. 유산양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매일 젖을 짜서 요거트를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은 나오는 대로 미리 주문한 우리 농장 회원들에게 보낸다.

그중 하나가 토마토주스다. 전에는 토마토도 다른 자급용 작물과 마찬가지로 한 이랑만 길렀다. 식구들이 여름내 실컷 먹고도 남아 주변에 나눠주던 토마토가 우리 농장에서 주된 품종으로 자리 잡은 지 15년쯤 되었다. 토마토를 기르려면 손이 많이 간다. 덩굴식물인 토마토는 지주대를 세워주지 않으면 바닥에 다 깔린다. 토마토가 밭을 다 덮어버리면 발 디딜 데가 없어 손질해주기도 쉽지 않고 제대로 수확할 수도 없다. 줄기를 지주에 유인해줘 위로 올라가게 해야 한다. 또 잎사귀마다 곁순이 나오는데 그 곁순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본래 줄기만큼 잘 자라 영양을 다 뺏어가기에 토마토 열매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그래서 곁순은 나오는 대로 계속 제거해주어야 한다. 이렇듯 손이 많이 가기에 토마토는 우리 가족노동으로 감당할 만큼만 기른다. 그 외 대부분의 땅에는 손이 덜 가는 다른 채소들과 곡식을 기른다. 다른 작물들은 가꾸고 수확하는 때가 토마토와 달라 노동력을 분산시킬 수 있어서 우리가 가족노동을 중심으로 농사짓는 일이 가능하다.

우리는 모든 작물을 제철에 기른다. 벼, 밀, 보리 같은 곡식이야 누구라도 제철에 기를 수밖에 없으나 요즘 채소는 철을 가리지 않고 나온다. 여름에 나와야 할 고추, 오이, 가지 등 열매가 이른 봄은 말할 것도 없고 한겨울에도 나온다. 모든 채소를 사서 먹는 도시의 많은 소비자는 대부분 채소의 제철을 모를 것이다.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는 양파나 마늘도 있지만, 대부분 작물은 봄에 땅이 녹았을 때 씨앗을 뿌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와 순환에 맞는다. 비닐하우스에 태양열 대신 인공으로 가온하여 기른 작물이 맛이 좋거나 영양이 제대로 있을 리 없다.

토마토 곁순을 따고 줄기를 지주에 유인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새 7월이 되어 수확을 시작한다. 2~3일에 한번씩 완전히 빨갛게 익은 토마토만 수확하여 주스를 만든다. 그 주스를 식히고 포장하여 농장 회원들에게 발송한다. 1년을 기다리던 회원들은 여름이 되면 이제 평화나무농장 토마토가 나올 때가 되었구나, 하며 토마토주스를 반갑게 받는다. 그들은 토마토의 제철이 여름이라는 것도 안다. 너무 더워 모두가 피서를 가거나 잠깐이라도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는 한여름에 우리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밭에서, 토마토가 펄펄 끓는 솥 앞에서 더위를 그냥 받아들이며 지낸다. 우리만 그러랴. 다른 농부들, 그리고 우리나라 구석구석 공장에서, 각종 건물과 길거리에서 일하는 분들, 또 택배를 나르며 땀 흘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 모두의 일상이 유지된다.

우리 회원들은 이제 토마토가 끝난 것을 아쉬워하지만 다시 내년 여름이 올 때까지 1년을 기다려줄 것이다. 내년 봄에 다시 기르기 시작할 때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마음과 함께 기다려줄 우리 농장을 잘 꾸려나갈 책임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있다고 여긴다.

토마토주스를 만들 때 방학을 맞은 대학생 두명이 유기농업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와 여러 날 머물며 함께 일했다. 자기들도 언젠가는 우리같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농장을 갖고 싶다고 했다. 원혜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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