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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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이 소설을 가장 많이 또 가장 열심히 읽을까? 누가 조사한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아마 그 답은 소설가(지망생 포함)가 아닐까? 그다음은 소설 생산과 관련된 "업계" 사람들.
물론 작가 자신이 독자를 동업자에 한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쓰고 또 읽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공동체는 소설가를 낳고 양육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소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지되는 동시에 소설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드는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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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어떤 사람들이 소설을 가장 많이 또 가장 열심히 읽을까? 누가 조사한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아마 그 답은 소설가(지망생 포함)가 아닐까? 그다음은 소설 생산과 관련된 “업계” 사람들. 물론 작가 자신이 독자를 동업자에 한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쓰고 또 읽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공동체는 소설가를 낳고 양육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소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지되는 동시에 소설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드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내 소설을 읽어주겠지 하는 실낱같은 기대에 기적처럼 부응하는 마지막 독자 집단으로서, 말하자면 소설의 최후 보루가 되는 셈이다.
이 최후의 보루에서 수여하는 명예로운 상 가운데 “작가의 작가”라는 칭호가 있다. 물론 작가 겸 독자가 우러러보는 작가이니만큼 어지간한 재능으로는 이 칭호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이 정말 까다로운 것은 대중의 호응을 얻는 순간 대체로 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컬트적 숭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셈이다. 두어달 전 작고한 코맥 매카시(1933~2023)는 60년 가까운 작가 인생에서 긴 세월 이 두 조건을 훌륭하게 충족시킨 작가의 작가였다.
매카시는 테네시대학을 중퇴한 뒤 서른살 넘어서, 들어본 출판사가 랜덤하우스밖에 없어 대충 타자로 친 장편 원고를 그곳에 투고했고 그게 원고 더미 속에 묻혀 있다가 윌리엄 포크너의 편집자였던 앨버트 어스킨의 눈에 띄어 책으로 나오면서 공식 작가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전설의 출발에 값하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현재의 미국 출판 상황에서 매카시의 전설 재현은 어림도 없다고 한다) 대중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그는 20년이 넘는 기간 총 5권의 장편을 발표했는데 양장본으로 5천권이 팔린 책은 한권도 없었다. 한때는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핏빛 자오선’(김시현 역)을 포함한 모든 책이 절판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그는 1989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업작가 생활 28년에 인세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건 틀림없이 신기록일 것”이라고 씁쓸하게 농담했다.
물론 미국에서 “전설”이 되려면 이쯤에서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매카시는 1992년 60살이 다 되어 ‘모두가 예쁜 말들’(김시현 역)로 많은 독자와 만나게 되면서 스타 작가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때까지 그가 무명과 가난의 긴 세월을 버틴 것은 본인의 끈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가 다름 아닌 작가의 작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즉 그의 안목 있는 편집자를 비롯해 솔 벨로 같은 대가들이 그를 인정했고, 그것은 중요한 문학상 수상과 공익재단의 지원 등으로 이어져 그와 그의 소설이 사라지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매카시는 일견 배은망덕했다. “책이 책으로 만들어”지고, “소설이 지금까지 쓰인 소설들에 생명을 의지하고” 있는 “추한 현실”을 비판하면서 작가는 모름지기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그래서 문학의 주류와 거리를 두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는 서로 거름이 되어주는 소설 공동체의 존재 근거에 대한 비판으로 보였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귀 밝은 동업자라면 이 말에서 포크너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찾겠다는 자기반성과 기나긴 고투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의지를 들으며 자기를 돌아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카시는 작가의 작가로서 자기도 모르게 공동체에 은혜를 갚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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