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로봇팔이 5억짜리 포대를 '슉슉'…SF 같아진 '한은 금고'[영상]

김혜지 기자 2023. 8. 1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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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본부 건물 신축 계기로 자동 금고 개발·시연
사람 손 덜 타니 안전…용량 30% 늘고 전산 효율화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 화폐 수납장에서 자동화 금고 시스템이 시연되고 있다. /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거대 로봇팔이 무게 10㎏에 달하는 5억짜리 현금 포대를 들어올려 5초 만에 옮기고, 컨베이어 벨트 위를 사람 손길 하나 없이 이동……. 무인 로봇이 옮겨받아 높다란 선반 탑에 쌓은 뒤 재고 관리까지 전산을 통해 실시간으로 처리'

한국은행의 금고에 '사람'이 없어졌다. 로봇과 전산을 활용해 마치 공상과학(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발권 업무를 처리하는 '자동화 금고 시스템'이 정식 가동에 들어가면서다.

한은은 16일 자동화금고시스템 가동식을 열고 지난 8일부터 바뀐 발권 업무의 일부를 공개했다. 총 300억원 상당의 5만원권 60만장이 금고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상황을 시연해 조폐공사나 금융기관이 한은에 현금을 입·출고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선보였다.

우선 금융기관 등에서 도착한 현금은 한은 내로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이 과정만큼은 기존처럼 지게차와 사람의 손을 탄다. 지게차가 현금 다발을 옮겨서 들어올리면, 이를 사람이 컨베이어 벨트 쪽으로 밀어넣는 식이다.

현금 포대는 곧장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자동 검수기로 이동했다. 과거에는 직원 2명이 동시에 육안으로 화폐 상태를 검수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기계가 카메라로 상태를 확인하며 크기·무게를 측정해 알아서 검수한다.

검수를 끝낸 현금은 일명 '로봇 팔'로 불리는 팔레타이징 로봇이 빨판처럼 흡착하고 들어올려 팰릿 위에 차곡차곡 쌓는다. 보통 사람 키의 2~3배는 돼 보이는 이 로봇은 팰릿 하나에 총 60개 포대를 10줄로 적재했다. 지폐 100장을 십자 띠지로 묶은 것을 작은 묶음, 작은 묶음 10개를 큰 묶음, 끈 묶음 10개를 포대라고 한다. 포대 하나는 무려 1만장이니 모두 60만장이 검수와 함께 옮겨진 것이다. 누구도 이 과정을 돕지 않았다. 시연장에는 기계음만 울려 퍼졌다. 시간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김근영 한은 발권국장이 자동화 금고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지폐 한 포대의 무게는 10㎏에 육박한다. 그런데 한 포대 한 포대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 처리되니 금고 관리의 효율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은 금고 탈취를 주제로 2004년 개봉한 영화 '범죄의 재구성' 같은 일은 지금은 상상하기가 어려워졌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금고 안으로 흘러간 현금이 겪을 상황은 보안상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한은의 설명에 따르면 화폐 정사(손상 지폐 분류) 과정을 거치고 마치 로봇 청소기처럼 움직이는 무인운반장치(AGV)가 옮겨받아 금고 내 저장 선반에 적재한다고 한다. 출고 때에는 이 과정이 반대로 진행된다.

금고 내 선반에 오른 현금은 전산으로 실시간 재고 관리가 가능하다. 사실상 금고 내 화폐 입·출고 지시는 물론이고 재고 관리, 자동화 설비 제어까지 대부분 과정이 전산 처리되는 셈이다. 당초 40% 수준이었던 자동화율이 70~80%까지 높아졌다.

이러한 자동 금고의 장점은 '관리 인력이 적다'는 단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물리적인 금고 출입이나 화폐 접근을 최소화했기에 보안이 튼튼해졌을 뿐더러, 원래는 여러 개였던 금고를 하나로 합쳤기에 재고 관리 등 각종 발권 업무가 수월해졌다.

금고 용량도 30% 늘었다. 5만원권으로 가득 채우면 수십조원이 들어갈 정도다. 사람이나 지게차가 아닌 로봇이 일하게 됐기에 기존 지게차가 닿지 않는 높이까지 고층 선반을 설치할 수 있었고, 이에 지폐를 최대 3단으로 저장했던 과거와 달리 4단까지 적재가 가능해졌다. 또 과거에는 팰릿 위에 다른 팰릿을 켜켜이 올렸던 탓에 화폐 눌림 현상이 있었으나, 이제는 선반이 따로 생겼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동화 금고 시연 장면 /뉴스1

다만 일각에서는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시대적 변화를 고려했을 때 많은 예산을 들일 필요가 있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은 통합별관 신축이 허가된 지난 2017년 자동화 금고 추진 계획을 세우고 2020년부터 구축을 시작했다. 완성까지 3년 반이 걸렸고 기계 한 대에만 수억원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템 개발은 LG CNS가 맡았다.

이 같은 지적에 김근영 한은 발권국장은 "현금 사용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그 본질적인 기능은 완전히 없어질 수가 없다고 본다"며 "길게 보면 국민들께 효율성, 안전성, 보안성 높은 발권 서비스를 제공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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