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동맹 따르다 외톨이 위기…브릭스서 생존외교 모색해야
[왜냐면] 이부영 |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한국 언론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브릭스(BRICS)라는 단어가 세계 주요 언론에는 심심치 않게 나온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머리글자다. 영토가 넓고 인구가 1억 이상인 개발도상국들이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했지만 과거엔 미국과 견주던 초강대국 소련의 후신이다. 러시아를 제외하고 이들 국가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일본과 서구 국가들의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60여 년이 지난 2009년부터 자신들의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섯 나라는 올해 8월 22~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제15차 정상회의를 갖는다. 튀르키에, 아르헨티나. 이란,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알제리, 멕시코, 나이지리아 등이 브릭스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참여는 창설 5개국의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하다. 브릭스는 창립 이래 ‘브레턴우즈 체제’(통제형 국제 금융 시스템)로 대표되는 구미 중심의 국제질서 개편을 지향해 왔다. 이 과정에서 브릭스는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반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브릭스에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라는 주요 산유국까지 가입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에 도전하는 세력이 등장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브레턴우즈 체제의 상징인 국제결제통화 달러를 대체하는 ‘브릭스 통화’를 도입하는 방안 등도 논의할 예정이다. 2014년 6월15일 브라질 포르탈레자에서 열린 제6차 정상회의는 신개발은행(NDB)을 창설했다. 자본금 1000억 달러, 예비기금 1000억 달러 규모였다. 이 은행은 브릭스 국가의 수출입은행들과 협력한다. 브레턴우즈 체제에 비상이 걸렸다.
브릭스 운동은 1955년에 시작했다. 식민주의 제국주의 시대가 저물어가자 길게는 300년 이상, 짧게는 40~50년 식민 지배를 겪은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독립하거나 민족해방전쟁을 벌였다. 1955년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중국의 저우언라이,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가 양대 강대국 미국과 소련으로부터 중립적 위상을 지키겠다는 비동맹운동을 선언했다. 이들은 지난날 강대국들에 반식민 투쟁을 전개한 국가와 민족의 지도자들이다. 반둥 정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 본국들이 다시 식민지로 돌아와 억압과 착취를 재개하려는 것에 대해 반대할 뿐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대 이념 진영으로 신생 독립국들을 편입시키려는 것을 거부하는 ‘비동맹 선언’이기도 했다. 1990년을 전후해 독일 통일을 계기로 소련이 분해되고 바르샤바 동맹이 해체되면서 미국 일극 체제 중심의 탈냉전 시대가 왔지만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한 중국이 미국의 일극 체제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념을 넘어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서구 선진국들에 대한 대안운동을 벌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다. 한국을 바라보는 브릭스를 비롯한 신생 개도국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자신들이나 다를 바 없는 식민 지배 피해국이면서도 미국, 일본, 나토에 우호적인 국가로 한국을 분류한다. 민주화, 산업화뿐 아니라 문화국가로서 개도국들의 선망 대상이 됐다. 한국의 미래 시장은 선진국보다는 세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개도국들에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중상급 기술과 제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한국제 세탁기, 텔레비전, 에어컨 등 가전제품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직도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에 동질감과 연대감을 보인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대다수 개도국이 기피하는 지난날 식민지배 국가들에 밀착하고 있다. 구미 선진국의 군사동맹인 나토 정상회담에 다녀왔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시대착오적인 가치동맹과, 한반도를 식민 지배한 일본에 접근하고 있다. 국제회의에서 만난 외국의 지식인들은 한국의 취약한 민주화에 의문을 나타냈고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우려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상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 관심을 표명하거나 최소한 외무장관을 옵서버(참관국)로 참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도국들로부터 외톨이가 될 가능성을 미리 막는 것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에 걸맞게 미국, 일본, 나토뿐 아니라 이제 세계사의 새로운 주역이 되려는 개도국들에도 다가서는 생존외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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