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문화권에서 ‘X’가 애용되는 이유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오랜만에 트위터에 접속했다. 익숙한 파랑새는 온데간데없고 느닷없는 검은색 엑스(X, x)가 튀어나왔다. 트위터를 사들인 일론 머스크가 기존 트위터의 기능을 확장, 위챗이나 그랩 같은 슈퍼앱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 엑스를 내세웠다는 기사를 보긴 했지만 역시 파랑새 없는 트위터는 낯설었다. 그는 왜 하필 새로운 회사명과 상표로 영어 알파벳 엑스를 내세웠을까, 그 상징성을 생각하면 매우 흥미롭다.
엑스는 영어 알파벳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지만, 라틴어에서 내려온 로마자 중 하나이기도 해서 로마자를 사용하는 많은 언어권에서 사용한다. 발음도 다양해서 영어에서는 여섯개, 스페인어와 프랑스어에서는 다섯개, 독일어에서는 두개의 발음이 있다. 서양의 제국주의와 함께 바다를 건너 언어체계가 다른 인도네시아어와 베트남어에도 엑스가 있다.
라틴어에서 내려왔다지만 그 뿌리를 찾아보면 페니키아 문자에서 형성된 그리스 문자 키(Χ, χ)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그리스 문자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발달한 에트루리아 문명을 통해 라틴어를 사용하는 로마에 전해졌고, 또다른 한편으로 러시아어 키릴 문자에 영향을 미쳤는데, 그건 또다시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몽골어로까지 이어졌다. 여기에 중국어의 로마자 표기인 한어병음에서 쓰는 것까지 따지면 엑스는 참으로 사방팔방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다일까. 대수학을 공부했다면 엑스와 자주 만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수학은 이슬람 문화권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엑스를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데카르트다. 그가 1637년 출간한 ‘방법서설’에서 엑스를 독립변수와 미지수로 사용하면서 엑스는 수학에서도 유명세를 탔다.
엑스는 의미도 다양한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안 된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에는 엑스 등급이 붙고, 선정성이 심할수록 두개 또는 세개의 엑스를 붙인다. 일본 한 미술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된 작품을 촬영하려는 관람객을 향해 안내원이 두손을 가로질러 엑스를 표시했다. 찍지 말라는, 금지의 뜻이 직관적으로 전해졌다.
엑스에는 ‘알 수 없음’ 또는 ‘알지 못함’의 의미도 있어 신비로운 느낌이 강하다. 미국 흑인해방 운동가 맬컴 엑스(Malcom X)는 아프리카 조상의 성을 알지 못해 영어 성으로 쓰던 리틀(Little) 대신 엑스를 사용했고, 1895년 새로운 전자파를 발견한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은 그 정체를 잘 몰라 ‘엑스 전자파’라는 임시 명칭을 붙였다. 오늘날 익숙한 엑스레이(X-ray)가 바로 그것이다. 엑스를 ‘알 수 없음’의 의미로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익숙한 엑스는 또 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미국에서는 ‘엑스 세대’로 부른다. 많은 인구수로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그 이전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인구수도 적고, 성격도 애매모호해 잘 알 수 없다는 의미로 엑스를 붙였다.
엑스의 신비하고 모호한 느낌은 대중문화, 특히 사이언스 픽션에서도 사랑받았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1990년대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엑스파일’은 물론, 슈퍼히어로 영화 시리즈 ‘엑스맨’은 2000년부터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엑스를 선택한 걸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엑스의 미래적 느낌과 하이테크 이미지를 떠올리면 선택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이런 엑스를 살펴보자니, 다른 글자가 떠올랐다. 한글의 ‘ㅎ’이다. 마치 사람 머리 같은 모양에, ‘웃는 모습’의 의미로 쓰인다. 문자나 메일을 쓸 때 ‘ㅎ’은 반가움과 기쁨, 동의와 격려의 의미로 문장이나 단어 끝에 붙이거나, 독립적으로 긍정의 뜻으로 쓰인다. 주로 ‘ㅎ’ 두개를 나란히 쓰는데, 반가움와 동의의 강도가 셀 경우 세개 또는 그 이상으로 수없이 키보드를 눌러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누군가 즐겁고 편한 느낌을 전하려는 앱을 개발한다면 ‘ㅎ’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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