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냄새 맡아봤나”vs “악성 민원”... 악취민원에 극단 선택한 한돈 농가 추모제
“한돈 산업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농가가 악성 민원과 행정 규제에 좌절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16일 세종시 환경부 청사 앞에 모인 고인이 된 농장주 60대 농장주 A씨 추모 행사에서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들이 한 말이다. 그는 전남 보성에서 1999년부터 한돈 농가를 운영해 오다 지난달 2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축산업에 25년째 종사해오던 그는 유서에 “이제까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민원 제기로 너무 너무 힘들다”며 “주변 주민분들 그동안 정말 죄송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축산업계는 돼지 농장에서 발생한 악취로 인근 주민 민원이 최근 잇달아 접수됐고, 뒤따르는 행정 지도에 A씨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올해 5월 이후에만 A씨가 운영하는 농장을 겨냥한 악취 민원 신고가 4건이었다는 것이다. “축산업을 한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받고 악의적인 민원을 감당해야 하는가.” 김삼주 축산관련단체협의회 회장의 말이다.
A씨가 운영했던 농장은 보성군 웅치면에 있다. 1999년 5월 돼지사육시설 허가를 받았고 같은해 9월 준공 인가를 받았다. 당시에는 축산 시설이 민가와 어느 정도 떨어져야 한다는 제한이 별도로 없었다. ‘악취 민원’이 접수되는 경우도 드물었다고 한다. 그 사이 1개동으로 시작한 축사는 3차례 증축을 통해 2017년에는 5개동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보성군은 2010년 조례를 통해 가축 사육 제한 지역을 설정했다. 축사부지에서 가장 가까운 가구 대지 경계선까지 직선거리로 200m 이내에는 가축 사육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3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는 2km까지 규제가 확대됐다. 보성군 관계자는 “환경오염 예방과 주민들의 지속적인 민원 제기에 따라 규제가 만들어졌고 점차 확대했다”며 “다만 조례 제정 전에 지어진 축사에 대해서까지 소급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현재 A씨 농장 반경 1km 이내에는 위치한 인가는 4곳이다. 가장 가까운 마을은 직선거리로 243m가 떨어져 있고, 가장 먼 곳은 735m 거리다. 일대 마을 네 곳에 89세대 140명이 살고 있다. 한돈협회는 최근 일대 마을로 귀촌한 일부 외지인들이 관련 규정을 대며 A씨 농장에 대한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덩달아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그간 농장주와의 관계를 고려해 악취 민원을 넣을 수 없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돼지농가를 운영하는 업자들의 하소연도 비슷했다. 한돈협회 홈페이지에는 “새로이 농촌으로 귀촌귀농 하신 분들로 인하여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몇십년 3대 가 허가 받아서 돼지농장을 하고 있는데 이사 온 객꾼이 난리를 쳐서 민원을 넣는다”고 호소글이 잇따른다. 한 농장주는 공무원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사장님 오해하지 말고 들으셔. 요즘은 동물 키우면 죄인 취급 받아요. 돼지 키우면 대역 죄인이고...”
그러나 축사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오랜 기간 고통 받는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돼지 몇 천두 키우면 반경 수킬로미터가 저녁이 되면 구역질 날 정도로 악취가 심하다” “장마철에는 먼거리에서도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일상생활이 안 된다” “옆에 살아봐라. 한여름에 창문도 못 열고 아침에 나오면 똥냄새가 진동한다” “왜 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동네 주민들이 희생을 해야 하는가” 같은 반응이다. 다만 “저렇게 농장 해주시는 분이 안 계시면 우리가 원하는 돼지고기를 못 먹는데, 그렇다고 냄새를 맡으라 하면 진심 못 맡을 수준이니 해결책을 모색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구경본 한돈협회 부회장은 16일 A씨 추모제에서 “한돈 농가도 이 땅의 자랑스러운 국민 중 하나”라며 “억울한 악성 민원과 지나친 행정규제는 한돈농가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가의 노력과 헌신이 무시되는 일이 없도록 환경부와 지자체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손세희 대한한돈협회 회장은 추도사에서 “이런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축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농가가 안정적으로 생업을 유지하고 노력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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