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래절벽 10년만에 최악···"석달째 단 한건도 계약 못해"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2023. 8. 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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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중국 경제]
<1> 깊어지는 부동산 수렁 ― 특파원 현장 리포트
9·10월 대목특수도 기대 어려워
중개업자들 생활고에 전직 고민
인테리어업계도 폐업위기 내몰려
70개 도시 중 40곳 집값 떨어져
신규 주택가격지수도 하락 전환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중개업소 앞에서 16일 일감이 없는 중개인들이 모여 있다. 김광수특파원
[서울경제]

“3개월째 계약을 하나도 못했어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하는데 그것도 마땅하지 않아 걱정입니다.”

베이징 차오양구에서 2년째 부동산 중개 일을 하고 있는 궈 모 씨는 16일 기자와 만나 몇 달 새 동료들이 줄줄이 그만두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계약을 성사하고 받는 인센티브가 사라지다 보니 당장 생활비는커녕 집세도 내기 빠듯한 실정이다. 궈 씨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며 “아직 젊으니까 일을 그만둔 동료들처럼 차라리 배달 일이라도 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돌아올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의 중개업소를 찾았더니 점심시간을 앞둔 중개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일감이 없으니 담배만 피우며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8년차 베테랑인 쑨 모 씨는 “원래 이맘때면 9~10월 대목을 맞아 직원들을 추가로 더 영입해도 일손이 모자라는데 올해는 있던 직원이 나간다고 해도 잡지 못할 분위기”라며 거래절벽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국에는 ‘진지우인스(金九銀十·중국인의 구매력이 왕성해지는 9월과 10월을 일컫는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해마다 중추절과 국경절 연휴를 앞두고 부동산 거래가 가장 활발해지는 시기다. 은행들도 이 기간에 대거 대출을 소진하게 된다. 매년 7~8월이 비수기라지만 올해는 상황이 10여 년 만에 최악이라고 중개업자들은 입을 모았다.

쑨 씨는 “코로나19 시기에도 지금처럼 거래가 적진 않았다”며 “지금은 집을 팔려는 사람은 늘었지만 사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인 거주 밀집 지역인 왕징도 주재원이나 학생 등 교민 수가 줄어들어 임대 수요마저 쪼그라들었다. 한 건이라도 거래를 성사시켜야 먹고사는 중개업자 입장에서는 배달 일이라도 알아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매수자 우위의 시장이 되다 보니 집값과 임대료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최근 이사한 주재원 김 모 씨 역시 집주인이 당초 월 임대료로 1만 5000위안을 요구했으나 10%나 깎은 1만 3500위안에 계약했다. 오히려 집주인은 TV도 새것으로 사주고 가구도 원하면 바꿔주겠다고 할 정도였다. 한 달가량 비어 있던 집이라 임대료를 낮춰서라도 세입자를 구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중국 부동산 중개 플랫폼 러유자에 16일 올라온 매물의 가격이 모두 인하된 것으로 표시돼 있다. 러유자 캡처

매물은 계속해서 쌓여만 가는 실정이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인 러유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매물이 가격을 인하했다고 표시돼 있다. 방 3개짜리 146㎡의 아파트는 원래 가격에서 127만 위안(약 2억 3000만 원)을 내린 1115만 위안(20억 3000만 원)에 올라와 있고 1429만 위안(약 26억 1160만 원)의 83㎡ 아파트는 1099만 위안(20억 800만 원)으로 23%나 집값을 낮췄다. 이 정도 할인에도 중국의 부동산 거래는 얼어붙은 상태다.

이날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7월 중국 신규 주택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1% 하락했다. 연초부터 마이너스를 이어오다 5월 0.1%로 반등했으나 6월 0%로 떨어지더니 다시 7월에는 하락 반전했다. 7월 신규 주택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로도 0.64% 하락했다. 6월 수치인 -0.51%보다 낙폭이 커졌다. 중국 70개 도시를 대상으로 주택 가격을 조사한 결과 40개 도시에서 전월 대비 집값이 떨어졌다. 6월의 31개보다 더 늘어났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70개 도시 중 44개 도시의 주택 가격이 떨어졌다. 역시 6월 42개 대비 증가했다.

전날 발표한 부동산 개발 투자와 주택 판매액 역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8.5%, 1.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연관 업종 종사자들도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차오양구에서 인테리어를 하는 왕 모 씨는 “6월에 마지막으로 공사를 하고 일감이 없다”며 “새로 집을 사는 사람들이 없으니 인테리어를 바꾸지 않고 집주인들도 가뜩이나 임대료가 줄어든 마당에 돈을 들여 수리를 맡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당국에서 가구·가전 등의 소비를 장려하고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상대적으로 비싼 물품이다 보니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지갑을 열지 않는 모습이다.

중국 당국은 최근 일부 지방 정부에서 부동산 경기 촉진책을 내놓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허난성 성도 정저우시는 이달 3일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15개 조치를 내놨다. 중국부동산신문에 따르면 정저우의 한 중개업자는 조치가 나온 후에도 “기존 주택 매물은 늘었지만 거래량은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가가치세 인하나 면제, 주택 거래에 따른 개인소득세 면제 등이 추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으며 그 시기는 이르면 8월 말이나 9월 초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가 16일 찾는 사람이 없어 썰렁한 모습이다. 김광수특파원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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