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윤종규의 마지막 미션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2023. 8. 1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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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간 준비했던 후계구도
마지막 시험대에 올려놔
차기회장 제1 선발기준은
경쟁사가 가장 두려워할 사람

"정말 자신 있습니다."

2014년 가을 그를 처음 만난 건 허름한 빵집에서다.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해 후배기자와 함께 만났다. 특유의 겸손함과 함께 보여줬던 KB금융그룹 정상화 의지는 지금 생각해도 인상적이었다. 당시 KB금융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도쿄지점 부당 대출사건을 시작으로 본점 횡령사건, 카드사 개인정보유출 사고가 벌어지더니 급기야 지주 회장과 은행장 간 갈등까지 불거졌다. 행장은 지주 측에 대해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고, 검찰에도 고발했다.

누가 와도 가시밭길이 뻔했던 KB금융 윤종규 회장이 3번째 임기를 끝으로 떠난다. 김정태 행장 이후 KB에서 이처럼 존경받았던 회장이 있었을까 싶다. 취임 후 행장직을 겸임하면서 수뇌부 간 갈등 소지를 일단 없앴고, 장기적인 지배구조 개선에 집중했다. 당시 금융당국에서 지배구조 개선을 서두르라는 재촉이 강했지만 컨설팅과 공청회 과정을 거치면서 꿋꿋하게 틀을 만들었던 모습이 기억 난다. 시작은 화합이었다.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상대 후보 지지자를 측근으로 다시 데려왔고, 외부 출신 임원도 중용했다. 국민·주택·장기신용은행 출신으로 나뉜 출신 채널 간 인위적 인사 배분을 과감히 흔들었다. 취임 후 9년이 다 되어가지만 누가 1채널인지, 2채널인지, 누가 윤종규 라인인지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딱 1년은 골프 안 할 생각입니다." 취임 직후 만난 윤 회장은 당분간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언론에 자신의 사진이 크게 부각되어서 KB 실적이나 성과를 소개하는 기사에 대해 극히 조심스러워한다. 윤종규의 KB로 언급되는 것을 꺼렸다. 해외에선 통역 없이 의사소통하며 글로벌 진출에도 공들였다. 그런 사람이었으니 내부에서 연임 목소리가 꾸준히 나올 만했다.

지금 용퇴가 그래서 의미있다. KB에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고, 윤 회장에겐 마지막 임무가 기다리고 있다. 최고경영자 자리를 한 번 더 하려다가 실패한 역사는 무수히 많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을 독차지했던 노키아의 CEO 올리페카 칼라스부오는 최고의 실적에 안주하며 변화를 늦췄다가 스마트폰 사업 몰락으로 이어졌다. 노키아 신화가 무너진 순간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수에즈운하를 성공적으로 개척해 낸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레셉스는 수에즈와 똑같은 방식으로 파나마운하에 도전했다가 완전히 파산했다. 자신도 모르게 과거 방식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맞는 시기와 상황이 있고, 이게 변하면 리더십도 바뀌어야 한다.

사실 한국 금융사에서 회장을 둘러싼 지배구조는 늘 이슈였다. 자신을 위협할 2인자는 절대 키우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신한이 그랬고, 하나가 그랬고, KB가 그랬다. 출중한 후보들이 중간에 줄줄이 좌천됐다. 영업을 잘 모르는 인사라인이 경영진을 장악하고, 회장의 개인적 친분으로 고속 승진했다. 퇴임 후 자신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목적이다.

이 때문에 윤 회장이 9년에 걸쳐 공들인 KB금융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 금융계 관심이 높다. 일찌감치 내부 후계자들을 선발해 매년 사외이사들 앞에서 면접을 보고 평가를 받게 해왔다. 윤 회장의 미션은 분명하다. 신한금융을 비롯한 경쟁사에서 가장 두려워할 만한 후임을 차기 회장으로 뽑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리딩뱅크로 치고 나간 윤 회장도 그러지 않았나.

공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KB 내부에서는 쉬쉬하는 분위기이지만 2조원 가까이 쏟아부은 인도네시아 부코핀이라는 아픈 손가락을 후임자가 어떻게 정상화시킬지도 대책을 내놓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제 마지막 미션은 시작됐다.

[송성훈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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