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에 끊어진 전깃줄서 불꽃 ‘산불’로”···하와이 산불 참사 전력회사 책임론 확산

선명수 기자 2023. 8. 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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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첫 보고된 지역 보안 카메라에 숲 속 섬광 포착
전력선 결함 생겼을 때 발생하는 ‘아크 섬광’ 가능성
현지 전력 회사인 하와이안 일렉트릭에 주민들 소송
15일(현지시간) 산불이 휩쓸고 지난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라하이나에서 불에 탄 자동차가 끊어진 전깃줄과 함께 방치돼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하와이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한 마우이섬에서 강풍에 끊어진 송전선이 화재를 일으켰음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산불 초기 전깃줄에서 불꽃이 튀고 곧이어 불길이 번지는 영상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예고된 강풍에도 송전 차단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전력회사의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마우이섬에서 처음 산불이 보고된 쿨라 지역에서 전력 시스템의 결함을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근거가 영상과 데이터를 통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산불이 처음 보고된 지난 7일 오후 10시47분 쿨라지역 마카와오 마을 조류보호센터의 보안 카메라에 숲 속 밝은 섬광이 포착됐다. 이 센터의 선임 연구원인 제니퍼 프리블은 당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무가 전선에 쓰러진 것 같다”며 “숲이 불타고 있다”고 썼다. 당시 하와이 전역에는 허리케인 ‘도라’의 영향으로 최대 시속 130㎞에 이르는 강풍이 불고 있었다.

8일(현지시간) 오전 하와이 마우이섬 마카와오 마을의 조류보호센터 보안 카메라에는 직원들이 소화기를 들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출처/ San Diego Zoo Wildlife Alliance

같은 시각 미국 전역의 전력망을 모니터링하는 회사인 ‘위스커랩스’의 쿨라 지역 센서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위스커랩스 관계자는 당시 이 지역 10개 전력 센서에서 전력망 관련 사고가 포착됐으며, 해당 영상 속 섬광은 전력선에 결함이 생겼을 때 발생하는 ‘아크 섬광(arc flash)’일 가능성이 높다고 WP에 말했다.

WP는 “마카와오 화재는 지난주 마우이섬에서 보고된 여러 건의 산불 중 첫 번째 산불이었으며, 해당 영상은 하와이 전력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확인하는 데이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라고 짚었다.

15일(현지시간) 산불이 휩쓸고 간 미국 하와이주 라하이나에 전신주가 쓰러져 있다. EPA연합뉴스

위스커랩스는 산불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서부 라하이나에서도 7일 오후 11시38분부터 8일 오전 5시까지 34건의 전력 시스템 결함이 기록됐다고 밝혔다. 마우이 전역에 78개의 센서를 보유한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밥 마샬은 “이는 전압이 떨어지며 통상적이지 않은 방전이 일어났다는 의미”라며 “데이터에 나타난 전력망 결함이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여러 산불의 발화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도 주민들의 증언과 영상, 위성사진 등을 인용해 지난 8일 새벽 라하이나 지역에서 강풍에 끊어진 송전선이 건조한 풀밭에 떨어져 불꽃을 일으킨 뒤 곧이어 불길이 번졌다고 보도했다.

소방대원이 신고 접수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진화 작업에 돌입했고 오전 9시쯤 화재가 100% 진압됐다고 밝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산불은 재확산하기 시작했다.

이어 마우이 카운티 당국은 오후 3시30분쯤 라하이나와 외부를 연결하는 우회도로를 차단했고, 3시45분쯤에는 라하이나 중심지와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도로마저 통제되면서 라하이나 주민들의 대피로는 해안도로 하나만 남게 됐다. 외부 지역으로 대피할 수 있는 도로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차량 정체까지 생기며 제 때 빠져나가지 못한 주민들이 다수 희생됐다고 NYT는 전했다.

11일(현지시간) 산불이 휩쓸고 간 마우이섬 라하이나의 도로에서 한 남성이 불탄 자동차들의 잔해 사이를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송전선이 산불의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며 현지 전력 회사인 하와이안 일렉트릭에 대한 주민들의 소송도 제기된 상태다. 하와이안 일렉트릭이 강풍과 산불주의보가 발령된 상황에서 산불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송전 차단 조치인 ‘공공안전 전력차단’(PSPS)을 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원고들은 이 회사가 일부 송전선이 끊어져 초목 등에 접촉한 사실을 알고서도 전력을 끊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2018년 85명을 희생자를 낸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 ‘캠프파이어’ 화재 참사 당시에도 송전선이 산불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전력회사인 퍼시픽가스앤일렉트릭이 피해자들에게 135억달러를 지급한 바 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미국 여러 지역에서 강풍이 예보되면 송전 차단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와이안 일렉트릭은 아직 산불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며 소송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쉴리 기무라 하와이안 일렉트릭 사장은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력 차단에는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는 특수 의료 장비에 의존하는 환자들이나 화재 진압을 위해 물을 끌어와야 하는 소방관 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와이주 당국은 산불 원인을 포함해 산불 전후의 주요 의사 결정과 대응의 적절성을 규명하기 위한 종합적인 조사를 예고했다.

15일 기준 하와이에서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106명으로 늘어났다.

11일(현지시간) 산불이 휩쓸고 간 하와이 마우이섬 라하이나 인근 해안도로에서 마을을 빠져 나가려던 자동차들이 불에 탄 채 방치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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