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앞에서 주눅 들던 디즈니가 드디어 한 건 했다('무빙')
세계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잘 배치된 웰메이드 ‘무빙’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오징어게임> 이후 다시 한번 글로벌 걸작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디즈니 플러스가 지난 9일 선보인 드라마 <무빙>이 전 세계에 호소력을 갖춘 OTT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이하 한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오징어게임>을 필두로 수많은 글로벌 흥행작을 보유한 넷플릭스에 비해 후발주자인 디즈니 플러스는 글로벌하게 주목할 만한 한드를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가 도약할 기회를 잡게 된 듯하다.
<무빙>은 지난 9일 첫 7회를 선보인 이후 모두 20편을 매주 수요일 두 편씩 공개할 예정이다. 7회까지 공개된 내용이 다양한 재미와 풍부한 의미까지 갖추고 캐릭터와 서사 전개, 연출까지 웰메이드하다는 평가 속에 20회 최종화까지 이런 기조를 이어간다면 한드의 새로운 걸작으로 이름을 새길 가능성이 엿보인다.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살고 있는 아이들과, 과거의 비밀을 감춘 채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들이 다가오는 위협에 맞서는 액션 히어로물이다. 하지만 슈퍼히어로들의 액션물로만 한정짓기에는 넘치는 많은 서사들이 담겨 있다.
김봉석(이정하), 장희수(고윤정), 이강훈(김도훈) 등 고등학생 초능력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인간적으로도, 능력자로서도 불안정한 청춘기를 보내고 있다.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초능력이 알려지지 않도록 사는 일은 불편하고 고단하다. 초능력은 이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불행에 가까운 상황에서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에 능력도 함께 성장한다.
부모들인 장주원(류승룡), 이미현(한효주), 김두식(조인성), 이재만(김성균) 등은 먼저 공개된 7회까지에서는 과거에 초능력자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별로 드러나지 않고 능력을 숨긴 채 평범한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이들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은 같은 능력자인 아이들이 주변의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잘 성장하도록 보살피는 일이다.
7회까지는 미국 정보부가 보낸 강력한 초능력자 류승범(프랭크)이 부모와 아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거센 위협으로 등장한다. 이후 회차에는 북한의 초능력자들이 위험으로 다가오는데 부모의 과거의 일들과 연결되는 전개가 예상된다.
<무빙>에는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가치가 잘 맞물려 있다. <오징어게임>이 글로벌한 포맷인 데스게임에, 구슬놀이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한국 놀이를 엮고, 양극화 경쟁사회에서의 생존이라는 보편적인 문제와 한국적인 신파가 잘 결합돼 있었던 점을 연상시킨다.
<무빙>의 초능력자들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감추느라 힘들어하는 구성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이다. 그래서 슈퍼히어로들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이처럼 보편적인 설정을 <무빙>과 서구 슈퍼히어로들이 공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차이점도 있다. 할리우드의 초능력자들은 자신의 힘에 대한 사회적 책무에 대해 고민이 함께 한다면 <무빙>에는 부모 자식간의 한국적 정서가 초능력과 결합돼 있어 다르다.
<무빙>의 부모 초능력자들은 프랭크의 압도적인 능력에 목숨을 잃는 과정에서 자식들을 감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에 더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지만 자식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지 않은 초능력자 부모는 다행스러운 분위기로 죽음을 맞는다. 자식은 평범한 삶을 사느라 전투에 경험에 없지만 부모의 복수를 위해 프랭크를 상대로 무모한 싸움에 나선다.
특히 희생을 전제로 한 한국 부모의 자식에 대한 전통적 사랑은 <무빙>이 세계인들에게 할리우드 히어로물과 차별점으로 제시하는 킬링 포인트로 보인다. 여기에 추후 전개될 남북관계 역시 다른 나라 히어로물에서는 만날 수 없는, 거대하면서도 색다른 서사이기도 하다.
이처럼 <무빙>은 세계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잘 배치돼 있다. 스릴러로서 좋은 흐름을 갖고 있고 학원물, 성장 드라마, 멜로 등의 하위 서사도 풍성하고 잘 짜여 있다. 프랭크와 한국의 초능력자들이 맞붙는 씬이나 프랭크의 1인칭 노컷 운전 씬 같은 액션 장면 연출도 시청자들에게 긴장을 불러일으킬 만큼 솜씨가 좋다. <무빙>은 다양한 호소력을 갖춘 웰메이드 한드다.
물론 <무빙>의 갈 길은 아직 멀다. 20부작 내내 7회까지 보여준 완성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무빙>이 좋은 출발을 이룬 만큼 <오징어게임>의 뒤를 잇는 한드의 걸작으로 마무리 짓기를 기대하며 수요일마다 새 회차들을 챙겨 보게 될 것 같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디즈니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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