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부터 네이마르까지…사우디, 축구 지정학을 재편하다
네이마르(31)가 16일(한국시각)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SPL)의 알힐랄과 2년 계약에 서명했다. ‘로이터’ 등이 추정한 이적료는 9000만유로(약 1314억원), 보수는 1억6000만유로(약 2337억원) 선이다. 이로써 2017년 FC바르셀로나(스페인)에서 파리 생제르맹(프랑스)으로 옮기며 축구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에 이름을 올렸던 세기의 재능은 그 마지막 불꽃을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태우게 됐다. 네이마르는 이번 여름 유럽의 주요 리그에서 사우디로 향한 서른 번째 선수다.
유럽 축구계에 사우디발 외풍이 불어닥쳤다. 오일 머니의 침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여름의 풍경은 여러모로 과거와 다르다.
사우디는 올해 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계약 해지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나스르)를 데려오면서 개혁의 신호탄을 쐈고, 지난 6월 사우디국부펀드(PIF)가 리야드에 연고를 둔 네 개 명문 구단을 인수하면서 국가가 주도하는 리그 발전 계획을 본격화했다. 이후 리야드 마흐레즈, 호베르투 피르미누, 알랑 생막시맹(알알리), 은골로 캉테, 카림 벤제마(알이티하드), 사디오 마네, 후벵 네베스,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알힐랄) 등이 사우디 리그에 합류했다.
유럽축구를 즐겨봐 온 팬들이라면 익숙한 이름들이다. 과거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한 아랍에미리트(2008)나 파리의 주인이 된 카타르(2011)와 후발주자 사우디의 전략은 그 방향성과 야심의 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사우디는 유럽의 현역 스타들을 유치해 자국 리그의 위상을 끌어올린다는 대범한 발상을 실천했다. 축구 이적시장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를 보면 사우디 리그의 현재 가치는 약 9억유로(1조3000억원)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9억5400만유로)에 필적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광풍에 휩싸인 축구계의 반응은 분분한데, 중론은 ‘사우디의 위협을 과장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최고경영자인 리처드 마스터스 회장은 ‘비비시’(BBC)와 인터뷰에서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가) 인지도, 경쟁력, 수익의 측면에서 지금 위치에 도달하는 데 30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세페린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역시 “사우디는 실수하고 있다. (리그를 키우고 싶다면) 경력이 끝나가는 선수들을 사들일 게 아니라 아카데미에 투자해 코치와 자국 선수를 육성해야 한다”라고 했다.
아울러 사우디는 결코 엘리트 선수들의 행선지가 될 수 없고, 유럽 축구 시장의 수요를 떠받치는 ‘하청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이에스피엔’(ESPN)은 네이마르를 비롯해 사우디행을 택한 많은 선수가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고액 연봉을 받는 부담스러운 선수였다는 사실을 짚으며 사우디가 오히려 유럽 클럽들의 고민을 해결해줬다고 썼다. 이어서 이 매체는 “유럽 최고 수준의 클럽을 제치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선수와 계약할 수 있을 때, 사우디 리그의 위상이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우디는 ‘이제 시작’이라는 입장이다. 사우디 리그의 풋볼 디렉터인 마이클 에메날로는 최근 ‘시엔엔’(CNN)과 인터뷰에서 “축구계를 혼란에 빠뜨리면서 우리는 업계를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가치를 더하고 있다”라면서 “사우디 리그의 영향력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뿐 아니라 골프(LIV)와 프로레슬링, 테니스, 크리켓, 복싱, 모터스포츠, 이(e)스포츠까지 아우르는 사우디의 전방위적인 스포츠 투자가 이제 막 첫발을 뗐을 뿐이라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12일 개막한 새 시즌 사우디 리그는 유럽은 물론 한국까지 전세계 170여 개국, 48개 플랫폼과 방송사와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축구 산업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정학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참이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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