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처벌 수위만 높이면 된다는 사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흉기난동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일선에 급박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고 없는 실탄 사격 등을 주문했다. 시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한편 흉기난동 사건을 모방하려는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범죄를 저질렀다간 현장에서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한 셈이다.
그러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대국민 담화가 발표된 당일 경기 용인시에서는 칼을 든 채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이를 제지하는 현장 경찰관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른 A씨가 체포됐다. 나흘 뒤 대구 수성구에서는 19㎝짜리 중식도를 들고 전봇대에 칼을 긁으며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욕설을 하던 B씨가 체포됐다. 다음날에는 전북 완주에서 아파트 단지 내 나무에 식칼을 매달아 놓았던 C씨가 검거됐다.
경찰은 이러한 검거 사례를 이번 특별치안활동의 성과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오히려 경찰청장의 경고가 피의자 또는 예비 범죄자들에겐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대국민 담화 발표 이후 전국에선 일주일 만에 살인 등 강력범죄 12건, 특수상해·폭행·협박 45건, 기타 57건 등 114건의 범죄가 발생했다.
이들이 경찰의 선전포고와 같은 ‘강력대응’ 방침에도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이들이 겪고 있는 정신질환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A씨는 지적장애 3급에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고, B씨도 정신장애가 있었다. C씨는 피해망상으로 치료받았던 이력이 있었고, 현재도 같은 증상으로 강제 입원됐다.
이런 사람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하겠다’는 식의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미래를 생각할 능력이 없거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있는 기간이 20년이든 25년이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 대응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다 보니 일각에선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가진 서현역 흉기난동 피의자 최원종(22)과 같은 사례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사형을 선고해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무차별 범죄로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법률이 발의됐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이 범죄예방에 효과적이라는 논리는 언뜻 보기에 간단명료하다. 이는 범죄를 저질러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범죄에 따른 처벌(손해)의 크기를 더 높게 설정하면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논리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 얻을 이익과 손해를 계산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적용되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이나 합리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는 통하지 않는다.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일컬어 ‘제한된 합리성’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처벌의 강도가 범죄율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강력처벌’을 해결방안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이 방법이 법만 뜯어고치면 완성되는 쉽고 빠른 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최원종이 조현병에 걸린 이유가 사회적 문제는 아니었는지, 그가 치료를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지, 최원종에 대한 사례관리는 왜 되지 않았는지 등 사회 전반의 시스템 문제를 살펴보고 이를 바꾸는 건 지난한 일이다.
살인 예고글을 올린 사람에게 협박죄를 넘어 필요하다면 살인예비 혐의까지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살인예비를 적용할 수 있다’와 ‘살인예비를 적용해 처벌을 해야 한다’는 건 다른 문제다. “형량을 높여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게 도대체 언제적 논리인지 잘 모르겠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전문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이유다.
물론 강력범죄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처벌이라는 것은 이미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요구하고, 이들을 사회로 격리시키는 ‘사후적’ 해결책에 방점을 찍는 행위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범죄를 예방할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신질환자의 구체적인 범행동기는 경찰 조사나 심리상담 몇번으로는 명확하게 밝힐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이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돼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하나만은 명확하다. 조현병 환자인 최원종이 꾸준히 치료를 받았다면, 스토킹 집단이 자신을 수년 동안 괴롭히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나왔더라면,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협박식 강력처벌보단 정신질환자들이 하루 빨리 치료를 받아 사회로 복귀하도록 하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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