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전 울릉도·독도를 향한 의지…학술조사 자료 첫 공개(종합)

김예나 2023. 8. 1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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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8월 16일 조선산악회(현재는 한국산악회)를 주축으로 한 학술조사대 일행 63명이 서울에서 출발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서울 영등포구 독도체험관에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주제로 한 전시 '1947,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를 선보인다고 16일 밝혔다.

전시는 1947년부터 1953년까지 총 3차례 이뤄진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문서, 사진 등 30여 점의 자료와 함께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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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1947∼1953년 학술조사 다룬 기획 전시 선보여
미군정청 출장 명령서·학술조사대 명부·활동 내용 등 주목
1947년 울릉도학술조사대 모습 1947년 8월 16일 남행수 씨가 촬영한 사진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947년 8월 16일 조선산악회(현재는 한국산악회)를 주축으로 한 학술조사대 일행 63명이 서울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대구, 포항을 거쳐 울릉도로 떠나는 '대전호'에 올랐다.

최종 목적지는 독도, 기차와 배를 타고 25시간 30분이나 걸린 여정이었다. 광복 이후 울릉도와 독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조사하기 위한 첫 시도였다.

울릉도와 독도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영토 수호의 의지를 다졌던 학술조사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1947, 울릉도ㆍ독도 학술조사를 가다' 기획전시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16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 위치한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기획전시 '1947, 울릉도ㆍ독도 학술조사를 가다' 개막식에서 1953년 독도 3차 조사에 참여한 김연덕 씨가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2023.8.16 yatoya@yna.co.kr

동북아역사재단은 서울 영등포구 독도체험관에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주제로 한 전시 '1947,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를 선보인다고 16일 밝혔다.

독도체험관이 영등포로 이전한 뒤 처음 열리는 기획 전시다.

전시는 1947년부터 1953년까지 총 3차례 이뤄진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문서, 사진 등 30여 점의 자료와 함께 설명한다.

당시 조사는 민간 단체인 조선산악회가 주축이 돼 과도정부와 함께 이뤄졌으며, 성과를 서울, 부산 등에서 '보고 전람회' 형태로 널리 알렸다.

전시는 약 76년 전 학술조사가 처음 시작되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색창연한 역사적 유적 울릉도를 찾아서' 조선산악회장 송석하가 1947년 제1차 학술조사를 다녀온 뒤 국제보도연맹에 투고한 원고.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조선산악회에서 가을 국토 구명 사업의 하나로 학술조사를 논의하던 상황부터 1947년 8월 첫 학술조사단을 파견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다양한 자료와 함께 공개된다.

특히 1947년 8월 조선해안경비대 총사령관이 조선산악회장에게 보낸 문서, 미군정청이 과도정부 소속 한국인 공무원 6명의 출장을 명령한 공문 등은 처음 공개돼 의미가 크다.

당시 울릉도학술조사대의 대장과 부대장 등의 이름을 기록한 명부, 조선산악회장이었던 석남 송석하(1904∼1948)가 1차 학술조사를 다녀온 뒤 국제보도연맹에 투고한 원고도 볼 수 있다.

미군정청의 출장 명령서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또한,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발효되면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거세질 것에 대비해 2·3차 학술조사를 계획하던 과정 등도 엿볼 수 있다.

울릉도, 독도까지 가는 멀고도 험한 여정을 다룬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은 서울에서 KTX와 쾌속선을 타고 빠르면 5∼6시간 만에 울릉도에 닿을 수 있으나, 조사단이 떠난 1940∼1950년대에는 이동에만 하루 이상 걸렸다.

1953년 3차 조사에 참여한 김연덕 씨가 남긴 기록에는 어려운 상황이 묻어난다.

외무처 일본과에서 조선산악회장에게 보낸 편지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항해하기를 수 시간, 나의 몸 내부에는 난투가 벌어졌다. 저녁 식사 때가 되어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침, 점심 먹은 것은 어족에게 선물했다." (부산에서 울릉도로 가는 배에서 쓴 글)

광복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출항 자체도 쉽지 않았다.

1952년 9월에는 독도 주변에서 갑작스러운 폭격이 벌어지면서 2차 조사단은 아예 입도하지 못했다. 이들은 결국 주위를 돌며 멀리서나마 독도의 높이를 측정해야 했다.

전시는 총 3차례에 걸친 학술조사 내용과 그 결과도 주목한다.

학술조사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의학 등으로 이뤄졌는데 25∼70명 정도가 참여했다.

울릉도학술조사대 일행 해상 수송 관련 자료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조사단의 활동을 찍은 사진에는 지도 제작을 위해 동도와 서도를 측량하는 모습,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점을 알리는 표석을 세우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전시 말미에는 학술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강연회와 보고전람회 관련 자료도 소개한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교육홍보실장은 "당시 학술조사는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울릉도와 독도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재단은 한국산악회로부터 기탁받은 자료를 디지털로 작업해 추후 연구자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전시는 17일부터 볼 수 있으며 10월 31일까지 열린다.

인사말 하는 이영호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16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 위치한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기획전시 '1947, 울릉도ㆍ독도 학술조사를 가다' 개막식에서 이영호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8.16 yato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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