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99>이병철 회장, D램 대폭락에도 1M D램 공장 건설
메모리 반도체 정상을 향한 여정에는 쉼표가 없었다.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한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의 다음 목표는 256K D램 개발이었다. 삼성반도체통신은 1983년 12월 미국 현지법인과 기흥공장에서 동시에 256K D램 개발을 시작했다.
이 역시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전략이었다. 반도체 후발주자인 삼성반도체통신이 미국과 일본 선발주자를 따라잡으려면 이 전략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었다.
미국 현지 법인에서는 이일복 박사와 박용의 박사 등이 256K D램 개발에 투입됐다. 국내에서는 이윤우 이사가 개발팀을 총괄했다.
이윤우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말. “반도체라는 건 제너레이션이 있지 않습니까? 64K에서 256K, 그다음 1M D램으로 나가는 식입니다. 이 제너레이션이 늦어지거나 끊어지면 대가 끊기는 겁니다. 그런데 호암은 이런 단계를 밟지 않고 한꺼번에 시작하는 병렬 전략을 썼어요.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미국 삼성 현지법인과 한국 개발팀 간에 경쟁을 시킨 겁니다.”(이건희 반도체 전쟁)
강진구 삼성반도체통신 사장은 삼성반도체 우수 사원들을 선발해서 미국 현지법인에 연수를 보냈다.
강진구 사장의 회고. “256K D램과 같은 고도의 첨단제품 개발은 처음 디자인 단계부터 설계하는 사람과 공정을 개발하는 사람이 모두 함께 기본사양을 정립해야 하고, 긴밀한 협조 아래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그 가운데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이 빠져 나가면 제품 개발은 상당 기간 늦어진다. 더구나 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제품은 수명이 짧아서 남과 같은 시간에 출하해야 하는데 늦으면 버스 지난 다음 손드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메모리 사업은 시간과의 싸움이고 분초를 다투는 경쟁이다.”(삼성반도체 신화와 그 비결).
강 사장은 회사 직원 가운데 입사 3~5년 차인 우수 인재 32명을 선발했다. 그리고 미국 연수 출발 전에 이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미국 현지법인에는 32명의 연구자들이 256K D램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곳에서 그 사람들과 1대1로 짝을 이뤄 첨단기술을 속속들이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32명을 선발한 것입니다.”
이들은 미국 현지법인에서 낮에는 자기 파트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기술을 배웠다. 모르는 내용은 묻고 또 물었다. 저녁에는 세미나룸과 같은 곳에 모두 모여 밤 늦도록 토론을 했다. 이들은 귀국 후 기흥 반도체연구소에서 근무했다.
1984년 10월 8일. 삼성반도체통신은 256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개발 착수 10개월 만이었다. 미국과 일본 업체 관계자들은 모두 기적이라고 경탄했다.
이윤우 전 부회장은 이 공로로 1985년 4월 20일 제18회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시상식에서 기술상을 받았다.
이윤우 전 부회장의 증언. “256K D램은 미국 현지법인이 먼저 개발했지만 동작 칩을 만든 건 국내 개발팀이 먼저였습니다. 그게 1984년 10월 초였습니다. 평소 감정표현을 잘 하시던 이병철 회장께서 기흥까지 내려와 개발자들을 일일이 껴안아 주고 격려했습니다. 함께 감격에 젖던 그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64K D램과 256K D램 개발 성공 비결로 여덟가지를 꼽았다.
첫째 경제적 타산이나 위험을 초월해 국가적 견지에서 첨단기술에 도전한 확고한 기업가 정신이 있었다. 둘째 부천 공장의 집적회로(IC) 생산 10여년 동안의 경험과 기술, 인력 축적이 있었다. 셋째 세계 경제가 호황으로 전환해 반도체 산업 활기가 되살아났다. 넷째 최신이고 최고이면서 최염가 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다. 다섯째 재미 한국인 박사들의 사심 없는 조국애에서 비롯한 적극 참여로 고도의 두뇌 집단과 기술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여섯째 여종업원에 이르기까지 양질의 근면한 노동력 확보와 훈련이 가능했다. 일곱째 어려운 입지 조건에 적합한 공장 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여덟째 긴축 경제정책 속에서도 각 금융기관의 각별한 이해와 협력을 얻어 소요 자금을 순조롭게 조달할 수 있었다.
삼성반도체통신은 이 같은 개발 상승세를 몰아 1985년 10월 1M D램 개발에 나섰다. 강진구 사장은 1M D램도 미국 현지법인과 국내 기흥공장 두 곳에서 동시에 연구를 시작했다. 기흥 반도체연구소에서는 박용의 박사 중심으로 48명의 개발팀을 구성했다.
1986년 7월 13일. 기흥팀은 마침내 1M D램 개발에 성공했다. 개발 착수 10개월 만이었다. 1M D램 개발은 한국반도체산업사에 새 지평을 연 쾌거였다. 킬로비트(kb)에서 메가비트(Mb) 단위로 넘어가는 분수령이었다.
강진구 사장은 두 팀의 성능을 측정해 본 결과 기흥팀의 제품이 우수해 미국 현지법인의 제품 개발을 중지하라고 통보했다. 미국 현지법인의 연구자들은 이에 반발했다. 미국 인텔이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일류 회사에 있던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경쟁에서 졌다고 연구를 중단하라는 것은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강 사장은 미국 현지법인에 이렇게 말했다. “1M D램은 이미 개발이 끝났으니 4M D램을 개발하시오. 단 이번에도 국내팀에 지면 그때는 끝입니다.”
삼성은 연이은 첨단제품 개발에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반도체 가격 폭락이고 다른 하나는 특허 소송이었다.
D램 반도체 가격은 64K D램을 출하한 이듬해인 1985년 들어 폭락하기 시작했다. 삼성반도체통신은 망연자실했다. 연초 3달러 50센트 하던 64K D램 가격이 불과 몇 개월 만에 50센트까지 곤두박질했다. 당시 제조원가가 1달러 70센트였으니 개당 1달러 20센트 손해였다. 첫 해에만 428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1986년과 1987년에도 적자가 쌓여 누적 적자는 1159억원에 이르렀다.
이런 위기 상황인데도 이병철 회장은 1M D램 생산시설인 3라인 건설을 재촉했다. “빨리 시작해라. 우리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
그러나 건설 공사는 계속 뒤로 밀려졌다. 당시 건설비만 3억4000만달러로 추산됐다. 정부안에서도 반도체 사업을 놓고 이견이 분분했다. 청와대 경제팀은 일본과의 반도체 전쟁에서 이기려면 범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경제팀은 3라인 건설자금으로 1억달러 차관도 받도록 했다.
1987년 8월 6일. 이병철 회장이 갑자기 강진구 사장과 반도체 관련 인사들에게 “점심을 함께하자”고 연락했다.
강진구 사장의 회고. “호암은 이날 단호하게 말했다. '64K D램과 256K D램의 시장 진입이 늦어서 큰 고생을 했는데 1M D램 공장 착공이 늦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일 아침에 착공식을 하자. 내가 기흥공장으로 가겠다'.” 청천벽력과 같은 지시였다. 기흥공장은 발칵 뒤집어졌다.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증언. “3공장 터에 잔디를 쭉 심었는데 하루 만에 다 걷어냈습니다. 관할 경찰서에 발파 허가를 받는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며 기공식 준비를 끝냈어요. 그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어요. 호암은 이날 오전 9시 기흥으로 내려오셔서 기공식을 하셨습니다. 그게 호암의 생전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습니다.” 그해 8월 7일. 기흥공장 3라인 기공식을 한 이병철 회장은 그해 11월 19일 서거했다.
특허 문제는 무방비 상태였다. 특허 담당 부서나 담당자도 없었다. 반도체 특허는 한 건도 없었다. 외국 업체의 특허 공세에 속수무책이었다.
삼성은 부랴부랴 1986년 말 기획실에 특허팀을 신설했다. 팀장직은 김현곤 이사가 맡았다. 가장 난제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의 특허 분쟁에서 삼성반도체통신은 8500달러 보상금을 주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 소송을 매듭지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국 의회에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병철 회장은 평소 “지금은 어려워도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현실로 나타났다. 1987년부터 반도체가 호황 국면으로 바뀌면서 삼성반도체통신은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1988년 한 해에 1649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 회장은 경제 대전환의 흐름을 통찰한 시대의 선각자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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