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약 먹다 끊어도 된다…"치료 미뤘다간 뇌경색까지"

이창섭 기자 2023. 8. 1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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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스타닥터: 라스닥]19 김범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편집자주] 머니투데이가 아직 젊지만 훗날 '명의(名醫)'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차세대 의료진을 소개합니다. 의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질환과 치료 방법 등을 연구하며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젊은 의사들에 주목하겠습니다.

김범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사진=이창섭 기자
"대부분 환자가 '혈압약을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평생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요.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김범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료를 망설이는 고혈압 환자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1980년생의 젊은 김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뇌졸중센터에서 다양한 뇌혈관 질환을 진료한다. 김 교수는 "소혈관 질환 기준으로 뇌경색 환자의 80% 이상이 고혈압을 동반한다"고 말했다. 신경과 교수가 고혈압 환자를 보는 이유이다.

고혈압은 '소리 없는 살인마'로 불린다. 뇌의 혈압이 높으면 혈관이 터져 치매나 뇌경색으로 이어진다. 뇌혈관이 아주 망가지면 팔다리 마비 등 영구적인 장애가 남는다. 심장의 혈압이 높으면 동맥경화증에 걸린다. 심하면 심근경색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많은 환자가 고혈압 약을 먹는 데 주저한다. 김 교수는 "혈압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우려 때문에 치료를 미루다가 결국 뇌경색이 발생한 경우가 있었다"며 "치매가 의심돼 보호자분과 내원했던 환자의 검사 결과를 살펴봤을 때, 고혈압으로 인해 뇌혈관이 망가지면서 인지 기능이 저하되고 결국 혈관성 치매로 이어진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꾸준한 운동을 통해 체중을 감량하고, 짜게 드시는 식습관을 개선하면서 혈압이 많이 떨어져 약을 끊는 분도 간혹 있다"며 "약의 용량을 줄여갈 수 있기에 평생 복용의 두려움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만 "약을 먹는 게 본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함이므로 인생의 목표가 약을 중단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뇌경색 환자는 초기에 바로 혈압을 낮추지 않는다. 김 교수는 "큰 혈관이 막힌 경우 피가 우선 주변의 작은 혈관을 지나며 보상적인 혈액순환을 이룰 수 있게 혈압을 조금 올려놓은 후 뇌경색이 재발하지 않도록 혈압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뇌경색 재발률은 약 5~20%다. 혈압만 잘 조절하면 재발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김 교수는 환자에게 '혈압 일기'를 쓰게 한다. 가정에서 꾸준하게 혈압을 측정해 본인의 혈압이 목표 범위에 들어갔는지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혈압 일기를 쓰게 하면 환자의 복약 순응도도 높아진다. 약을 먹지 않으면 혈압이 다시 올라가는 걸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때 일지를 통해 평균 혈압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혈압 변동성을 체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균 혈압과 별개로 혈압 변동성이 클수록 뇌경색 위험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혈압 변동성은 혈압이 널뛰기처럼 큰 폭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상이다.

혈압 변동성이 높을수록 뇌의 '백질변성' 현상이 잘 관찰됐다. 조그마한 혈관들이 막히는 것이다. 미세혈관이 터지는 것도 혈압 변동성과 관련이 있다. 뇌졸중과 같은 심뇌혈관 질환 발생에 혈압변동이 큰 영향을 주는 이유다.

혈압 변동성이 높은 고혈압 치료에는 '칼슘채널차단제'가 효과적이다. 노바스크(성분명: 암로디핀)가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노바스크를 포함한 칼슘채널차단제를 썼을 때 혈압 변동성을 줄여 간접적으로는 뇌가 망가지는 걸 조금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범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사진=이창섭 기자

노바스크는 출시한 지 30년이 넘은 약이다. 40대 초반의 젊은 교수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노바스크는 오랫동안 사용돼 사용기간만큼 많은 데이터를 쌓았다"며 "다른 계열 약보다 비교적 빠르게 작용해 혈압을 신속하게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급성기 뇌경색 환자의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안증으로 혈압 변동성이 컸던 환자 사례가 있다. 혈압을 재고, 쉬었다가 다시 측정하면 보통은 수치가 떨어진다. 반면 이 환자는 측정한 이후 걱정과 불안 때문에 오히려 혈압이 올랐다. 김 교수는 "결국 다른 약제에서 노바스크로 약을 바꿨는데 굉장히 적은 용량에도 혈압이 많이 떨어졌고, 변동성도 줄었다"며 "환자가 안정감을 느꼈는지 혈압 자체도 많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의료진 입장에서 '오래된 약이라고 해서 배척할 필요 없이, 비교적 근거가 많고 지속적으로 근거를 생산하는 약을 처방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현재 3D 프린트를 이용한 고혈압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3D 프린트로 혈관을 인공적으로 구현한다. 여기에 피와 같은 점도를 가진 물질과 자그만 입자를 같이 흘려보내 고혈압 상태를 만드는 식이다. 김 교수는 "다양한 압력과 혈압 모양을 시뮬레이션하며 이러한 상황이 혈관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 동맥경화를 유발하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 목표는 국내 환자를 위한 고혈압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는 "많은 과거 연구가 외국인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국내 뇌졸중 환자에서 발생하는 소혈관 질환이나 두개골 내 동맥경화 발생 비율과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가 무엇이고, 좋은 목표 혈압은 어느 정도 인가에 대한 데이터를 많이 만들어 내고 싶다"며 "의학의 장점은 '왜'에 대한 답을 환자에게 적용해서 좋은 치료를 받도록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인데 지금 진행하는 연구가 잘 이루어져 최종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로필]김범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1999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2005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 신경과 레지던트로 근무했다. 2016년부터 경희대병원 신경과 조교수·부교수로 일했다. 202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부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2017년 제7회 LG생명과학 미래의학자상 수상, 2018년 대한신경과학회 SK 젊은 연구자상 수상, 2019년 대한뇌졸중학회 젊은 연구자상 수상 등 이력이 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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