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진과 최수영의 껍질을 벗겨버린 '남남'의 클리셰 파괴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8. 1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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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진과 최수영, ‘남남’이 깨운 이 연기자들의 잠재력

[엔터미디어=정덕현] 좋은 작품은 좋은 연기도 깨어나게 하는 걸까. 지니TV 월화드라마 <남남>의 전혜진, 최수영의 연기가 새롭게 보인다. <미스티>나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같은 작품에서 봐왔던 전혜진을 떠올려보면 <남남>에서의 그의 연기는 훨씬 디테일하고 입체적이다. 일관된 캐릭터 속에서도 다양한 감정과 생각의 변화가 느껴진다.

이건 최수영도 마찬가지다. <런 온> 같은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긴 했지만 아직까지 자기만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지진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남남>에서 진희라는 인물 속으로 들어오자 최수영은 마치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이 인물이 가진 다양한 면모들을 자연스럽게 끄집어내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달라지게 만든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꼽고 싶은 건 <남남>이라는 작품이 가진 특이성이다. 이 작품은 캐릭터나 서사 모두 무엇하나 뻔한 클리셰로 그리는 법이 없다. 오히려 그 클리셰를 하나하나 깨겠다고 작정한 듯한 드라마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클리셰에 갇혀 있던 인물들이 드디어 그 바깥으로 나와 새로운 면들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혜진이 연기하는 은미는 진희의 엄마지만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행복해지고픈 인물이다. 그래서 이 인물은 엄마라는 틀에도 또 나이라는 틀에도 갇혀 있지 않다. 또한 클리셰 드라마들이 늘 그려왔던 연애에서 종종 남성 주도적으로 흘러가는 경향 또한 뒤집는다. 은미 앞에 나타난 진홍(안재욱)과의 연애에서 그 관계를 이끄는 건 바로 은미다.

이 인물의 독특함은 자신이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모든 것에 있어서 자기 주도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혈연 같은 관계에 휘둘리지 않는다. 진홍이 진희의 생물학적인 아빠지만, 은미는 자신과 진홍의 관계가 진희와 진홍의 혈연과는 상관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 혈연 관계로부터의 자유로움은 은미라는 캐릭터가 클리셰에 갇히지 않고 입체적이고 살아있는 인물이 된 가장 큰 이유다.

진희 역시 마찬가지다. 진희는 은미의 딸이지만, 지금껏 클리셰 드라마들이 그려왔던 엄마의 보호와 간섭을 받는 그런 딸이 아니다. 그건 엄마가 달라서이기도 하고 진희가 경찰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희는 여전히 소녀 같은 엄마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듯 걱정하는 딸이다. 딸이 엄마 같고, 엄마가 딸 같은 이 관계의 외피는 그래서 진희라는 인물을 우리가 통상적으로 보던 '딸'의 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래서 이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생겨난다. 엄마가 남자친구와 만나는 것에 대해 쿨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남자친구를 집으로 들이는 것에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또 평시에는 엄마의 보호자처럼 보이지만, 막상 엄마가 괴한에게 칼을 맞고 쓰러지자 아이처럼 펑펑 우는 모습을 드러낸다. 진희 역시 통상적인 클리셰 관계 속에 매몰된 그런 딸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이 인물 역시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런 모습은 뒤늦게 나타나 은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는 진홍에게서도 똑같이 보인다. 진홍의 여동생이 진희에게 자신이 고모라며 혈연관계를 마치 권리처럼 드러낼 때 진홍은 단칼에 그 말을 잘라버린다. "30년을 나 몰라라 살았으면 피 섞였다고 그렇게 함부로 갖다 붙이는 거 아냐." 진홍은 이처럼 이상화된 면이 없진 않지만, 우리 시대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혈연이면 가족이 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어떤 관계를 쌓아가느냐가 가족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을.

클리셰를 깨는 지점에서 인물도 틀에 박힌 모습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 인물을 연기하는 연기자들도 그 연기를 통해 어떤 면에서는 틀에 박힌 연기(그걸 강요받았을 게다)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남남>은 그래서 새로운 관계로 만들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면서, 이를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가진 껍질 또한 벗겨버리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전혜진과 최수영이 다시 보이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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