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지 않았던 지난 시간…연습생 안수지, 국가대표 넘버원 되다 [야구월드컵]
[스포츠서울 | 선더베이(캐나다)=황혜정기자] 또박또박. 장타 하나 없이 단타로 매번 출루한다. 그가 걸어온 야구 인생과 비슷하다.
주변에서 그를 ‘연습생 신화’라 부른다. 핫팬츠를 입고 페디큐어를 칠한 채 친구 따라 한 사회인 야구팀을 방문했다. 짧은 거리의 공도 던지지 못했고, 신입 부원보다 야구를 못해 ‘연습생’이라 불리며 언제든 팀을 나갈 것 같은 부원으로 여겨졌다.
그랬던 그가 배트에 ‘깡’하고 공을 맞히는 느낌에 중독됐다. 그때부터 입에 거품을 물 때까지 야구 연습에 매진했다. “친구도 안 만나고 일 끝나면 야구 하러 간 것 같아요.” 그렇게 약 10년이 지난 뒤,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무대에 나가 기죽지 않고 대표팀 최다 안타를 뽑아내는 선수가 됐다.
대한민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외야수 안수지(34)가 지난 9일부터 14일(한국시간)까지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협회(WBSC) 주관 ‘2024 여자야구 월드컵’ 예선에서 대표팀 최다 안타(4개)를 기록하며 유일한 3할 타자(타율 0.333)가 됐다. 출루율(0.429)과 OPS(0.762)는 대표팀 3위에 올랐다.
대표팀 연습 이외에도 밤마다 빠른 공 대응 훈련을 해왔던 것이 빛을 발했다. 주중에는 직장에 다니는 안수지는 퇴근 후 차를 몰고 30분 거리의 타격 연습장을 향해 시속 110~120㎞대 공을 때려내곤 했다.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지만, 잘 안 맞는 날엔 오히려 쌓여요.” 안수지가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 맞붙은 캐나다, 미국, 호주, 멕시코 투수들의 공은 빠르고 예리하고 묵직했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공들이었다. 그러나 안수지는 멕시코전을 제외하고 홍콩은 물론 미국, 호주, 캐나다 투수들의 공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안수지는 “대표팀이 1승이라도 했으면 더 기뻤을 텐데 개인 성적만으로 마냥 기뻐하기가 그렇다”고 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5전 전패를 기록하며 목표했던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힘 좋은 외국 투수들이 던지는 공을 친 비결로 “속구 타이밍을 노려쳤다”고 했지만, 배트 속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안수지는 대표팀에서 배트 속도가 가장 빠른 선수다. 마른 체격에도 코어 힘이 좋아 어떤 공이든 쳐낸다. 이마저도 꾸준한 요가와 체력단련의 결과물이다.
캐나다로 출국하기 2주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안수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창원에서 합숙 훈련을 하던 도중 새끼손가락 골절상과 발목 염좌를 입었다. 부상 부위 통증보다 치료가 더 고됐다. 빨리 낫기 위해 이를 악물고 눈물, 콧물 쏙 빼는 충격파 치료를 매일 받았다. 그런데도 캐나다로 왔을 땐 긴 비행시간 때문에 그의 손가락과 발목은 이미 퉁퉁 부어 있었다.
부상 악령이 끊이질 않았다. 홍콩전에서 상대 투수의 공에 갈비뼈를 직격당해 금이 갔다. 그 상태로 남은 네 경기에 나서 안타를 쳐내고 볼넷을 골라 나갔다. 부상 투혼이었다. 안수지는 이 시기를 돌아보며 “대회가 코앞인데 연습을 원없이 못 해서 답답하고 속상했다”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안수지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홍콩과 첫 경기에서 8-9로 역전패하자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아쉬움과 속상함, 그리고 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아픈 몸을 이끌고 꿋꿋이 버텨왔는데 1승이 눈앞에서 날아가자 그만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안수지는 “내가 안타 하나라도 더 쳤다면 팀이 지지 않았을 것 같았다. 너무 속상하고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질문을 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대표팀 정근우 야수코치는 “수지는 내게 매번 질문을 한다. 야구를 더 잘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서 열정이 많은 선수임을 느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수지는 “(정)근우 코치님께 예를 들어 ‘코치님은 타석에 서기 전에 어떻게 준비하냐’고 묻는다. 그럼 코치님이 ‘평소에 만루 상황을 떠올리며 여기서 안타를 치는 상상을 한다’고 말씀해주신다”라고 전했다. 정 코치는 마지막 경기에서 대표팀 유일 안타를 치고 임무를 완수한 그를 타석에서 빼며 따뜻하게 안아줬다.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안수지와 룸메이트이자 동갑내기인 대표팀 주장 최민희는 그를 “재밌는 친구”라고 한다. 어느 순간에도 ‘드르륵’ 뼈 소리를 내며 밤낮으로 요가를 하는 그를 보자면 ‘재밌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수지는 원체 내색하지 않아요. 공을 맞고도 방에 들어가 끙끙 앓을지언정 아픈 티를 안 내요. 그만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에요.” 최민희가 친구 안수지를 높게 사는 이유다.
성실하게 훈련을 소화해 후배들도 안수지를 잘 따른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묵묵히 훈련하는 언니다. 기복 없이 매 경기 안타를 친다. 세리머니도 참 자연스럽고 멋지게 한다. 정말 멋진 언니”라고 했다.
더 빨리 달리고 싶어 집 근처 아차산에 올라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건 그의 노력 중 일부에 불과하다. “야구 하길 잘 한 것 같아요”라며 배시시 웃는 안수지에게 물었다. 당신의 청춘을 함께한 야구를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고. 안수지가 답했다.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그래서 안타 하나를 더 치고 싶어서요. 그러다가 이왕 하는 거 ‘최고’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재능이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안수지의 그 ‘노력’이 재능이다. 등번호도 1번, 타순도 1번인 안수지가 국가대표 ‘넘버원(No.1)’이 됐다. 야구 실력으로 말이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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