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 안의 '악귀’, 김은희의 청춘헌가(靑春獻歌) [김지현 기자의 게슈탈트]

김지현 기자 2023. 8. 1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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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의 게슈탈트]는 대중문화 콘텐츠와 이슈를 기자의 주관으로 분석한 코너입니다. 나무와 숲, 현상과 본질을 알아차릴 수 있는 혜안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적어도 한 마디는 남겼어야죠. 우리한테 잘못했다고. 우릴 이렇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SBS 금토드라마 '악귀'(7월 29일 종영, 연출 이정림)의 김은희 작가는 세습된 부조리에 대항하는 주인공 염해상(오정세)의 입을 빌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그러나 시대를 장악한 악귀의 손아귀에 놓인 청춘에게 위로는 큰 힘이 없다.

김 작가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태로운 이 시대 청춘들의 대변자, 구산영(김태리)을 통해 오직 스스로의 의지만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한다. 당신도 익히 아는 답이겠지만, ‘악귀’는 돌고 달아 '결국 그것이 답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악귀’는 청춘에 대한 김 작가의 헌사이자 위로이며 안내서다.

‘악귀’는 메타포로 가득하다. 무언가를 가져야 하고, 올라서야 하는 ‘보여지는 욕망‘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른바 Z세대에게 ’악귀‘의 메타포는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의미를 곱씹게 한다. 작품에 굶어 죽은 귀신, ’아귀‘가 등장한 건 우연이 아닐 게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갖고 싶은 욕망, 그것들을 가져야만 충족될 수 있는 허기. 허기는 또 다른 허기가 돼 끝내 채워지지 못한다.


지금, 청춘의 이름을 가진 당신이 눈여겨보는 것은 무엇인가. 애써 외면하면서도 열망하는 그것 말이다. 고급 레스토랑 테이블 위에 명품백을 올리고, 누군가와 와인잔을 부딪히는 친구의 SNS 사진을 본 당신의 동공은 흔들린다. 그 사진은 내 수개월의 급여와 맞바꿔야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안에 속한다는 천박한 안심과 우월감, 부와 계급에 대한 욕망은 나와 우리를 ‘아귀’로 만든다. 누가 이 '허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귀'는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산영을 흔드는 악귀의 정체, 이향이(심달기)를 죽게 한 건 이 허기였다. 원한이 더해진 배고픔은 향이를 태자귀로 만든다. 태자귀는 실제로 한국 민속 신앙에 등장하는 귀신 중 하나다. 죽은 어린아이를 일컫는데, 주로 병마 혹은 영양실조로 죽은 아기 혼령들을 의미했다.

김 작가가 아귀와 태자귀를 ‘악귀’로 선택한 이유 역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귀, 태자귀는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좌절한 영혼인 동시에 자의적인 선택이 아닌 시대의 부조리에 죽임을 당한 영혼이기도 하다. 어쩐지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춘'과 꼭 닮았다.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살아가는 산영이 향이가 됐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백화점을 찾아 명품 브랜드를 휩쓰는 일이었다. 한바탕 소동을 겪은 후 자신으로 되돌아온 산영은 영수증들을 보며 흠칫 놀란다. 1년을 발로 뛰어야 벌 수 있는 액수가 적혀 있다.


해상에게 카드를 돌려주며 "모두 갚겠다“고 말하는 산영의 대사는 한국 드라마에 DNA처럼 내재된 여주인공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 따위가 아닌 ‘자존심’이다. 세상이 제 모든 것을 앗아가도 자존심 만큼은 결코 가져갈 수 없다는 믿음. 아니, 발버둥. 자존심을 지키는 힘으로 산영은 살아간다. 향이는 그 자존심을 꺾어야 산영을 지배할 수 있다.

'악귀'는 왜 눈, 시력을 앗아가는 것으로 산영의 영혼을 조종하려 했을까. 산영의 눈은 꿈을 이루기 위해 바쳐야 하는 재물과 같다.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산영의 눈은 청춘의 딜레마를 의미하는 것 같아 애처롭다. 우리네 청춘은 자신들이 좇는 것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그를 향해 질주한다. 고민하면 뒤처지기에 바로 보고자 하는 마음의 의구심을 애써 지우며 질끈 눈을 감는다. '악귀'는 어느 누구보다 그런 인간의 심리를 잘 아는 존재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경험을 반복한 산영은 해상에게 고백한다. 자신이 향이가 됐을 때 한 행동들은 사실 악귀가 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한 일들이었다는 사실을. 산영은 거울을 제대로 본 후에야 자신을 괴롭혔던 가장 무서운 '악귀'는 향이가 아닌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생전의 향이가 누군가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는, 세상에 속하고 싶은 꿈을 꿨던 평범한 청춘이라는 것도.

'악귀'와의 싸움에서 이긴 산영은 전과 달라져 있다. 결국 행복한 삶을 산다는 의미일까. 냉정하게 '알 수 없다'고 답하는 김 작가다. 어느 누가 오늘의 고비가 끝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청춘에 동화 같은 결말은 없다. 김 작가는 잔인하도록 끝까지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끝내 눈을 잃는 산영이다.

청춘은 좌절의 연속인 동시에 강렬하게 살고자 하는 힘의 본연이다. 김 작가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산영과 함께 청춘의 당신에게 속삭인다. “그래, 살아보자.”라고.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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