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국내 개막전을 앞둔 3월 13일. 두산건설 골프단이 창단식을 열 때만 해도 골프계에선 기대가 컸습니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큐캐피탈파트너스가 자사 이름을 딴 ‘큐캐피탈파트너스 골프단’이 있음에도 2년 전에 자사가 인수한 두산건설 이름으로 골프단을 또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골프는 개인 종목이지만 선수 여러 명을 메인 후원하는 골프단이 늘어난다는 것은 KLPGA투어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다만 골프계에서도 두산건설 골프단이 스타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봤습니다. 신생 구단이 ‘새로운’ 선수이면서 ‘스타급’ 선수를 여러 명 영입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부터 건설시장 경기가 악화한 상황 역시 두산건설이 스타급 선수를 대거 영입하기보다 골프단 창단에 의의를 둘 것이라고 본 골프계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 투어 대표 선수 총출동한 두산건설 골프단
하지만 두산 건설은 스타급 선수가 즐비한 골프단이었습니다. 단순히 스타급 선수로만 채운 것이 아니라 선수 구성에 막대한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받은 골프계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실력, 인기, 장래성…. 3가지 요소를 겸비한 새로운 골프단이 탄생한 것입니다.
두산건설은 임희정(23)을 중심에 세웠습니다. 2019년 KLPGA투어에 데뷔한 임희정은 루키 시즌에만 3승을 올리는 등 통산 5승의 투어 대표 스타입니다. 공식 팬카페 회원만 약 4000명이고, 임희정이 출전하는 대회마다 팬들이 줄지어 임희정의 샷을 구경합니다. 그런 임희정을 영입하기 위해 두산건설은 8억 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산건설은 임희정을 필두로 KLPGA투어 인기스타인 박결(27), 유효주(26)도 함께 영입했습니다. 2015년 화려하게 투어에 데뷔한 박결은 아직 통산 1승이지만 투어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많은 팬의 지지를 받고 있고, 유효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현주(29) 영입 역시 파격적이었습니다. 2021년 KLPGA투어 시드를 잃은 뒤 3년째 2부인 드림투어에서 뛰고 있는 유현주를 거액을 들여 영입했습니다. 두산건설이 그만큼 실력과 인기 모든 부분에 신경을 썼다는 것입니다. 유현주는 비록 2부투어에서 뛰고 있지만, 예능 등 각종 방송 출연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가장 많이 얼굴을 알린 선수입니다. 이 때문에 골프를 즐기지 않더라도 유현주를 아는 대중은 꽤 있습니다.
두산건설 골프단은 미래도 생각했습니다. 아마추어 선수이지만 KLPGA투어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김민솔(17)도 영입한 것입니다. 국가대표 선발전 1위로 태극마크를 차지한 김민솔은 한국여자오픈에 출전해 프로들과 경쟁하면서도 공동 4위라는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특히 당시 대회에서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 262야드(약 240m)를 기록했고, 2라운드 16번홀에서 335야드(약 306m)를 날리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습니다.
● 임희정·유현주 컷 탈락…주인공은 이예원
두산건설은 골프단을 창단하면서 자사 이름을 내건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 대회도 만들었습니다. 총상금 12억 원을 걸며 골프단만큼 큰 공을 들인 대회입니다. 총상금 12억 원은 KLPGA투어 5대 메이저대회를 제외하고는 두 번째로 큰 상금이 걸려있는 대회입니다. 두산건설은 골프단 선수들을 활용해 대회 전부터 이 대회 홍보에 큰 공을 들였습니다. 또 이번 대회는 4라운드로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우천으로 인해 3라운드로 축소됐습니다. KLPGA투어에서 1라운드를 취소하려 하자 두산건설 측에서는 강행하자고 할 만큼 대회에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같은 공과 진심이 담긴 두산건설의 초대 대회에서 두산건설 골프단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선 6월 열린 한국여자오픈 기권 이후 치료에 전념하다 후반기 첫 대회인 제주삼다수 마스터스를 통해 투어에 복귀한 두산건설 골프단 ‘간판스타’ 임희정이 복귀 후 두 번째 대회 만에 컷 탈락했습니다. 이번 시즌 3번째 컷 탈락이자 후반기 첫 컷 탈락을 메인 후원사의 초대 대회에서 한 것입니다.
유현주의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추천 선수로 이번 시즌 처음 출전한 KLPGA투어에서 사실상 꼴찌로 컷 탈락했습니다. 유현주는 11오버파로 컷 탈락했는데, 유현주보다 성적이 좋지 못한 선수는 이나경(12오버파)이 유일했습니다. 유현주의 인기에 힘입어 대회를 홍보하려던 두산건설 골프단 관계자가 매우 당황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그나마 아마추어 김민솔만이 6언더파(공동 9위)를 기록해 톱10 진입에 성공하며 골프단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턱걸이로 컷 통과를 했던 박결과 유효주는 각각 1언더파, 이븐파로 컷 통과를 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김민솔을 제외하고는 리더보드 상단에 두산건설 골프단 선수들의 이름이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이 대회의 주인공은 1차 연장전에서 6m 거리의 그림 같은 버디 퍼트에 성공한 이예원(20·KB금융그룹)과 루키 신분으로 함께 연장을 치른 김민선7(20·대방건설)이 차지했습니다. 특히 김민선7이 최종라운드에서 선두를 달리면서 두산건설의 경쟁사인 대방건설이 최종라운드 내내 중계화면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시즌 KLPGA투어에 진입하면서 큰 기대감을 가졌던 두산건설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남을 KLPGA투어 첫해가 될 것 같습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