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호 변호사 법률칼럼]대형 참사와 개인의 형사책임
안타까운 대형 참사들이 발생해왔다. 가까이는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작년에는 이태원 참사, 고통스러운 기억의 세월호 참사, 멀게는 발생해서는 안 되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및 성수대교 붕괴 참사들이 있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온 국민이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처음에는 충격이, 다음에는 유족과 함께하는 슬픔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냐는 분노가 이어진다. 마지막 단계의 분노 감정은 대형 참사의 사고책임자로 지목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언론과 SNS에서는 사고책임자로 지명된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형사처벌 요구가 들끓게 된다. 이후에는 언론에서 형사절차 진행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압수수색, 구속영장 청구, 그리고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대해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다.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기라도 하면, 부실수사와 법원의 결정을 질타하는 비난 여론이 격화된다. 기소와 함께 공판절차 진행에 대해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다가 공판절차가 진행될수록 관심이 감소하고, 이후 법원의 판결이 가끔 보도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한 이후 진행되는 형사절차와 여론의 대략적인 모습이다. 본 칼럼에서는 어떠한 정치적인 입장 없이 대형 참사의 사고책임자로 지명된 사람들의 개인의 형사책임에 대해서 형사법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대형 참사 사건에서는 형법상 주의의무 위반, 예견가능성 존부, 인과관계 존부 여부가 주로 문제된다. 먼저 주의의무 위반과 관련해서는 대형 참사 발생 이전 단계 및 임박단계에서 대형 참사를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었는지, 그리고 대형 참사 발생 이후 단계에서 이를 중단시키거나 최소화할 주의의무가 있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는 대형참사 사건의 형사책임은 고의범이 아니라 업무상과실치사죄 및 업무상과실치상죄의 과실범이기 때문이다. 과실범은 기본적으로 주의의무 위반, 즉 부주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기존의 판례들을 살펴보면, 명백하게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었던 삼풍백화점 사건과 성수대교 사건에서 사고책임자들의 형사책임을 인정한 반면, 세월호 사건에서는 책임자로 지목된 해경들에 대해서 형사책임이 부정된 사례들이 있었다.
다음으로 예견 가능성이 매우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대형 참사는 사회 통념상 그리고 상식적으로 예견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이례적인 사고가 발생한 이후 사후적인 관점에서 왜 그런 사고를 예측하지 못했냐고 탓하기는 어렵다. 이 부분이 국민의 일반적 정서와 다른 지점이다. 일반 국민은 어떻게 저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냐고 생각하지만, 막상 책임당사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오랜 업무 경력상 이례적인 사고의 발생을 예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견 가능성 유무로 판례에서는 유죄와 무죄가 갈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과관계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 주의의무 위반과 예견 가능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주의의무 위반과 해당 참사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지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설사 책임당사자로 기소된 피고인의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더라도, 해당 주의의무 위반과 무관하게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과관계 문제는 규범적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판단되어야 하고, 형사사건에 있어서는 그 인과관계가 '합리적인 의심할 수 없는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통상 대형 참사의 경우에는 여러 명의 과실이 경합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이 문제 된다.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도1740 판결 등)는 각 단계에 관여한 사람이 전혀 과실이 없거나 과실이 있다고 해도 피해 발생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해 발생에 대한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여 과실범의 공동정범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형 참사에 연루된 피고인의 변호인으로서의 경험에 비춰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참사의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누군가 희생양을 찾아서 형사 처벌이 되는 경향이 있는 듯싶다. 그것이 일반 국민 정서에 카타르시스를 주고, 몇몇 희생양에 대한 형사 처벌로 관심을 집중시켜 국가의 부실 행정에 대한 비난을 회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책임자 개인에게 형사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지,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형사법상 엄격하게 판단되어야 한다. 형사책임이 인정된다면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하겠지만, 대형 참사 당시 국민적 정서 내지 여론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헌법 원칙에 위배된다.
앞으로 비극적인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대형 참사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응집된 국민적 에너지를 지목된 책임자를 형사처벌 하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재발 방지 시스템 마련을 위해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권호 변호사 법률칼럼'은 챗지피티(Chat GPT)와 저작권, 부동산 분양 등 국내·외 현안과 인사이트, 정보를 제공하는 칼럼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다양한 법률 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이권호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강남 구성원 변호사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중기&창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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