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익무해한 '알쓸별잡'이 선사할 '아는 만큼 보는' 재미
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1993년 처음 출간된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시작된 이 말에는 축적된 정보들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생각하는 폭이 더욱 넓어진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같은 책 첫 권 머리말에 적힌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처럼, 결국 알아야 진짜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7년 시작한 tvN '알쓸' 시리즈는 보이는 범위를 상상 이상, 기대 이상으로 넓혀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서로 다른 직업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의 주제를 두고 다양한 관점으로 잡다한 지식을 풀어놓으면, TV를 통해 이들의 대화를 듣고 지켜보는 이들은 그들의 수다에 담긴 전문적인 내용까지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되는 까닭이다. 분야를 넘나드는 전문가들의 지식 대방출의 장을 펼치면서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사전'이란 제목을 붙인 건, 대놓고 공부의 판을 까는 것이 아닌 전문가들의 방대하고 잡다한 수다를 통해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지식을 쌓고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만든 제작진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알쓸' 시리즈의 시작인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은 국내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펼쳐 딱히 쓸데는 없지만 알아두면 흥이 나는 수다를 벌이고, 이를 통해 인문학적 호기심 충족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이후 '알쓸범잡(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알쓸인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으로 이어진 이 시리즈는 기존에 볼 수 없던 '인문학 예능'으로 자리 잡았다.
올여름, 불볕더위와 함께 돌아온 '알쓸'의 네 번째 시리즈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이하 '알쓸별잡')이다. '범죄'와 '인간'으로 대화의 카테고리를 한정했던 이전 시즌들에 이어 또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들었지만, 이를 우리가 사는 '지구'로 한정(?)해 범위를 잔뜩 넓혔다. 코로나19 엔데믹 시대에 발맞춰 잠시 멈췄던 기존의 여행 콘셉트를 되살려 지구별 각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야기를 전 분야에서 파헤치겠다는 야심찬 각오도 담았다. 결국 '알쓸별잡'은 '알쓸' 시리즈 가운데 가장 넓은 분야를 다뤘던 '알쓸신잡'의 콘셉트를 고스란히 잇는다.
'알쓸별잡'의 첫 장이 쓰인 장소는 미국 뉴욕이다. 세계의 광고판이자, 자본주의의 수도이며 기술과 산업 그리고 사람이 모이는 도시인 만큼 현재의 지구, 세계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겠다는 '알쓸별잡'의 기획 의도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전 '알쓸' 시리즈가 그러했듯 출연진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여행을 즐긴 뒤 맨해튼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루프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전쟁과 미국'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첫 화는 뉴욕 역사 박물관을 찾았던 김상욱 교수가 설명하는 뉴욕 역사를 시작으로 뉴욕이 미국의 수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도시로 손꼽히는 이유, 전 세계의 사람이 모이는 복잡한 도시 뉴욕에서 쉽게 길을 찾는 방법, 도심 한가운데 거대한 공원(센트럴파크)이 자리하게 된 배경,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이자 인류 최초의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진행된 맨해튼 프로젝트까지 알차고도 다채로운 수다의 향연을 벌인다.
'알쓸범잡' 패널에서 '알쓸인잡' 메인 MC로 데뷔했던 장항준은 '알쓸별잡'에서도 진행을 맡았다. 적재적소에 가벼운 웃음을 선사하며 분위기를 환기하던 그의 진행 방식은 '알쓸별잡'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한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의 주연으로 해외에서 주목받은 배우 김민하가 장항준의 옆자리를 꿰찼다. 첫 고정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한 김민하는 지구별 여행에 걸맞은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진행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여기에 어느 박사와의 여행에서도 편견 없는 호기심을 터뜨리며 케미를 발산하고, '물음표 살인마'라는 자기소개처럼 샘솟는 궁금증은 '알쓸별잡' 시청자를 대변하는 역할까지 해내며 이어질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이끈다.
'알쓸신잡3'를 시작으로 다섯 번째 '알쓸' 시리즈에 함께하는 물리학자 김상욱은 '인격을 가진 사전'이란 썰을 증명하듯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박학다식한 면모를 뽐낸다. '알쓸신잡'에 이어 오랜만에 돌아온 건축가 유현준과 온화한 미소로 정확하게 팩트를 체크하는 천문학자 심채경은 경력직다운 유연함으로 명불허전 토크를 이어간다. 여기에 '평론계의 아이돌' '한줄평의 마술사'라 불리는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새롭게 합류, 다양한 분야에 걸친 관심사와 지식을 방출하며 '알쓸별잡'에 새로운 재미를 더한다. 특히 프로그램 시작과 함께 보인 "과학적으로 문제없는 영화는 없다"는 김상욱의 말에 "영화가 과학적 사실을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대응하는 이동진의 모습은 앞으로 펼쳐질 '알쓸별잡'의 흥미 요소를 축약했다고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방송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특별 게스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출연은 더욱 풍성한 '알쓸별잡'을 완성한다. 건축과 과학, 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유명한 놀란 감독과 이 분야의 전문가인 박사들의 대화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전 세계 관객을 매혹하는 놀란 감독의 영화를 즐기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로 다가온다.(여기에 박사들이 전공 분야를 살린 다정한 설명은 놀란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고 즐기는데 영양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고, 더욱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알쓸별잡'을 처음 경험한 이동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알쓸' 수다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체력"이라는 감탄과 함께 "돈 내고 들어야 할 이야기를 출연료 받으면서 하는 것 같다"는 한줄평을 남겼다. 그의 말처럼 2화까지 시청한 지금, '알쓸' 시리즈가 그동안 얼마나 백익 무해한 잡학 토크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세상을 보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의 생각과 지식을 엿보고 자연스럽게 습득까지 가능한 '알쓸별잡'의 다음 지구 이야기에 기대가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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