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머리의 루시가 인류 조상이라고? [본헌터⑯]
두 발 보행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와의 만남
*편집자 주: ‘본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바하니 아스파는 버클리 박사과정 입학 동기였다. 30대 초반으로,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선주 부부가 입주한 대학 기숙사 스튜던트 빌리지에서 생활했다. 시커먼 얼굴, 하얀 이, 작고 말랐지만 단단한 체구 등 아프리카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하니 아스파는 에티오피아 지방 부족장의 아들이라고 했다. 부인 역시 부족장의 딸이라고 했다. 아디스아바바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 온 바하니 아스파의 분야는 체질인류학 중에서도 인간의 진화였다. 아프리카에서 발굴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연구한다고 했다. 선주가 의아했던 점은, 바하니 아스파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미국 정부가 전액 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과 에티오피아의 특수한 관계 탓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1937~)이라는 장교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하일레 셀라시아(1892~1975) 황제를 강제 폐위시킨 것은 1974년 9월의 일이다. 이후 황제를 암살하고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뒤 1977년 2월 국가원수로 등극한 그는 에티오피아를 사회주의 독재 국가로 개조했다. 이 과정에서 소련(러시아)의 지원을 받는데, 당연히 미국과는 각을 세운다.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티오피아 관계가 단절되었다.
에티오피아의 초원에서 화석을 연구하던 인류학자들에게도 날벼락이 떨어졌다. 연구자들이 스파이로 몰리기도 했다. 미국인 추방명령이 떨어졌다. 멩기스투 군사정부는 “미국이 에티오피아에서 발굴한 화석을 돌려주지 않으면 단 한 명의 연구자도 내 나라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때 미국이 내민 카드 중 하나가 ‘유학 특혜’였다. 인류학 분야에서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유학생을 받아주기로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져온 화석을 복제할 때마다 비싼 비용을 치르기로 했다. 그 중심에 루시가 있었다.
루시는 1970년대 초반에 나온 비틀스의 노래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는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 등장한다. 비틀스의 존 레논이 아들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 루시에 영감을 받아 지은 곡이다. 1974년 에티오피아 아파 사막의 옛 하다 호수 근처에서 미국의 인류학자들이 어떤 화석을 발굴하던 때에 흥얼거리던 노래가 루시였다. 이들은 여자 어른으로 보이는 이 화석에 루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루시는 정밀도가 높은 아르곤-아르곤 연대측정법을 사용한 결과 320만년 전에 존재했다고 판명되었다. 게다가 두 발로 걸었다. 비틀스 노래의 인기처럼, 루시는 고고학계의 인기 스타가 되었다.
루시는 옛 하다 호수 근처 돌무덤이 쌓여있는 평지의 333구역으로 분류된 곳에서 발견되었다. 루시는 돌멩이랑 섞여 있었다. 화산재가 뼈 안으로 들어가 굳은 상태라 이게 뼈인지 돌멩이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밥 먹고 날마다 뼈만 쳐다봐온 사람들이기에 알아챌 수 있었다. 로또 당첨보다 더 어려운 화석 발견이라고 했다.
그 행운의 주인공은 당시 오하이오주 북부 클리블랜드 자연사박물관에 근무하던 도널드 요한슨(1943~ )이라는 무명의 연구자였다. 미국-프랑스 합동발굴단의 미국쪽 단장으로 참여해 에티오피아 아파에 왔다가 대박을 맞았다. 그는 선주의 버클리대학 지도교수 프란시스 하월이 시카고대학에 근무할 때 가르친 제자였다. 박사논문을 쓰기도 전 루시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프란시스 하월과 도널드 요한슨은 1978년부터 버클리대학에 인류기원연구소(Institute of human origin)를 만들며 의기투합했다. 선주가 버클리에 입학하기 2년 전이었다. 루시를 발견한 도널드 요한슨이 소장을 맡아 펀딩을 책임졌다. 전 세계 학자를 불러모으는 역할은 프란시스 하월 교수가 맡았다.
침팬지와 인류의 공통 조상은 언제부터 갈라졌는가. 오래된 질문이었다. 루시는 과연 최초의 완전한 진화 단계를 이룬 인류의 조상인가.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머리 용량이 커지면서 두발 걷기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루시의 머리용량은 너무 작았다. 500㏄에 불과했다. 500cc는 침팬지와 다를 바 없었다.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뇌용량은 1300~1600㏄에 이른다.
사실 루시의 얼굴은 아랫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침팬지와 거의 같았다. 다만 목 아래는 현생인류와 비슷했다. 루시는 키도 90㎝에 불과했다. “루시가 나무에 살다가 잠깐 걸었을 수 있다”거나 “1924년 남아공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변종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논쟁의 포인트는 인류 진화과정 중에 큰 머리가 먼저 나타났는가, 아니면 두 발 걷기가 먼저 일어났는가였다. 루시를 발굴한 이들은 두 발로 걷고 두 손을 자유롭게 쓰게 되면서 머리 용량이 커지고 인류가 진화했다는 주장을 했다.
내장을 받쳐줘 두 발 걷기를 가능하게 하는 골반 뼈를 증거로 제시했다. 또한 아파 지역에서 추가로 발견된 13개체의 화석과 1978년 탄자니아 라에톨리에서 화산재에 덮여 나온 발자국 화석이 신빙성을 높여준다고 했다.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걸은 흔적이라는 라에톨리의 발자국은 350만년 전 것으로 추정되었다. 루시의 해부학적 특징과 화산재 속의 발자국을 다함께 분석한 사람은 바로 1980년 선주에게 뼈대학을 1년간 가르쳐준 팀 화이트(1950~)였다. 팀 화이트는 도널드 요한슨과 함께 루시를 포함한 이들 화석들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 아파렌시스 종’이라고 명명했다.
아파렌시스.
선주는 버클리에서 이 이름을 처음 들었다. 아파에서 발견됐다 하여 아파렌시스였다. 최초의 인류를 생각할 때 선주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호모 하빌리스(손 쓴 사람), 호모 에렉투스(곧선 사람)였다. 이들은 150만년 전이었다. 루시는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루시를 사람으로 볼 수 있을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루시 발견 이후 하나의 학명이 되었지만 끝까지 이를 믿지 않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대체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를 직립보행 영장류를 일컫는 화석 인류 ‘호미니드’의 가장 오래된 뿌리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2002년 콩고 사헬에서 더 오래된, 600만년 전 이상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 화석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선주는 1983년 팀 화이트, 바하니 아스파와 함께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방문했다. 루시가 나온 동북부 지역 하다에 접근하지는 못했다. 거기로 가려면 부족장들에게 부탁해 에이케이(AK)소총으로 무장한 호송단을 대동해야 했다. 강도들이 들끓고 있다고 했다. 박물관들을 순례하는 선에서 짧은 여행을 했다. 1989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할 때는 루시와 ‘동행’했다. 화석 모조품 두 세트가 여행 가방 속에 있었다. 한 세트당 1500달러씩 주고 샀다.
한국에서도 사람 화석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루시가 아니라 흥수였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맡고 있다.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라는 책을 썼다. 2000년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미군 비밀문서를 최초 보도했고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베트남어판을 냈다. 베트남전에 이어 이번엔 한국전쟁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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