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산책] 박기훈 판화작가의 '공존'... 깎고 긁어내 숨겨진 빛을 드러내다
YTN 뉴스퀘어1층 아트스퀘어에서 박기훈 작가의 초대전이 진행되고 있다.
높은 빌딩이 잠식하는 도심 속에 덩그러니 선 야생 동물의 모습.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관해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칙칙한 회색 도시의 메말라가는 감성, 갈 곳을 잃은 동물들, 점차 인간마저 소외되어 가는 길목에서 인간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작가는 묻는듯하다.
작가는 판화의 채각 기법을 활용한다. 캔버스에 여러 가지 색을 덮은 후 층층이 깎아냄으로써 동물의 형상을 드러내고, 특유의 거친 질감으로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특히 판을 파내는 작업은 상처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날카로운 칼날로 동물의 아픔과 슬픔을 새겨 넣는다.
깎아낸 화면 속 다채로운 빛의 경험과 함께 작가가 던진 물음에 철학적 사색을 즐겨보길 바란다. 전시는 31일까지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우리 인간은 사회 안의 공동체뿐만 아니라 다른 종과의 공생을 생각하며, 인류 전체를 밝힐 의무가 있다. 본인은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동물에 대한 관심과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지는 작품에서 나아가 다양한 생명체에 대한 인간 자신의 질문과 성찰을 담고 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YTN 아트스퀘어 박기훈 초대전 (8.1 ~ 8.31)
박기훈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 갤러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박기훈 작가와의 일문일답
현대 사회에서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과 탐색이 필요하다고 느껴, 공존의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와 함께 자랐어요. 특히 할머니는 유기견을 다 데리고 키우셨던지라 할머니 댁에 가면 강아지가 40마리가 넘게 있었어요. 저는 동물농장에 온 것처럼 너무 재밌었죠. 동물이 제게 친근한 존재였기에 자연스럽게 강아지를 그리게 됐고, 점차 범위를 넓혀가면서 다양한 동물을 작품에 담았죠. 그러면서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나, 사람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게 됐습니다.
주로 다큐멘터리나 SNS를 통해서 영감을 받아요.
요즘 뉴스에서도 인상적인 사건들을 자주 봤어요. 얼마 전 얼룩말 '세로'가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했던 일이 있었죠. 그때 찍힌 사진을 보면 도심 한복판에 얼룩말이 막 뛰어다니고 있잖아요. 저는 상상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거죠. 도심 속에 동물들이 등장해 사람과 동물이 서로 놀라게 되는 그런 낯선 상황들에 특별한 영감을 받게 됩니다.
감정 전달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동물의 감정이 잘 표현되도록 눈빛이라든지 표정 묘사에 신경을 쓰죠. 관객분들도 동물의 눈빛, 표정을 통해서 좀 더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해 주시는 것 같아요.
특히 관객들이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동물을 통해 가족을 많이 떠올리더라고요. 저도 사실 동물을 그릴 때 가족을 생각하면서 그리는데요. 마주 보고 있는 동물을 가족이나, 애인, 혹은 본인을 대입해 보시면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나올 것 같아요.
판화는 동판화, 목판화, 실크 스크린, 석판화 등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방식마다 특색이 다른데, 한 작품에 다양한 기법들을 융합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연구해 왔죠. 그리고 찍어내는 것만이 판화가 아니라 그림을 새긴 '판(版)' 자체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작품을 보면 판화의 여러 기법이 섞여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실크스크린 기법과 채각 기법이 있죠.
작품의 배경인 도시 풍경은 멀리서 보는 시점으로,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도시 빌딩 등을 평면적으로 찍어냈어요. 흑백의 색감으로 거리가 좀 더 멀게 느껴지죠.
동물의 형상은 채각 기법으로 드러내요. 캔버스 위에 여러 가지의 색을 칠하고 말린 후 이미지를 조각도로 깎아내는 거예요. 보통 회화의 방식과 반대로 이뤄지죠. 회화는 물감을 얹으며 점점 더해지는 기법으로 완성되지만, 저는 오히려 깎아내면서 입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깊이 팔수록 명암이 밝은색이 나오도록 제작해 표면에서는 깎아져 들어가 있지만, 오히려 도드라져 보이는 효과를 줘요. 촉감과 질감을 느껴볼 수 있는 재미도 있죠.
판화는 어떻게 보면 '판에 상처를 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림에 상처를 내서 이미지를 표현하는 거잖아요. 깎아내고 긁어내면서 동물들이 느끼는 슬픔을 드러내고, 상처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가끔씩 작품을 직접 만져보라는 얘기를 하는데, 만져서 느껴지는 촉감에 생동감이나 감동을 더 크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작품 초기작은 디스토피아의 느낌이 강했어요.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세상이 발전하지 못해... 이걸 알려야 해'하는 마음으로 우울하거나 슬픈 느낌이 담겨 작품의 색감도 전체적으로 어둡게 표현했었죠. 요즘은 작품의 주제가 좀 더 희망적인 느낌으로 변화하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라는 유토피아적인 이미지를 더 보여드리고 싶더라고요. 동물들의 표정도 마냥 슬프지 않고, 좀 더 호기심이 있고 새로운 곳을 경험하는 낯선 느낌을 담으며, 색감도 더 다채로워졌어요.
앞으로 다루고 싶은 부분들도 많아요. 멸종 위기 동물들을 표현하면서 환경에 대한 메시지라든지 동물과 사람과의 관계,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나... 그러한 내용들을 심층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그림이 가지는 아름다움과 평안함을 함께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YTN 커뮤니케이션팀 김양혜 (kimyh1218@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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