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 팔렸던 장욱진 '가족'…60년 만에 극적인 해후

오현주 2023. 8. 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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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인가.

실체는 없이 몇몇의 기억에만 남아 그저 소문만 무성했던 '가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오는 9월에 예정한 전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2023.9.14.∼2024.2.12 덕수궁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장욱진의 큰딸 장경수 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은 '가족'을 장욱진의 대표작으로 꼽았고, 부인 이순경(1920∼2022) 여사는 "조그만 가족도였는데 두고두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전한 적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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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가족그림' 시작점이 된 1955년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9월 회고전 준비중 찾아내
생애 첫 판매작…막내딸 바이올린 사준 일화
1964년 日 소장가 사간 뒤 60년간 행방묘연
9월 덕수궁관 '장욱진 회고전'에서 일반공개
장욱진의 ‘가족’(1955·6.5×16.5㎝)이 일본 오사카의 소장자 아틀리에 벽장에서 발견된 직후. 1964년 반도화랑에서 열린 장욱진의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소장가에게 팔린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이 6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해질녘인가. 붉은 배경 뒤로 작은 집 한 채가 보인다. 커다란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자리잡은 그 집, 빼꼼히 열린 문 안에서 네 가족이 밖을 내다보고 있다. 오랫동안 그렇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가. 왜 이제야 왔느냐는 원망도 할 법한데, 60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이들은 여전히 해맑다.

온전히 내 작품, 아니 내 가족이란 뜻인가. ‘1955 UCCHINCHANG’(1955년 장욱진)이란 서명이 상단에 큼지막하게 박힌 이 작품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장욱진(1917∼1990)의 ‘가족’(1955)이 오랜 타국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60년 만에 일본에서의 귀환이다. 장욱진이, 생애에 걸쳐 그린 30여점의 ‘가족그림’ 가운데 가장 애정했다는 작품은, 1964년 서울 반도화랑에서 열린 장욱진의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소장가에게 팔린 이후 행방이 묘연했더랬다.

장욱진의 ‘가족’(1955·6.5×16.5㎝)이 60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와 일반에 공개된다. 1964년 반도화랑에서 열린 장욱진의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소장가에게 팔린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가족’에 대한 보존처리과정을 끝낸 뒤 오는 9월 덕수궁관에서 여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서 공개하겠다”고 전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60년간 행방묘연 …일본 소장가 낡은 벽장서 발견

실체는 없이 몇몇의 기억에만 남아 그저 소문만 무성했던 ‘가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오는 9월에 예정한 전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2023.9.14.∼2024.2.12 덕수궁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시오자와 사다오(1911∼2003)라는, 당시 그림을 사갔던 이의 이름만 들고 나선 일본행에서다. ‘장욱진 회고전’의 기획을 맡은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작품의 행방을 캐던 중 소장자의 아들 시오자와 순이치 부부를 찾았고, 오사카 근교의 소장자 아틀리에서 직접 건져냈다.

무작정 아틀리에를 탐색하던 과정에서 눈에 띈 ‘작품 발굴’이 꽤나 극적이었다는 후문이다. “낡은 벽장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손바닥만한 그림”이 기다렸다는 듯 배 학예연구사의 눈에 띄었다는 거다.

장욱진의 ‘가족’(1955)이 발견된 직후.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일본 오사카의 소장자 아틀리에 벽장에서 찾아낸 작품을 함께한 다른 직원에게 넘겨주고 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말 그대로 어른의 손바닥보다 작은 ‘가족’(6.5×16.5㎝)은 이후 이어진 장욱진이 ‘작은 우주’처럼 그려온 숱한 ‘가족그림’의 시작점이란 의미가 적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초로 그린 정식 가족도이자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아이들’만을 그린 유일한 가족도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작품이 든 나무액자가 가진 의미도 남다르다. “월북 조각가 박승구(1919∼1995)가 조각한 액자틀”이라고 유족은 회고하고 있다.

젊은 장욱진, 처음 돈 받고 판매한 작품이기도

사실 미술사적 가치뿐만 아니다. ‘가족’은 장욱진의 진짜 가족에게도 의미가 적잖다. 당시 젊은 장욱진이 처음 돈을 받고 판매한 작품이라는 ‘가족’은 “작품값으로 받은 돈으로 열 살이던 막내딸의 바이올린을 사줬다”고 전해진다. 장욱진의 큰딸 장경수 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은 ‘가족’을 장욱진의 대표작으로 꼽았고, 부인 이순경(1920∼2022) 여사는 “조그만 가족도였는데 두고두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전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장욱진 스스로도 팔려나간 작품에 대한 그리움이 컸나 보다. ‘가족’과 유사한 구성과 색감의 ‘가족도’(1972·7.5×14.8㎝)를 십수년이 지난 이후에 남기기도 했다니 말이다.

장욱진의 ‘가족도(1972·7.5×14.8㎝). 1955년 작품인 ‘가족’과 유사한 구성과 색감의 ‘가족도’를 장욱진은 십수년이 지난 뒤 다시 그렸다(사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렵게 찾아낸 ‘가족’을 이번 ‘장욱진 회고전’에서 공개한다. 전시 출품뿐만 아니라 이후엔 미술관 소장품으로도 남기게 됐다. 미술관은 “소장가를 설득해 작품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구매계약서에도 서명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장욱진은 향토색 물씬한 한국적 소재와 주제, 소박한 조형미로 한국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과 궤를 같이한다. 어린아이의 시선과 붓으로 그은 듯한 단순한 절제미를 무기로, 까치·나무·집·마을·소·닭 등 순진하고 소박한 목가적인 풍경에 가장 큰 세상 ‘가족’을 세웠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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