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 팔렸던 장욱진 '가족'…60년 만에 극적인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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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인가.
실체는 없이 몇몇의 기억에만 남아 그저 소문만 무성했던 '가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오는 9월에 예정한 전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2023.9.14.∼2024.2.12 덕수궁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장욱진의 큰딸 장경수 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은 '가족'을 장욱진의 대표작으로 꼽았고, 부인 이순경(1920∼2022) 여사는 "조그만 가족도였는데 두고두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전한 적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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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9월 회고전 준비중 찾아내
생애 첫 판매작…막내딸 바이올린 사준 일화
1964년 日 소장가 사간 뒤 60년간 행방묘연
9월 덕수궁관 '장욱진 회고전'에서 일반공개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해질녘인가. 붉은 배경 뒤로 작은 집 한 채가 보인다. 커다란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자리잡은 그 집, 빼꼼히 열린 문 안에서 네 가족이 밖을 내다보고 있다. 오랫동안 그렇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가. 왜 이제야 왔느냐는 원망도 할 법한데, 60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이들은 여전히 해맑다.
온전히 내 작품, 아니 내 가족이란 뜻인가. ‘1955 UCCHINCHANG’(1955년 장욱진)이란 서명이 상단에 큼지막하게 박힌 이 작품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장욱진(1917∼1990)의 ‘가족’(1955)이 오랜 타국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60년 만에 일본에서의 귀환이다. 장욱진이, 생애에 걸쳐 그린 30여점의 ‘가족그림’ 가운데 가장 애정했다는 작품은, 1964년 서울 반도화랑에서 열린 장욱진의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소장가에게 팔린 이후 행방이 묘연했더랬다.
60년간 행방묘연 …일본 소장가 낡은 벽장서 발견
실체는 없이 몇몇의 기억에만 남아 그저 소문만 무성했던 ‘가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오는 9월에 예정한 전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2023.9.14.∼2024.2.12 덕수궁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시오자와 사다오(1911∼2003)라는, 당시 그림을 사갔던 이의 이름만 들고 나선 일본행에서다. ‘장욱진 회고전’의 기획을 맡은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작품의 행방을 캐던 중 소장자의 아들 시오자와 순이치 부부를 찾았고, 오사카 근교의 소장자 아틀리에서 직접 건져냈다.
무작정 아틀리에를 탐색하던 과정에서 눈에 띈 ‘작품 발굴’이 꽤나 극적이었다는 후문이다. “낡은 벽장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손바닥만한 그림”이 기다렸다는 듯 배 학예연구사의 눈에 띄었다는 거다.
말 그대로 어른의 손바닥보다 작은 ‘가족’(6.5×16.5㎝)은 이후 이어진 장욱진이 ‘작은 우주’처럼 그려온 숱한 ‘가족그림’의 시작점이란 의미가 적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초로 그린 정식 가족도이자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아이들’만을 그린 유일한 가족도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작품이 든 나무액자가 가진 의미도 남다르다. “월북 조각가 박승구(1919∼1995)가 조각한 액자틀”이라고 유족은 회고하고 있다.
젊은 장욱진, 처음 돈 받고 판매한 작품이기도
사실 미술사적 가치뿐만 아니다. ‘가족’은 장욱진의 진짜 가족에게도 의미가 적잖다. 당시 젊은 장욱진이 처음 돈을 받고 판매한 작품이라는 ‘가족’은 “작품값으로 받은 돈으로 열 살이던 막내딸의 바이올린을 사줬다”고 전해진다. 장욱진의 큰딸 장경수 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은 ‘가족’을 장욱진의 대표작으로 꼽았고, 부인 이순경(1920∼2022) 여사는 “조그만 가족도였는데 두고두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전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장욱진 스스로도 팔려나간 작품에 대한 그리움이 컸나 보다. ‘가족’과 유사한 구성과 색감의 ‘가족도’(1972·7.5×14.8㎝)를 십수년이 지난 이후에 남기기도 했다니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렵게 찾아낸 ‘가족’을 이번 ‘장욱진 회고전’에서 공개한다. 전시 출품뿐만 아니라 이후엔 미술관 소장품으로도 남기게 됐다. 미술관은 “소장가를 설득해 작품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구매계약서에도 서명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장욱진은 향토색 물씬한 한국적 소재와 주제, 소박한 조형미로 한국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과 궤를 같이한다. 어린아이의 시선과 붓으로 그은 듯한 단순한 절제미를 무기로, 까치·나무·집·마을·소·닭 등 순진하고 소박한 목가적인 풍경에 가장 큰 세상 ‘가족’을 세웠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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