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영 시인 '명왕성 소녀' 황금알 시인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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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 소녀'가 황금알 시인선으로 출간됐다.
표제 시 '명왕성 소녀'에서 시인은 '산다는 것이 따스한 빛과 물이 있는/ 저만의 숲길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눈과 얼음의 길을 지나/ 우리는 어느 먼 별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은 함께 갈 수 없다 해도/ 시간과 공간이 휘어버린 그런/ 행성 하나쯤 있다면'이라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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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조영석 기자 = 신남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 소녀'가 황금알 시인선으로 출간됐다.
4부로 나눠 실린 60여 편의 시들은 대체로 시리다. 가슴을 적시는 속울음도, 한 방울의 눈물도 없지만 시선은 읽던 시집의 활자를 떠나 먼 산을 응시하게 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정오를 지나 서녘 빛이 물드는 하오의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시인의 발길이 보인다. '뒤늦게 붉은 상사화 보러 가는 길/ 절정은 이미 지났다고 물소리만 가득하다// 물길 따라 하류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생의 고비를 언제 넘어온 것일까/ 이젠 내리막길이겠지 여기면/ 어김없이 차오르는 오르막길처럼/ 순간 맥일 풀리는 날들// 오늘은 노을의 한 자락이라도 잠시 붙들고/ 불갑사 어느 선방의 마루에 앉으면/ 어디선가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 산사의 어둠을 안고 무념으로 흩어진다/ 잎을 만나지 못한 꽃들도 좌선일까/ 정념의 저 붉은 빛도 언젠가는 무색이 되는/ 안식의 하늘이 어딘가는 있는 것인지(이하 생략)'
그의 시 '낙화, 행운유수'의 한 대목이다. 시인은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는' 상사화, 그 붉은 빛이 서서히 시들어 가는 날 불갑사 상사화 길을 걸으며 '불꽃같은 정염이 무색으로 사라지면 어딘가에 있는 안식의 하늘에서 꽃과 잎이 만나게 될 것인가'라고 묻는다. 상사화야 피고 또 지겠지만 매번 '이번 생은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도 만날 수 없는 상사화는 정염의 붉은 빛만 더해갈 뿐이다.
더구나 '안식의 하늘이 어딘가는 있는 것인지'는 간절함일 뿐, 가능성과는 별개다. 모든 시간으로 그리워해도 끝내 만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처연함이다.
그리워한들 만날 수 없는 것이 어찌 상사화의 꽃과 잎뿐이랴.
표제 시 '명왕성 소녀'에서 시인은 '산다는 것이 따스한 빛과 물이 있는/ 저만의 숲길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눈과 얼음의 길을 지나/ 우리는 어느 먼 별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은 함께 갈 수 없다 해도/ 시간과 공간이 휘어버린 그런/ 행성 하나쯤 있다면'이라고 노래한다.
또 그의 시 '미조낙조'에서는 '정염에도 일몰의 시간이 있을까. 오래전 남해 금산에 두고 온 내 안의 한 사람을 꺼내 본다. 이제는 돌이 되어버린 기다림이라도 있는 것인지, 검붉은 파도만 망부 같은 바위를 쉼 없이 치고 간다. 미조에 가면 늘 죽어도 죽지 않는 낙조가 있다'고 했다.
'시간과 공간이 휘어버린 그런 행성에서 산다면 낙조가 되풀이 살 듯 죽어도 죽지 않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공이 휘어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때문에 저마다 다른 그리움은 시작과 끝이 숙명인 이 세상의 슬픈 특권이다.
그런 특권을 알기에 시인은 '타령조'라는 시에서 '베롱꽃이 스러지는 날, 밤 깊도록/ 저 젓대 소리 아쟁 소리는/ 누구의 속속을 찢어내는 것인지/ 끊어질 듯 이어지는 너의 말들은/ 또 한 세상을 건너가는 약속이려니/ 너와 내가 만난 날은 꽃빛도 환했지만/ 꽃이 피고 지듯 흩어질 날도 있는 것이니/ 잠시 못 본다 한들 무에 그리 못 견딜 일이겠느냐'며 담담하게 숙명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봄비 내리는 날 2층 카페에 앉아 시간을 잊은 채 창밖을 보는 관조이기도 하고, 스산한 가을 산길을 혼자 걷는 독백이다.
가을 길을 가득 채운 시인의 독백은 소멸해가는 것들에 대한 여린 연민으로 이어진다.
'차창에 꽃잎 한 장, 어디선가/ 날아와 앉더니/ 봄바람에 어린 새처럼/ 온몸을 떨고 있다// 가뭇없이 떠날 줄 알면서도/ 잠시라도 필연의 인연처럼/ 붙들지 못해 난, 그저 긍긍할 뿐// 가는 봄, 몇 번을 보내야만/ 떨어지는 꽃잎에 무심할 수 있을까(이하 생략)'
그의 시 '꽃잎, 유서 같은'의 일부분이다. 어린 새처럼 온몸을 떨고 있는 꽃잎 하나에도 전전긍긍하며 무심할 수 없는 것이 시인임에야. 다시 시집을 덮고 먼 산을 본다.
kanjo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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