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민, ‘네타냐후를 어찌하오리’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3. 8. 16. 07:3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정부를 견제하는 대법원 권한을 없애는 법안’이 우익 연정이 지배하는 의회를 통과했다. 이로 인해 40년 지기인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이에 긴장감이 팽배하다.

“비비, 당신이 하는 말엔 하나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사랑하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예전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함께 찍은 사진을 주면서 그 안에 넣은 문구다. ‘비비’는 네타냐후의 애칭으로 두 사람이 얼마나 ‘절친’인지 짐작게 한다. 그런데 40년 지기인 두 사람 사이에 요즘 긴장감이 팽배하다. 네타냐후가 바이든의 강력한 만류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소위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부당한 결정을 견제해온 대법원 권한을 축소해 이스라엘이 사회적 혼란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극우 연정이 올봄부터 눈엣가시로 여겨온 대법원을 통제하기 위한 작업에 나서자 바이든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해 골치 아파했다.

2016년 3월9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왼쪽)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PHOTO

이스라엘 대법원은 오랜 세월 ‘합리적 범위를 벗어난’ 정부의 주요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으로 위상을 떨쳐왔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해 극우 연정을 꾸린 네타냐후 총리가 유대교 정당 샤스의 아리예 데리 대표를 내무 겸 보건장관에 임명한 일이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탈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그를 장관에 임명한 것이 부당하다며 지난 1월 ‘찬성 10 대 반대 1’로 해임 명령을 내렸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는 임명한 지 한 달도 안 된 그를 해임해야 했다.

그런데 정부를 견제하는 대법원 권한을 없애는 법안이 7월24일 우익 연정이 지배하는 크네세트(의회)를 통과한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정부가 민의의 결정에 따라 정책을 실천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야당은 이번 개정안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이스라엘을 권위주의적 국가로 개조하기 위한 악법이라며 총력 투쟁을 다짐했다. 네타냐후는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반대 여론이 커지자 오는 11월까지 야당과 협의해 절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스라엘 야권 등에선 부패 혐의로 2020년 5월부터 재판을 받아온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방패막이로 법 개정을 주도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그가 이끄는 극우 연정은 검찰총장의 각료 조사권 및 기소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법안도 제출했는데, 이는 대표적 ‘반(反)네타냐후’ 인사로 꼽히는 갈리 바하라브-미아라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7월27일 미국 공영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사법개혁안과 내 재판은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법개혁안이 통과되었으니 대법원 명령으로 자신이 해임한 데리 전 내무 겸 보건장관을 조만간 복직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제의 사법개정안이 통과되자 이를 주시해오던 미국 백악관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불행한 일(unfortunate)'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이스라엘과의 전통적 맹방 관계를 고려해 네타냐후 이름이나 개정안의 비민주성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 외교적 표현을 쓴 것 자체가 네타냐후에 대한 바이든의 불쾌감과 실망감을 표출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크네세트 표결이 다가오자 네타냐후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야당을 포함한 모든 반대 세력과 ‘최대한의 합의’를 이끌어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는 허사로 돌아갔다. 네타냐후가 이끄는 극우 연정은 7월24일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극우파 의원 64명 단독으로 개정안을 통과시켜 바이든의 요청을 보란 듯이 거부했다. 이번 사법개혁안과 관련해 바이든은 지난 3월에도 공개적으로 ‘많은 이스라엘 국민과 마찬가지로 깊이 우려한다. 네타냐후 총리가 그 길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며 그의 이름까지 거명하면서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자 네타냐후는 곧바로 ‘이스라엘은 가장 절친한 우방을 포함해, 어느 나라의 압력도 받지 않고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주권국’이라고 맞받아쳤다.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네타냐후가 주도한 사법개혁안 통과에 ‘불행한 일’이란 표현으로 유감을 표명했지만, 그렇다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법개혁안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최근까지 네타냐후를 백악관에 초대하지 않았다. 그가 이끄는 연정을 가리켜 ‘역사상 가장 극우적인 정부’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부를 견제하는 대법원 권한을 없애는 법안’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시위대. ⓒREUTERS

미국 정치권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향력

바이든 대통령이 꺼내들 수 있는 위협적 카드는 매년 38억 달러에 이르는 군사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는 일이다. 그 경우 ‘반이스라엘 노선’으로 비쳐질 수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반이스라엘 정치인’으로 찍히면 미국 정가에서 치명상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의 대표적 진보 인사인 프라밀라 자야팔 하원의원이 이스라엘을 가리켜 ‘인종주의국’이라고 말했다가 동료 의원 43명이 일제히 비난하자 결국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에는 공화·민주당 의원 325명이 하원 세출위원회에 연대 서한을 보내 대(對)이스라엘 군사지원 축소를 반대한 일도 있었다. 미국 정치권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잘 보여준 사례다.

바이든은 네타냐후를 때릴 경우 자칫 미국 내 반이스라엘 감정을 부추겨 내년 11월 자신의 재선 도전은 물론 의회 중간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미국 유권자 가운데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이고, 이들은 강력한 이스라엘 옹호자다. 공화당이 ‘반이스라엘 정권’이란 프레임을 들고나와 정치 공세를 펼칠 경우 선거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공화당 대권주자인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바이든이 이스라엘 국내 정치를 놓고 시시콜콜 간섭하는 건 잘못된 처사”라며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상호방위협정 체결을 추진 중이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이 협정의 선결 조건이라, 네타냐후 총리도 협정이 체결되기를 반기고 있다. 이 협정이 성사되려면 이스라엘과 사우디 양국이 대담한 양보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 예로 사우디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 290만명이 거주하는 가자 지구 서안을 강제 합병하려는 노력을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네타냐후 극우 연정 인사들이 수락할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사우디 상호방위협정이 성사되려면 결국 네타냐후가 연정의 극우 인사들을 배제하고 중도·좌파 인사들을 끌어들여 유연한 정책을 펼쳐야 하므로 상당한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미국·사우디 상호방위협정이 이스라엘의 안보와 중동 평화라는 대의에 부합하면서도 네타냐후 총리에겐 상당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카드라 귀추가 주목된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