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짐승처럼』 임솔아 “존재의 경계를 넘어서 소통할 때의 그 마음을 그리고 싶었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3. 8. 1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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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들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거의 집 안에만 있어야 했다. 더구나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낮과 밤을 뒤집어 사는 그였다. 끼니도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산책 같은 것도 역시. 우울하고 칙칙한 삶이 이어졌다.

거의 집 안에만 머물고 있던 2021년 여름, 소설가 임솔아는 집에 유기견 강아지 바밤바를 입양했다. 이전에도 동물과 함께 살고 싶었지만, 시간적 여유나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서 계속 미뤄야 했다. 어릴 적 개와 산 적이 있었고, 또 어항에 물고기 베타를 키운 적도 있던 그였다. 이제 시간적 여유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솔아 작가.
강아지를 입양한 이후 바밤바의 밥을 주고 산책도 시켜야 했다. 자연스럽게 바밤바에게 밥을 줄 때 함께 밥을 먹었고, 산책시키며 함께 걸었다. 바밤바를 돌보며 오히려 생활이 안정돼 갔다.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도 견딜만 했다. 대신 머릿속에는 온통 바밤바 생각으로 가득찼다.

“개도 갇혀 살잖아요. 산책을 하면서도 목줄을 해서 자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정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지요. 어떻게 해야 강아지랑 덜 우울하게 지낼까, 하고요. 결국 저도 더 좋아지게 하는 일이었고요.”

머릿속이 바밤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원고를 써야 했다. 다른 이야기보다 지금 가장 깊이 생각하는 일에, 존재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한번 내세워 써보자.

“동물이 나오는 소설을 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옛날에도 써본 적은 있긴 한데, 거의 조연처럼 나온다든가 주변에 나오는 식이었어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발표해본 적이 없어요. 이 정도의 분량이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해 동물을 주인공으로 제대로 한 번 써보고 싶었죠.”

2022년 여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대략 한 달에 걸쳐 원고지 300매, 중편 한편을 ‘뚝딱’ 써냈다. 보통은 80매짜리 단편 한 편을 쓰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는데, 매수로 따지면 단편 서너 편 분량을 한 달만에 쓴 셈이다. 그냥 술술 썼다고, 뚝딱 썼다고 말할 밖에. 오랫동안 단절된 채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자매가 도망간 유기견을 찾아나서며 화해를 모색하는 중편소설을 『현대문학』 9월호에 발표했다.

소설과 시를 동시에 쓰는 임솔아 작가가 지난해 발표한 중편을 다시 다듬고 퇴고해 『짐승처럼』(현대문학)을 최근 출간했다.

소설의 화자 예빈은 엄마의 갑작스런 고백으로 동생 채빈을 가족으로 맞지만, 길에서 만난 동물과 아이들을 집으로 계속 끌어들이는 채빈의 기행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느 날 엄마가 갑작스럽게 죽고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한 채빈 역시 아무 설명 없이 집을 떠난다. 예빈은 엄마가 죽은 지 10년만에 다시 나타난 채빈과 함께 살게 되고, 유기견 유나를 찾아 나서면서 진정한 가족이 돼 간다.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과 동물을 둘이 아닌 하나로 보는 어떤 마음의 탐색을 시도한다.

“내가 책상 의자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으면 별나는 내 발 위에 자신의 턱을 올려놓았다. 그 자세로 잠이 들었다. 내 발가락 사이사이를 핥거나 나 자신의 장난감을 내게 가져다주기도 했다⋯.‘원래 알고 있었어?’ 내가 채빈에게 물었다. ‘뭘?’ ‘이런 마음을.’ ‘그럼.’ ‘왜 나한텐 안 알려줬어?’ 별나의 눈꼽을 떼어주며 내가 물었다. 채빈이 웃었다. 채빈과 나는 비로소 자매가 되어갔다. 삐약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채빈이 엄마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그때처럼.”(78쪽)

소설과 시의 두 전선에서 분투를 이어온 임솔아는 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고민한 이야기를 들고 와야 했을까. 그가 바라보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임 작가를 지난 2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작품을 쓰면서 신이랄까 흥이 났던 장면이 있다면.

“소설의 시작 부문 유기견 유나를 찾는 장면에선 잘 나가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채빈의 이야기로 바뀌는 장면부터 잘 써졌다. 밥을 안 먹는데 요구르트를 빨아 먹는다던가, 채빈이 되게 귀여웠다. 그때부터 신이 났다. 쓰다가 버겁다고 생각돼 저도 모르게 잘 쓸 수 있는 얘기, 재밌을 것 같은 얘기를 썼던 것 같다. 대신, 소장과 간호사 이야기는 처음엔 앞쪽에 생각했지만, 심적으로 좀 부담이 됐는지 후반부에 쓰게 됐다. 워밍업이 필요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이런 구성을 한 건 아니었다.(어려웠던 장면이나 잘 써지지 않았던 장면이 어디였는지) 예빈의 엄마가 돌아가신 부분이 어려웠다. 소설 앞쪽에선 비워뒀다. 앞쪽에 구멍이 크게 난 것처럼 이렇게 비워둬도 되나, 고민은 있었다.”

―예빈과 채빈, 엄마 외에도 유기견 유나와 별나가 주인공인데.

“동물에 대해 쓰는 것도 어려웠다. 별나는 왜 밥을 먹지 않는지 등 별나가 말을 할 수 없어서, 발언권 스피커를 줄 수 없어서 답답했다. 유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나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어디서 뭘 하고 있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 쓰는 사람도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말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장면으로만 보여줘야 했다. 결국 예빈과 채빈의 언어로 나와 있는 거고. 미안한 감정 같은 것도 섞이더라.”
임솔아 작가.
―소설 속 유기견 보호소장의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실제 모델이나 인물이 있진 않다. 특별한 케이스가 있다기보다는 7~8년 동안 지켜본 것들이 쌓여서 들어가게 됐다. 한국 사회에서 탄핵도 미투도 있었는데, 각 커뮤니티마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걸 많이 봤다. 서로 다른 생각이나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싸우는 건 당연하지만, 비슷한 생각이나 목표를 가진 사람들끼리 싸운다는 게 늘 이상했다. 그런데 동물을 두고서도 역시 똑같은 일이 벌어지더라. 입양 정보를 얻기 위해서 카페나 단톡방을 많이 드나들었는데, 그곳에서도 싸움이 많았다. 한국 사회에선 무언가를 하려는 집단에서 다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동물권이든, 미투든, 정치든. 이전에 같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싸우는 이야기를 각각 마이크를 줘서 쓰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만,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쌓인 게 많아서 이번에 술술 나오게 됐다.”

―동물권과 관련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극과 극에 있다는 느낌이다. 어디에 가면 동물권에 대해 잘 알고 그런 분들이 모여 있지만, 정반대 스펙트럼 역시 너무 넓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면 골고루 퍼지는 게 아니라 한쪽으로만 쏠리고 반대쪽으론 전혀 안 퍼져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 같다. 동물권에 대해서도 안 퍼지면 결국 작은 집단 안에서만 반복될 것이다. 좀더 멀리 퍼지는 게 필요하다. 어떤 계몽적인 목표를 가지고 쓰진 않지만 그래도 소설이 좀 도움이 됐으면, 정도의 생각은 갖고 있다.”

―예빈과 채빈, 엄마의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갈리고 계속 바뀌어간다.

“예빈에게 처음 채빈은 이해할 수 없던 사람이었는데, 나중에는 서로 반대로 바뀐다. 만약 사람만 나왔다면 이렇게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극적으로 바뀌는 사람 이야기를 많이 쓰진 않는다. 동물에 대한 시선이기에 바뀌기를 바랐고, 바뀌지 않는 이야기를 쓸 수 없더라.(소설 중간에 채빈이 ‘졌네’라고 말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채빈은 어렸을 때 무방비 상태로 과몰입했다가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런 과거 상처 때문에 예빈이 유기견을 데려오자고 했을 때, 막진 않지만, 예전처럼 마음을 열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빈은 ‘적당히’가 잘 안 되는 아이여서 일부러 거리를 좀 두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마음처럼 되지 못하고 별나에 마음을 열게 되지만, 유나에 대해선 또 거리를 둔다. 얘기를 건성으로 듣고.”

―예빈과 채빈 두 자매 관계도 기우뚱하면서 바뀌는데.

“요즘 누구나 상대방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해가 안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자신은 상황을 잘 보고 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남의 얘기에 귀 기울여 듣기보다는 자기 얘기를 더 귀 기울이기 때문에 잘못 판단하는 것 같다. 예빈 역시 처음에는 자기만 보고 자기 생각만 하다가 나중에 채빈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가족이 된 것 같다고 말을 한다. 피로 이어지면 기본적으로 가족이지만, 피로만 이어졌다고 가족이 되는 건 아니다. 같은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으면 그건 가족이 아닌 상태다. 반면 동물들은 인간과 피도 안 섞이고 심지어 종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서로 들으려고 노력하고 서로 시간을 들여 애정하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애정을 쏟은 캐릭터와 힘들었던 캐릭터는.

“글을 쓸 때 즐거웠던 캐릭터는 채빈이었다. 반면 엄마를 쓰는 건 어려웠다. 이 소설에서 엄마는 직접 말을 하지 않는다. 예빈과 채빈의 기억 속에서만 있는 인물로, 두 딸의 기억 속 조합일 뿐이다. 엄마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하나하나 알아가면서도 끝내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모르겠다는 그 느낌이 중요한 감각이다.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타인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일 수 있다.”

―예빈과 채빈, 별나가 하나가 됐던 ‘그 마음’은 무엇인가.

“예빈은 그전에 동물하고 같이 살았어도 나는 인간이고 동물은 그냥 새, 개, 동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바뀐다. 소설 속에서 그 마음이란 나는 인간이고 쟤는 동물이다, 이런 경계를 넘어서 생명과 생명으로 소통했을 때 생기는 어떤 마음, 진정한 사랑을 느끼던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임솔아 작가.
―이번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쓰던 것과는 좀 다른 시도, 다른 길, 새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선 주인공부터 인간이 아닌 동물 이야기다. 사람이 변하는 것을 별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 이야기를 쓸 때는 따뜻한 결말을 선호하지도, 잘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매가 개를 데려오지 않는, 비극적으로 끝나는 얘기를 죽어도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동물은 반드시 여기서 같이 행복해야 돼, 라는 결말을 쓰게 됐다. 반드시 행복하게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앞으로 소설을 쓸 때도 그 마음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지 않을까. 좀 반가운 일이었다. 새 세계에 들어오는 느낌 같은.”

다이어리 꾸미기, 교환일기 쓰기, 손 편지 쓰기⋯.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 몇 가지 유행이 있었다. 그 가운데 손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하루에도 네다섯 통씩 손 편지를 쓰곤 했다. 가끔은 수업 시간 몰래.

그런데 하루는 자신이 손 편지가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오늘 밤 달이 피를 흘린다니. 친구들이 교탁에서 그가 쓴 손 편지를 낭독하면서 깔깔댔다. 교탁 쪽으로 뛰어나가자, 친구들은 손 편지를 구긴 뒤 그에게 던졌다.

“제 손 편지가 너무 진지했던 것 같았습니다. 당시 친구들이 쓰는 언어에선 좀 우습다고 생각을 했었나 봐요. 애들이 쓰는 언어는 따로 있었으니까요.”

열다섯 무렵, 친구들에게 손 편지 쓰는 것을 그만뒀다. 그럼에도 편지만은 계속 쓰고 싶었다. 그는 몰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책 크기 정도의 스프링 노트에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는 편지를.

시간이 흘러서 고등학생이 되자, 보내지 않는 손 편지는 일기로 바뀌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다니. 일기 쓰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일기에 무엇을 쓸까를 생각하곤 했다. 일기장에 일기만 쓴 건 아니었다. 노래 가사도 써보고, 시 같은 것도 적어보고, 그림도 끄적여 보고, 낙엽도 붙여놓고, 맛있는 사탕 껍질도 붙여보고.

일기를 쓰고 또 썼다. 저녁에 쓰고, 아침에 일어나서 또 쓰고. 얘기가 안 끝나서 또 쓰고. 며칠씩 안 끊고 계속 쓰고. 일기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열 몇 페이지를 쓰기도 했다. 심지어 아르바이트를 할 때조차 썼다. 손님이 없는 시간, 종이 주문서의 뒷장에 쓴 뒤 일기장에 붙였다.

글로써 소통하고 싶은데. 혼자 글을 쓰면서 자연히 읽기도 좋아하게 됐다. 남이 그에게 보낸 편지를 읽듯이. 읽고 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소설로, 문학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국어 교사가 이청준의 단편소설 「눈길」을 액자식 구조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과거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액자식 구조. 액자식 구조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고교 1학년이던 열일곱 살, 그는 액자식 구조로 70~80매짜리 글을 썼다. 그의 첫 단편 습작이었다. 여학생이 어렸을 때 일을 생각했다가 다시 학교를 다니는 이야기. 배운 것을 써보니 써지네. 소설쓰기의 기쁨을 느꼈다.

일기를 쓰면서 소설쓰기로 들어왔다. 일기는 스프링노트에, 소설은 컴퓨터에 따로 써나갔다. 두 번째 소설을 쓸 때부터 어떤 생각이 들었다. 음, 소설은 픽션이니까 다른 설정과 인물을 넣어서 얘기를 쓸 수 있겠구나. 나에겐 중요하지만, 남한테 쉽게 할 수 없는 얘기를 쓸 수 있겠구나.

글 쓰는 사람이 돼야지. 일기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는 어느 덧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교 2학년, 열여덟 살 때였다. 고교를 자퇴한 뒤 그의 버팀목이 된 것도 역시 일기쓰기였다. 일기쓰기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열일곱 살에서 스물두 살까지 5년간. 작가 임솔아의 원점이었다.

그 무렵 혼자서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 읽었다. 잘 보이는 베스트셀러를 읽다가 문학 쪽으로 빠졌다. 민음사 세계문학 쪽으로. 시는 서점 구석에 있어서 거의 읽지 않았다. 시라는 세계에는 닿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 시는 그에게서 멀리 있었다.

스물네 살 늦게 진학한 대학 친구들에게 혼자 쓴 소설을 보여줬다.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했다. 혼자 습작을 오래한 탓에 암호처럼 돼 친구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 고민이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문장, 하지만 나를 지킬 수 있는 문장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 1학년 때 시 수업에 들어갔다. 시를 처음으로 배웠다. 새롭고 좋았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갖고 시를 썼는데,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감정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신기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이 가능할까. 자연스럽게 시에도 빠져 들었다. 소설과 시, 희곡이 잘 구분되지 않았다. 그래, 좋은 글은 다 좋아. 소설쓰기를 이어가는 한편, 시 역시 쓰고 있었다. 시를 쓴다는 자의식도 없이.

1987년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임솔아는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부문에,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에 각각 당선되면 등단했다. 각각 스물여섯, 스물여덟 살 때였다. 이후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를, 장편소설 『최선의 삶』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을 펴냈다.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세계를 소개해준다면.

“작품 세계가 어느 한쪽으로 설명되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소설 한 편을 쓸 때에도 한 줄로 요약될 수 있는 세계일까 봐 피하는 방법을 찾곤 했다. 작품 세계라는 게 정해져 버리면 계속 거기에만 있을 것 같아서. 소설을 낼 때마다 예전과 조금이라도 변할 것. 계속 이것을 생각하고 있어서 한마디로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최선의 삶』은 어떤 내용인지) 세 명의 가출 청소년이 나오는 소설인데, 가출 청소년과 학교 폭력 이야기다. 강이라는 주인공이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는 가족 얘기도 좀 있고.”
―시와 소설을 함께 쓰는 얼마 되지 작가인데. 시와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가.

“소설은 아무래도 몇 페이지씩 장면이 줄줄이 달리는 기쁨이 있다. 시를 쓸 때는 소설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적인 말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시에서는 죽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소설에선 직접적으로 말한다기보다는 다른 식으로 보여줘야 한다.”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는지.

“저와 가까이 있는 소설을 늘 쓰려고 했다. 예를 들면, 저라는 사람이 시시하거나 재미없게 살고 있다거나, 혹은 심지어 별로인 사람이 됐는데, 소설은 엄청 멋있는, 현실과 유리된 소설에 염증이 있다. 그렇게 안 쓰겠다고. 제가 괜찮은 사람이 돼 제 소설도 괜찮게 되자고. 문학이라고 해서 현실과 분리돼 있는 게 아니라, 현실과 밀접하게 붙어 있는,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해왔다. 요즘에는 다른 생각도 한다. 무엇인가를 금기시하던 때가 있었는데, 금기도 계속 유지하면 자기 안에 갇힐 때가 있더라. 다른 생각이 못 들어오게 막는 경향이랄까. 새 세계를 위해 금기를 깨야 맞다고 판단이 들면 금기를 깰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금기를 깬 게 좀 있다. 전에는 가족 얘기를 피하려고 했었다. 금기를 하나씩 깨면서 다음 얘기를 또 쓰게 된다. 예전에는 좋은 결말, 거짓 희망, 입 발린 좋은 말로 결말을 쓰지 않는다는 금기가 있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게 아니면 입 발린 걸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 금기를 깨게 됐다. (오에 겐자부로도 『개인적 체험』에서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몇몇 사람이 『개인적인 체험』의 마지막 해피엔딩 몇 장을 빼야 더 완성도가 높다고 말했는데, 20대 초반 그 책을 읽었을 때 저도 똑같이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뒤쪽의 결말은 빼라고. 심지어 오에의 인터뷰를 찾아봤을 때도 생각했다. 이것은 아니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밖에 쓸 수 없는 마음이 보이는 것도 같다.”

―시 쓰기의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소설도 장식적인 문장을 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시 역시 시적으로 장식하는 문장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시는 장식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 더 쉽다. 장식하는 문장을 쓰려고 할 땐 오래 걸리고 헤맨다. 자신이 써놓고도 안다. 내가 장식을 하고 있구나, 욕망이 끼어들어 시를 망치고 있구나, 라고. 다 무너진 상태가 돼야 다시 쓸 수 있다. 그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고 어렵다.”

―현실에선 시와 소설을 동시에 쓰고 있는데.

“시든 소설이든 하나만 너무 오래 쓰면 힘들고 금방 지치는 것 같다. 저는 좀 번갈아가면서 쓰는 편이다. 소설 쓸 때는 매번 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쓰면 이렇게 길게 안 써도 될 텐데. 소설을 끝내고 시를 쓰면 기분이 좋다. 반면 또 시를 계속 쓰다 보면 소설을 쓰고 싶어진다. 줄줄 쓰고 싶어, 왜 이렇게 참고 있지. 시는 압축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시를 다 쓰고 소설로 다시 넘어오면 기분이 좋다. 왔다 갔다 하는 게 좋다. 새 기분으로 하게 된다. 탈출한 것 같고.”

―작품이나 작가로서 꿈이나 비전이 있다면.

“한 달에 살려면 얼마 정도의 돈이 있어야 하지? 어렸을 때 한번 계산해 본 적 있다. 월세는 얼마, 밥 먹는 데 얼마⋯.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은 월 80만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벌 수 있는 돈하고 엇비슷한 금액이었다. 글을 쓰면서 월 80만원 이상 벌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게 제 꿈이었다. 그 이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저는 지금 꿈을 이뤘다. 물론 글만 쓰진 않지만. 더 이상 작가로서 어떤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진 않지만, 여전히 글과 문학을 좋아하는 그 마음, 애정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옛날처럼 막 활활 불타오르는 것과 다른 느낌으로 변해 있긴 하지만.(롤 모델이 있는지) 어렸을 때에는 사르트르나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했다. 세계 고전문학에 실릴 만한 작품, 정전을 한 편 쓰고 죽고 싶었다. 작가로서 아니라 작품이 훌륭해 세계적으로 남는 작품을. 그런데 지금은 없다. 대단한 작품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명작의 영역은 현실하고 약간 다른 차원인데, 그걸 꿈꾼다는 것 자체가 문학적인 자세로 봤을 때 오류가 있다. 왜 현실 얘기를 하려고 하면서 작품은 현실을 뛰어넘기를 바라는지. 생각 자체가 오류다. 좋은 작품 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명작을 추구하면서 살 수는 없다.”

새벽까지 글을 쓰고 잔 뒤, 낮 12시쯤 일어난다. 강아지 바밤바의 쉬를 시키러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밥을 챙겨주고 그도 밥을 냠냠. 낮에는 책을 읽거나 은행에 가거나 강의를 준비하거나. 해질 무렵 바밤바와 산책을 한 뒤 저녁을 먹고 빠르면 밤 8시, 보통은 밤 10시, 늦으면 밤 12시부터 글을 쓴다. 보통 새벽 4시가 돼야 자고, 마감이 있을 땐 밤을 샌다. 그래도 많이 빨라졌다고. 바밤바 덕분에 더 건강해졌다고. 참, 오래 별러온, 서서 글을 쓸 수 있는 모션 데스크도 샀다고. 작가 임솔아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바밤바와, 소설과, 시를 따라서. 천천히.

엄청 긴장되네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엔 또 다음처럼 말했다. 잘 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인터뷰 내내 긴장한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편안해 보이기조차 했다. 생각이 깊어서였을까. 말 역시 느리고 차분했다. 삶과 그 마음 따라서. 천천히.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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