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지구와 사람 살리는 톡토기를 아시나요” 토양은 생명의 보고
토양 생물은 탄소 저장하고 영양분 순환
유엔 보고서 “전 세계 토양 3분의 1 파괴”
집약 농업 줄이고 외래 침입종 차단 필요
정원의 낙엽이나 화분을 들추면 몸길이가 2~3㎜에 불과한 작은 곤충이 톡톡 튀어 다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바로 톡토기라는 토양 곤충이다. ‘톡톡 튀는 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영어 이름(springtail)도 용수철처럼 튀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
스위스 연방산림·눈·환경연구소(WSL)는 지난 7일(현지 시각) 달팽이 알 위에 서 있는 노란색 톡토기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지구 생물 종(種)의 59%가 톡토기처럼 토양에 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6년 과학자들이 생명체의 25%가 토양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추정했는데, 이번에 그 수치가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다양한 생물 서식지
WSL의 마크 앤서니(Mark Anthony) 박사와 스위스 취리히대의 마르셀 판 데어 헤이던(Marcel van der Heijden) 교수 연구진은 이날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곰팡이의 90%, 식물 85%, 박테리아의 50% 이상이 토양에 서식한다고 밝혔다. 포유류는 3%로 토양과 가장 관련이 적었다.
앤서니 박사는 “지금까지 토양에 가장 많은 종이 서식한다고 추정했지만 증거가 없었다”며 “특히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고세균, 곰팡이, 단세포 생물과 같은 아주 작은 생물이 얼마나 있는지 추정하려는 시도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생물 종이 총 1000억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토양에서 발견되는 종의 비율을 계산했다. 연구진은 토양이나 그 위에 살 거나 토양에서 생애 일부를 보내는 생물을 토양에 서식하는 생물 종으로 정의했다.
이번 추정치의 오차는 15%나 돼. 토양 생물 종은 이론적으로 최소 전체 생물의 44%에서 최대 74%가 될 수 있다. 박테리아는 오차가 더 커 토양에 서식하는 종이 22%에서 89% 사이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이번 추정치는 상당한 오차가 있기는 하지만 토양의 생물 다양성을 현실적으로 제시한 첫 시도”라며 “이런 노력은 생물 다양성과 기후 위기에 직면한 토양 생물들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집약 농업으로 전 세계 토양 3분의 1 파괴
토양은 지각의 최상층으로 물과 기체, 광물, 유기물이 섞여 있다. 지구 식량의 95%가 재배되는 곳이지만, 토양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적다는 이유로 생태계 보전에 대한 논의에서 산호초나 열대우림, 심해만큼 큰 관심을 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토양에는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 네이처지의 교육자료에 따르면 건강한 토양 1티스푼에는 박테리아(세균)가 최대 10억마리 살고 있으며, 그 안에 사는 곰팡이의 길이를 따지면 1㎞ 이상이 된다.
토양 미생물들은 영양분을 순환하고 공기 중의 질소와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나무를 공격하는 병원균이자 서로 영양분을 주고받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토양 생물들은 기후 변화와 식량 안보, 심지어 인간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양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토양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지난해 유엔이 발간한 ‘세계 토지 전망(Global Land Outlook)’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토지의 3분의 1이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집약적인 농업으로만 매년 240억t의 비옥한 토양이 사라지고 있다. 환경 오염과 삼림 벌채, 지구 온난화도 토양을 파괴한다.
지난 1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도 국제 학술지 ‘첨단 미생물학’에 “지표면의 12%는 생물이 살고 있는 ‘생물학적 토양 지각(biocrust)’인데 기후 변화와 토지 이용 강화로 인해 65년 이내에 25~40%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생물이 사는 토양이 사라지면 당장 인간의 건강에도 심각한 피해가 생길 수 있다. 생물학적 토양 지각은 공기 중의 탄소와 질소를 고정하고, 영양분을 재활용할 뿐 아니라 먼지도 막는다. 미생물이 토양 입자를 하나로 묶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생물 토양 지각이 사라지면 전 세계 먼지 배출량과 퇴적량이 5~15% 증가해 기후와 환경은 물론 인간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위스 연구진은 “덜 집약적인 농업을 장려하고 외래 침입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서식지 보존을 강화하면 토양 생물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토양 이식으로도 토양의 미생물들을 복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환경 오염의 척도이자 신기술의 보고
토양 생물의 중요성은 톡토기로도 잘 알 수 있다. 화분에서 이상한 곤충이 나온다고 질겁을 하지만 톡토기는 사실 이로운 곤충이다. 소 배설물이 거름이 되듯 톡토기도 유기물을 분해해 땅에 영양분을 준다. 하지만 환경 변화에 민감해 최근 보기 어려운 곤충이 됐다. 과학자들은 이를 역이용해 토양의 오염 정도를 톡토기로 가늠해보기도 한다.
톡토기가 사라지면 먹잇감인 토양 세균도 위험해진다.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공생(共生)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토양 세균은 환경이 나빠지면 지오스민(geosmin)이라는 유기화합물을 분비해 톡토기를 유인한다. 비 온 뒤 흙에서 나는 냄새를 내는 물질이 지오스민이다. 스웨덴 과학자들은 지난 2020년 톡토기가 흙냄새에 끌리는 이유를 밝혔다. 토양 세균은 서식 환경이 나빠진 상황에서 군집 일부를 먹이로 내주고 대신 포자를 톡토기의 몸에 실어 새로운 서식지로 퍼뜨린다는 것이다.
톡토기는 토양 세균은 물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에도 한 몫 할 수 있다. 지난 2017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희탁·김신현 교수 연구진은 ‘미화학회(ACS) 나노’지에 톡토기의 피부에 난 돌기 구조를 모방해 물과 기름에 모두 젖지 않는 물질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톡토기는 땅속에 살면서 피부로 호흡한다. 만약 피부에 물이나 기름이 묻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톡토기는 피부 표면에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버섯 모양 돌기 수만 개를 만들어 물과 기름을 모두 밀어낸다. 이를 모방한 구조는 수혈용 혈액 튜브와 같은 의료 용기의 오염을 막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참고 자료
PNAS(2023), DOI: https://doi.org/10.1073/pnas.2304663120
Frontiers in Microbiology(2023), DOI: https://doi.org/10.3389/fmicb.2023.1176751
Nature Microbiology(2020), DOI: https://doi.org/10.1038/s41564-020-0697-x
ACS Nano(2017), DOI: https://doi.org/10.1021/acsnano.7b01783
European Journal of Soil Biology(2006), DOI: https://doi.org/10.1016/j.ejsobi.2006.07.001
Nature, https://www.nature.com/scitable/knowledge/library/the-soil-biota-84078125
UNCCD, https://www.unccd.int/resources/global-land-outlook/glo2-summary-decision-m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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