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고비마다 조언… 尹의 ‘제1 멘토’ 윤기중 교수 별세 [尹대통령 부친 별세]

곽은산 2023. 8. 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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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통령 첫 부친상
윤기중 교수 ‘자유시장’ 주창
한국 통계학 기틀 잡은 학자
“부정한 돈은 절대 받지 마라”
尹 검사시절 입버릇처럼 강조
‘강직한 원칙주의’ 부전자전

고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생전 윤석열 대통령의 정신적 기둥이자 국내 통계학과 경제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원로 학자였다. 윤 대통령의 생애 ‘제1 멘토’로서 가치관과 국정철학 정립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고인은 15일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식을 마친 뒤 곧바로 병원을 찾아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현직 대통령이 부친상을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 교수는 1956년 연세대 상경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1968년부터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6년 한국통계학회장, 1992년 한국경제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학 분야 기여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됐고, 한국 사회 소득 불평등을 오래 연구했다.
李 대표 조문 받는 尹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빈소에서 조문을 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를 맞이하며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2013년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와 2021년 대선 출마 결심 당시 등 인생 고비마다 멘토인 윤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당시 윤 교수는 아들에게 고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를 소개해 조언을 듣게 하고 출마를 격려했다.

윤 교수는 강직한 성품을 지닌 원칙주의자였다. 사법고시 합격이 늦었던 윤 대통령이 비교적 늦은 나이로 검사에 임관하자 “부정한 돈은 받지 말라”며 동기와 후배들에게 밥 사라고 카드를 만들어줬다는 일화도 있다. 2002년 검사 옷을 벗고 1년 동안 대형로펌에 몸 담았다가 다시 검찰로 복귀할 때 크게 반겼으며, “부정한 돈은 받지 말라”고 거듭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 6월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저녁 식사를 했을 때도 “국민만 바라보며 직무를 잘 수행하라”고 격려했다.

엄격한 아버지로서 학창 시절 술에 취해 친구 등에 업혀 귀가한 윤 대통령의 엉덩이를 고무 호스로 때렸다는 일화도 있다. 윤 대통령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윤 교수에게 업어치기를 당하고 기절해 이튿날 등교하지 못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동시에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윤 교수는 고교를 졸업한 윤 대통령과 친구들을 연희동 자택 지하실로 불러 ‘마패’라는 국산 브랜디를 따라주며 직접 ‘주도’를 가르쳤다고 한다. 동료 학자들과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하교한 윤 대통령을 불러 앞으로 훌륭한 학자가 되라고 격려하며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12일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왼쪽)의 생일을 기념하며 윤 교수를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초청해 촬영한 기념사진. 대통령실 제공
부친과 각별했던 윤 대통령은 대학 졸업 후 윤 교수가 재직했던 연세대의 중앙도서관에서 주로 사법시험 공부를 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연세대 졸업식 축사에서 “아버지 연구실에서 방학 숙제도 하고 수학 문제도 풀었다”며 “아름다운 교정에서 고민과 사색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생을 설계해 온 윤 대통령은 당선 뒤에도 주변에 부친과 추억담을 자주 꺼냈다고 한다.

윤 교수는 연세대 졸업생들 사이에서도 원칙주의자 교수로 기억된다. 윤 교수가 임용될 당시에는 박사 학위가 없이 교수가 된 이들이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구제 박사’ 제도가 있었다. 논문을 다른 대학 교수들에게 심사받아 학위를 받는 제도로 사실상 서로가 박사 학위를 주는 셈이었다. 윤 교수는 ‘그런 식으로 학위를 받는 건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윤 대통령이 강골이자 원칙주의자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런 부친의 기질을 물려받았다는 게 주변 이들의 전언이다. 윤 교수는 학문적으로는 자유주의 경제학을 주창했다. 학계에서 윤 교수는 자유주의 경제 기본 취지와 원칙만 제대로 지켜도 경제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진 학자로 알려져 있다. 정경유착 문제 역시 우월적 지위를 가진 이들의 반칙 때문으로 보고 시장경제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인생 책’으로 꼽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도 서울대 법대 입학할 당시 윤 교수가 선물한 책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평생의 관심이 양극화, 빈부격차였다”며 “아버지가 제1 멘토였다”고 말한 바 있다.

곽은산 기자 silv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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