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절이 못드려요”...‘그린플레이션’에 식당 반찬이 사라진다
지난 13일 경기도 포천에서 기사식당을 하는 곽모(56)씨는 매년 늦여름 반찬으로 겉절이 김치를 내놓곤 했지만 “올해는 아무래도 못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근 배추와 무 가격이 너무 올라 겉절이 김치를 담글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1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배추 도매 가격은 10㎏에 2만5760원으로 한 달 전인 9880원의 약 2.5배로 뛰어올랐다. 작년 같은 시기(1만9096원)와 비교해도 35% 상승했다. 무 20㎏의 도매 가격(14일 기준)도 한 달 전보다 80% 오른 2만6060원이다.
장마와 폭염, 태풍 피해로 먹거리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식당과 카페들이 반찬과 메뉴를 교체하고 있다. 특히 농경지가 침수돼 공급 물량이 급감한 상황에서 추석까지 가까워지자, 육류와 과일 등 신선 식품 가격은 한 달에 두세배씩 값이 뛰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로 곡물 가격이 불안한 상황에서 예측하기 힘든 기후변화가 식재료 물가 급등에 불을 붙이는 소위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현상이 빚어지면서, 동네 식당과 단골 카페의 메뉴가 사라지고, 대형 마트에서 파는 음식의 재료 배합 비율이 바뀌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겉절이·오이소박이도 없앤 그린플레이션
서울 청량리 한 고깃집은 오이소박이를 매일 새로 담가 기본 반찬으로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오이소박이를 따로 한 접시에 3000원씩 받고 팔기 시작했다. 이곳 주인은 “오이김치가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인 것을 알아 돈 받고 팔기 정말 싫었지만, 오이 값이 너무 올라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오이무침이나 오이김치를 반찬으로 내놓던 다른 일부 한식당도 최근엔 이를 없애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당근무침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
오이는 올해 집중호우로 값이 한 달 만에 3~4배씩 뛰어오른 채소 중 하나다. 장마 동안 생육이 부진해 폐기된 상품이 많은 데다 농경지의 상당 부분이 침수되면서 출하량이 크게 줄었다. 작년 8월 초 소매 가격이 평균 1개당 900원 정도 하던 오이는 올해 1740원이 돼 배로 올랐다. 장마가 끝나면서 가격 오름세가 살짝 꺾였지만, 추석 연휴 수요가 늘면 가격은 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애호박 가격도 평년보다 77%가량 뛰어올랐다. 보통 개당 1300원씩 했던 애호박은 올해 평균 2300원까지 뛰어올랐다. 일부 대형 마트에선 개당 3000원이 넘기도 한다. 애호박나물 반찬으로 유명해진 한 프랜차이즈 식당은 몇 달 전부터 애호박나물을 궁채나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곳 주인은 “애호박 가격이 안정되기만을 기다릴 뿐”이라고 했다.
생수박 주스도 일부 카페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수박 가격이 한 달에 1만원씩, 60%가 넘게 뛰어오르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일부 저가 커피를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업체에선 생과일 수박주스 대신 수박 파우더를 섞어 수박 주스를 팔기 시작했다.
◇외국에선 재료 비율 바꾸는 ‘스킴프플레이션’도
기후변화로 인한 식재료 가격 인상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에선 재료 배합을 슬쩍 바꿔 음식을 더 값싸게 만들거나 질을 떨어뜨리는 이른바 스킴프플레이션(skimpflation)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스킴프는 ‘찔끔 주다’라는 뜻이다.
영국의 한 식품 업체는 아보카도 80%에 적양파 5%를 섞어 팔던 소스에서 최근 아보카도 함량을 77%까지 낮춰 소비자 항의를 받았다. 아보카도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또 토마토 가격이 폭염과 가뭄으로 급등하자 유럽에선 토마토가 들어가는 가스파초(차가운 토마토 수프) 등의 메뉴가 식당에서 사라지고 있다.
인도에서도 토마토 값이 지난달보다 4배가량 뛰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맥도널드는 인도 일부 지역 매장에서 햄버거를 비롯한 메뉴에서 토마토를 제외하기로 했다. 생토마토 대신 토마토 퓌레(과일이나 채소를 삶거나 걸러 농축한 것)나 케첩을 넣고 음식을 만드는 인도 식당도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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