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윤기중 교수, 尹대통령에 “잘 자라줘서 고맙다” 마지막 말
윤석열 대통령의 부친 윤기중(92) 연세대 명예교수가 15일 별세했다. 윤 교수는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화여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을 마친 뒤 병원을 찾아 부친 임종을 했다. 고인은 윤 대통령 도착 20분 후쯤 운명했다고 한다.
빈소는 고인이 재직한 연세대의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됐고 장례는 3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윤 대통령은 17일 발인을 치른 뒤 한·미·일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으로 출국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저녁부터 빈소를 지켰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진표 국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주요 종교계 인사 등이 조문차 빈소를 찾았다. 2008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과 회담을 했던 이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 한·미·일 정상회의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관련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은 조화를 보냈고, 문 전 대통령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로 “윤 대통령이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니 슬픔이 클 것이다. 너무 상심이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위로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순자(전두환), 김옥숙(노태우), 손명순(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 부인들도 조화를 보냈다. 이날 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윤 대통령과 유족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 윤기중 교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조의를 표했다.
고인은 국내 통계학의 기틀을 잡은 학자다. 통계적 방법을 사용해서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연구를 하면서 통계학과 경제학 분야에서 모두 업적을 남겼다. 윤 교수는 통계학에 기반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 추이와 경제 성장과의 관계를 분석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인은 한국통계학회장과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냈고, 2001년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됐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윤 교수는 공주농고를 거쳐 1956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1958년)를 받았다. 이후 한양대 경제학과에서 강의하다가 한일 수교 직후인 1967년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1968년 귀국 후 연세대 상경대 교수로 부임해 1997년까지 강단에 섰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창립 멤버로, 1960~1990년대 미국경제학회(AEA)와 일본계량·경제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1950~1960년대는 석사 학위만으로 교수를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석사 학위만 있는 교수들을 위해 간단히 논문을 쓰면 박사 학위를 주는 ‘구제(舊制) 박사’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윤 교수는 이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윤 교수는 주변에 “그런 식으로 학위를 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에게 고인은 정신적 기둥이었다고 친지들은 전했다. 윤 대통령이 2013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수사로 어려움을 겪을 때, 2021년 대선 출마를 결심할 때 등 인생의 고비마다 부친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종종 언급하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도 국내에 번역되기 전 부친 권유로 읽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지인은 “고인은 윤 대통령이 어릴 때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중시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윤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준비할 때 지인인 고(故)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를 소개해 조언을 듣게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그만둔 직후인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부친과 함께 사전투표를 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인 작년 6월 고인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했다. 당시 고인은 윤 대통령에게 국민만 바라보고 직무를 잘 수행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고인은 윤 대통령이 검사를 할 때 ‘부정한 돈 받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고 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고인께서 지난해 후배 교수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계산한 걸 알고선 취소하더니 자신이 다시 계산할 정도로 자기에게 엄격한 분”이라고 했다.
고인은 몇 해 전까지 17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페티의 저서를 번역하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이 유학한 일본 히토쓰바시대 측에선 2025년 개교 150주년을 앞두고 학교 역사 편찬을 위해 지난 7월 고인 인터뷰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 부모상(喪)을 당한 것은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모친상) 이후 두 번째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연세대 졸업식 축사에서 “아버지 연구실에서 방학 숙제를 하고 수학 문제도 풀었다. 아름다운 연세의 교정에서 고민과 사색에 흠뻑 빠졌고 많은 연세인과 각별한 우정을 나눴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생전 의식이 있을 때 윤 대통령에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유족으로는 아내 최성자씨와 아들 윤 대통령, 딸 윤신원씨, 며느리 김건희 여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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