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총장 “대학 제1 문제는 관치주의… 관여않는 美 보라, 랭킹 톱”
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 입시와 교육을 개혁하겠다고 발표했다. 입시는 대학 교육과 직결되는 문제다. 대학 경쟁력은 미래 인재 양성을 좌우한다. 전국 대학 총장을 연쇄 인터뷰해 입시와 대학 개혁 등 우리 교육을 근본부터 혁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수능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학점도 낮고, 중도 탈락률은 높다”면서 “수능은 자격 기준 정도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대학들이 단순 명료한 전형으로 뽑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 수능부터 ‘킬러 문항’은 안 내기로 했다.
“킬러 문항은 강남 사교육에서 많이 준비시키니 일부 계층에게만 유리한 문제다. 그걸 잘 푼다고 해서 학력이 더 높은 것도 아니다.”
-수능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오지선다형 수능 잘 푸는 사람이 사회 진출 잘하고 일 잘하는 게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한데 수능은 그런 방향과 동떨어진 수십 년 전 패턴이다. 심지어 학생들은 내용은 몰라도 문제만 보면 답을 딱 안다. 내가 뉴욕주립대 교수를 하다가 고려대에 왔을 때다. 미국에서 가르치던 과목을 똑같이 가르치고 객관식 시험을 똑같이 냈는데, 미국은 평균이 80점인데 고대 학생들은 95점 나오더라. 천재인가 했다. 다음 학기에 주관식으로 냈더니 점수가 뚝 떨어져서 미국 애들이랑 비슷하게 나오더라. 우리 학생들이 수능 같은 객관식 문제 풀이에 익숙하다 보니 ‘이런 문제는 이게 답이구나’ 딱 아는 거다.”
수능으로 뽑은 학생 중도 탈락률 높아
-수능 점수로 입학한 학생들은 어떤가.
“학생부전형 등 수시로 입학한 학생보다 학점은 떨어지고, 중도 탈락률도 높고, 장학금 수혜율은 낮다. 수능이 변별력뿐 아니라 타당성도 떨어지는 거다. 대학은 학생이 고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느냐를 알고 싶은데, 수능은 그걸 정확히 측정하지 못한다. 수능은 일종의 자격 시험 정도로 활용하면 된다. 수능 1점 차이로 합격을 결정하는 건 맞지 않는다.”
-수능에 논·서술형 문항을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오지선다형보다는 그게 나을 거다. 오지선다형은 기존 지식 중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이니 과거 지향적이고, 논·서술형은 문제 해결 방식을 볼 수 있으니 미래 지향적이다.”
-서울 주요 대학은 신입생의 40%를 수능 성적으로만 뽑는데.
“교육부가 강제해서 그렇다. 풀어야 한다. 대입에서 가장 큰 문제가 규제다. 지금 세계에서 대학 경쟁력이 가장 높은 곳이 미국이다. 톱 대학의 절반이 미국에 있다. 반면 한국은 국력에 비해 대학 경쟁력이 형편없다. 가장 큰 차이점이 대학 자율성에 있다. 미국 수능인 SAT는 기본적 역할만 하고 나머지는 대학이 알아서 뽑는다. 미국 교육부는 지원은 하지만 규제는 거의 안 한다. 반면 우리 교육부는 철저히 규제한다. 심지어 교육부에는 ‘인재 선발 제도과’가 있다. 국립대도 아닌 사립대의 선발을 왜 교육부가 신경 쓰나. 사립대는 고유한 문화와 인재상이 있는데 정부가 획일적 기준을 세우고 뽑으라고 할 수 있나. 교육부 산하가 아닌 카이스트 등 이공계 특성화 대학들은 입시 규제를 안 받는다. 그 대학은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대인데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고 사립대는 온갖 규제를 한다. 앞뒤가 안 맞는다.”
‘평준화’ 佛·獨 대학들 경쟁력 추락
-대학 자율을 확대하면 입시 부정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부정이 생기면 처벌하고 징계하면 된다. 부정 우려 때문에 대학에 자유를 못 준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대학도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게 목표다. 부정은 우리가 가장 먼저 단속한다. 부정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이 대학 아닌가. 대학이 부정 저지를까 봐 입시를 못 맡긴다는 건 삼성전자에 맡겼을 때 불량품 만들까 봐 걱정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불량품 만들면 삼성전자가 제일 손해 본다. 대학도 불량 학생을 왜 뽑으려고 하겠나.”
-입시에 자율이 확대되면 어떻게 할 건가.
“수능은 최소한 자격 기준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대학에 맡겨주면 좋겠다. 오히려 과거에 입시가 간단했고 사교육도 제일 적었다. 국어, 영어, 수학 시험 보고 대학에서 면접이나 그 대학에 맞는 시험을 쳤다. 고대는 ‘민족’을 강조하니 그런 문제를 내는 식이다. 입시가 단순할수록 사교육이 개입할 여지도 적어진다.”
-대학마다 다르게 뽑으면 입시가 더 복잡해지지 않나.
“과거에도 몇 개 유형으로 수렴됐다. 학생도 지금처럼 수십 군데 원서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맞춰 준비할 수 있다. 이제 인구가 워낙 줄어 대학이 뽑으려는 우수한 학생 수 자체가 줄었다. 상위 10%가 100만명 태어날 땐 10만명이지만 이젠 24만명 태어나니 2만4000명밖에 안 된다. 대학이 입시를 복잡하게 만들수록 지원 학생도 줄어들 것이다. 대학도 손해가 되는 불필요한 허들(복잡한 입시)을 만들지 않는다.”
남아도는 교육 교부금, 대학에 지원을
-대입 관련 사교육비 문제도 심각한데.
“중산층이 자기 소득의 40%를 자녀 교육에 쓰는 건 지나치다. 사교육비 때문에 ‘헬(지옥) 조선’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출산율도 떨어지고 있다.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면 수능 준비를 위해 학원에 갈 필요도 없다. 나머지를 각 대학에 맡기면 저출산 속에서 단순 명료하게 학생을 뽑을 것이고 사교육비도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관치주의’다. 세계 대학 랭킹이 높은 미국은 정부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그보다 랭킹이 떨어지는 한국이나 일본에선 정부가 관리를 세게 한다. 이제 관치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강하게 통제하는 분야가 금융권과 대학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인데, 은행은 세계 10위 안에 못 든다. 정부 규제가 심하니 은행 서비스가 다 똑같다. 대학도 비슷하다. 온갖 규제가 많지 않나. 정부가 규제를 해서 서열을 없애고 평준화한 프랑스, 독일 대학들은 경쟁력이 확 떨어졌다. 1950~60년대 미국의 젊은 학자들이 독일에 유학을 많이 갔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국은 자율을 주고 경쟁을 시키니 많이 성장했다. 우리 대학들도 일단 놔두면 시장 기능으로 잘 돌아갈 텐데 자율을 안 주니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교육부가 15년간 등록금 인상도 규제했는데.
“지금 우리 등록금이 1년에 800만원이다. 한 달에 65만원꼴이다. 웬만한 학원보다 싸다. 학생 한 명 받을 때마다 100만원 적자다. OECD 국가 평균적으로 대학 교육비의 70%를 국가가 대고 30%를 학생이 대는데, 우리는 60%를 학생이 대고 국가는 40%만 댄다. 정부 역할을 늘려야 한다. 당장 유·초·중·고교 예산인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이 남아도니 그걸 대학에 지원해야 한다.”
-부실 대학 문제도 심각하다.
“부실 대학까지 지원하라는 것은 아니다. 지방 대학 중 퇴로를 찾는 곳도 있다. 지금은 대학 문을 닫으면 설립자가 빈털터리로 나가고 재산은 국고로 귀속된다. 국회에 사립대가 문을 닫을 때 잔여 재산 일부를 가지고 나갈 수 있게 하는 법안이 올라가 있다. 그런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김동원 총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매디슨)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하다 고려대로 옮겨 노동대학원장, 경영대학장 등을 지냈다. 지난 2월 21대 고려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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