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열질환 폭증은 시작일 뿐… 기후변화, 심장·호흡기·정신건강 노린다
폭염일수 길면 심혈관·호흡기·감염병 크게 늘어
질병청, 연내 '기후보건 중장기 계획' 수립 방침
37도까지 치솟는 극한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해 여름. 질병관리청 응급실 감시체계가 가동된 지난 5월 20일 이래 온열질환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13일 기준 2,190명으로 2018년 이후 5년 만에 2,000명을 넘었다. 사망자는 29명으로 지난해 연간 9명의 3배를 넘어섰다.
기후변화는 환경 교란을 넘어 인간 건강에 치명상을 가할 위험 요소가 됐다. 열사병, 열탈진 등 온열질환은 시작일 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기후변화로 심뇌혈관질환, 호흡기질환, 신장질환을 앓을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뇌졸중, 심근경색, 폐렴, 신장염, 피부염 등이 거론된다. '기후 우울증'이란 신조어는 이상기후가 정신질환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질병관리청은 이에 올 연말쯤 '기후변화 관련 대응 방안 중장기 계획' 수립을 목표로 기후변화 관리 체계 마련에 착수했다. 지난달 중순에 개최한 기후 포럼, 지난해 3월 발간한 제1차 기후보건영향평가보고서 등이 계획 수립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보는 이러한 논의 자료와 질병청 관계자 및 외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질병청이 연내 공개할 기후변화 대응 보건정책의 윤곽을 예측해 봤다.
다양한 경로·양상으로 건강 습격
질병청은 건강에 영향을 줄 직접적 기후 요인으로 △폭염 △한파 △극한 기상 현상(폭우 태풍 가뭄 등) △자외선 등을 꼽는다. 이로 인한 대기질·수질 오염 심화와 생태계 교란이 곤충, 수인성 식품, 꽃가루, 미세먼지 등을 매개로 △온열질환 △한랭질환 △신장질환 △심혈관질환 △호흡기질환 △암 △안질환(눈병) △감염병 △정신건강 △알레르기 질환의 질병률과 조기 사망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만큼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질병청의 구상이다. 실제로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사망률은 3% 증가하고, 폭염이 7일 이상 지속되면 9% 이상 오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격한 기온과 환경 변화는 신체 적응을 어렵게 만들어 건강을 해친다. 기온 상승은 갑작스러운 체온 변화를 초래해 심뇌혈관계 및 호흡기계 질환 사망자를 늘린다. 최고기온 상승으로 자외선이 강해지면 피부염과 눈병을 일으킨다. 바닷물 온도 상승은 콜레라를 유발하는 비브리오균 농도를 높인다. 홍수는 말라리아, 일본뇌염, 뎅기열 등 감염병을 일으키는 매개 곤충을 증식시킨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제5차 평가보고서에서 온실가스가 지금 같은 추세로 배출될 경우 210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48%가 살인 폭염(더위로 인한 사망자 발생일이 연간 20일 이상)에 노출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신진대사 균형을 무너뜨리는 폭염
질병청의 최우선 대응 과제는 폭염에서 비롯하는 질환이다. 특히 온열질환은 기후변화 관련 질환 중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치명적이다.
인체는 열생산과 열방출 균형 조절을 통해 일정한 체온을 유지한다. 그런데 폭염에 노출되면 체온을 낮추기 위해 체내 열생산이 억제된 채 열방출 기제가 작동한다. 이때 심혈관계가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혈관계가 피부 혈관 확장, 발한, 호흡 촉진으로 열을 방출하고 심장이 이를 뒷받침하려 맥박을 촉진해 피부 표면 혈액량을 증가시킨다. 이 과정에서 심장에 부하가 걸리고, 탈수로 인해 혈액 점성도가 높아져 혈관을 막는 응고인자가 생길 위험이 커진다. 몸속 전해질은 균형이 깨져 신장 기능을 떨어뜨리는데, 체열 발산을 위해 기초대사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황에선 주요 장기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올해 발생한 온열질환자의 30.9%가 65세 이상 고령층인 이유도 심혈관계 기능이 약하고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가 많은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질병청이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간 통계를 살펴보면 폭염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심근경색증(허혈성심질환)은 환자 수가 매년 늘어나는 추세인데, 증가 폭은 폭염일수와 비례하는 양상을 보인다. 최근 12년 가운데 폭염일수가 15.5일로 가장 길었던 2018년 중 7월 심근경색증 환자 수는 3만15명으로, 전년 7월(2만7,047명)보다 11.0% 증가했다. 폭염일수가 3.9일이었던 2019년 7월(3만2,207명)은 전년 대비 환자 수 증가율이 7.3%, 통계 기간 내 최저 폭염일수(0.1일)였던 2020년 7월은 0.1%였던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폭염→수온 상승→수질 오염→감염병 증가'로 이어지는 경로도 질병청이 주시하는 과제다. 실제 바이러스 등으로 오염된 물·식품 섭취로 설사, 구토 등 위장관 증상을 일으키는 수인성 식품매개 감염병은 폭염일수와 비례해 늘어난다. 2018년 수인성 감염병의 집단환자 발생건수는 697건으로, 2020년(223건)의 3배를 넘었다. 이 가운데 2급 감염병으로 분류되는 장티푸스 감염 환자 수도 2018년(213건)과 2020년(39건) 사이에 5배 넘게 차이가 났다.
대기 오염물질, 폐는 물론 신경계까지 침투
매년 봄철 극심해지는 미세먼지도 기후변화가 빚은 건강의 적이다. 이상기후로 발생한 가뭄과 산불이 바람에 날리는 토양 먼지를 증가시키면, 작물 재배가 어려워진 땅에 화학비료·살충제 사용이 늘고, 그로 인해 토양이 척박해지면서 먼지를 일으켜 대기를 오염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편으로는 폭염·한파로 실내 냉난방 연료 사용량이 많아지면서 대기 중에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대기질을 악화시켜 호흡기에 손상을 준다. 손상 부위는 호흡기로 한정되지 않는다. 신경정신계에 영향을 줘서 정신건강까지 악화시킨다. 미세먼지는 사람에게 해로운 황산염과 질산염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많이 들이마시면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폐암 등 호흡기질환이 생길 위험이 크다. 폐의 모세혈관을 통해 초미세먼지가 혈관으로 들어가면 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을 유발하고, 우울증과 같은 신경정신계 질환이나 당뇨병과 같은 내분비계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다른 경로도 있다. 재해를 막을 수 없다는 무기력증과 '다음 재해의 피해자는 내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다. 이미 재해를 경험했거나 이상기후로 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다면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도 있다. WHO는 지난해 6월 "기후변화는 정신건강과 웰빙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경고하며 기후변화에 따른 정신건강 관리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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