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쓰레기, 우리가 치울 것” 운동권 588명의 반성문
15일 낮 서울 광화문 사거리는 뜨거웠다. 광복 78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 75주년을 기념해 열린 집회들의 인파와 교통 체증, 소음, 찜통더위가 한데 섞인 가운데 설거지를 선언한 사람들이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진원지인 성공회성당 앞에서 이들이 외쳤다.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우리가 치우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가 새 잔치를 벌일 수 있도록, 우리가 벌였던 잔치판은 우리가 설거지합시다!”
이날 공식 출범한 ‘민주화운동 동지회’ 회원들이었다. 민주화운동 동지회는 1970~80년대 누구보다도 뜨겁게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운동권이었지만 오늘날 ‘586 운동권’ 세력엔 비판적으로 돌아선 인사들이 주축이 돼 결성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던 주대환(현 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씨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이었던 민경우(현 대안연대 대표)씨, 1985년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을 주도했던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함운경(현 네모선장 대표)씨가 앞장섰다. 인명진 목사와 민미협·민예총 출신 최범 디자인 평론가 등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한 달 전부터 발족을 준비했는데 588명이 뜻을 같이했다. 운동권 경력이 전혀 없는 50대 여성이나 민주화 운동을 근현대사 교과서에서나 본 20대 대학생, 30대 직장인 등도 참여했다. 대한민국이 지금껏 이룬 성취를 긍정하고, 앞으로의 역사도 계속 눈부시기를 희망하는 시민들이다.
왜 오늘 여기 와야 했는지 각자 이유를 말했다. 고교 국어 교사인 이기정씨는 1980년대 두 차례 투옥됐고, 그의 어머니도 아들 따라 민주화 운동에 동참해 두 차례 옥살이를 했다. “끝없이 추락하는 민주화 운동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연 이씨는 “운동권 사람들 다수가 ‘조국 사태’를 강력 비호하며 그 어처구니없는 일에 민주화 운동의 명예를 마구 팔아먹고 있는 모습에 경악했다”고 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전교조에서 탈퇴한 그는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 참여자들을 입시 비리나 옹호하는 한심한 위선자로 생각할까 두렵다. 초심을 잃어버린 운동권 세력 때문에 저는 평생의 자부심을 잃어버렸다”고 성토했다.
작가 오진영씨는 “스물일곱 아들을 위해 나왔다”며 “언젠가 자기 이름을 내건 이발소를 차리고 싶다는 아들의 꿈이 이루어지려면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잘 살아야 하는데 운동권 세력은 국민 앞날엔 관심 없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려 다시 집권하는 방법만 생각한다”고 했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인 의사 박은식씨는 “민주당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민주당 내 운동권 세력은 이 나라를 망치는 사람들이라고 깨닫게 됐다”면서 “찐으로(진실로) 운동권이셨던 분들이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설거지’를 자청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20대 김건(신전대협 공동의장)·이황헌(국민의힘 대전시당 대변인)씨 등은 “후배들이 성심껏 도울 테니 선배들께서 종북 세력과 결별하는 기회를 마련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는 “주사파가 멋대로 민주화 운동의 상징 자산을 독점해버린 현실을 바꿔야 한다”면서 “대한민국 역사에 새순을 틔우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했다. 이날 출범식은 “586 설거지를 반드시 완수해 달라”는 뜻에서 이한솔씨가 청년을 대표해 함운경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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