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베짱이와 소설가

문형 소설가 2023. 8.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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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 소설가

해거름쯤 반송 꽃다래공원 주변을 산책하고 있는데 매미 소리가 한창이었다. 어슬렁어슬렁, 요것들이 어느 나무에 붙어 울고 있는지를 살피다가 문득. 매미가 ‘울고 있다’고 해야 맞는지 ‘노래 부르고 있다’고 해야 맞는지, 표현상의 문구를 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물학적으로야 그들 나름의 짝짓기를 위한 구애 소리 같은 의사소통일 테지만.

벤치에 앉아 몇 녀석들의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를 귀 기울여 듣다가, 시장 쪽으로 내려와 한잔하러 튀김집에 들렀다. 명태전을 놓고 요구르트 섞은 막걸리를 들이켜는 도중, 옆 테이블에서 혼자 술 마시고 있던 칠십 중반의 노인이 물었다. 날 더러 무슨 일 하느냐고. “그냥 놉니다”했더니 “놀아서야 되는가. 베짱이도 아니고”하곤 뒷말을 끊어버렸다.

소설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극과 극이다. 소설 쓴다고 하면 좀 고상하게(?) 보는 축이 있고, 방금의 내 대답과 같이 논다고 하면 그야말로 놈팡이처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장편소설 쓴답시고 몇 년을 씨름하다 보면 딱히 일하는 모습으로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시나 수필, 단편소설 같은 장르는 비교적 단기간 내에 결과를 볼 수 있으니까 창작을 일의 개념으로 어느 정도 설명하기 쉽다. 하지만 장편소설은 쓰는 일, 또는 지우고 다시 쓰는 일보다 머릿속으로만 이랬다저랬다 하는 시간이 많아, 겉으로 보기엔 흡사 노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에게 어제는 무슨 상상을 했고, 오늘은 어떻게 스토리를 끌고 나갈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 그 노인이 가고 나서 내가 진짜로 베짱이처럼 놀고 있는지를 돌이켜보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개작하기로 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개미는 삼복더위에도 쉬지 않고 땀 뻘뻘 흘리며 곳간에 양식을 차곡차곡 모았다. 축적된 곡식에서 발효된 알코올을 맛본 새끼 개미들은 너나없이 뭔가 다른 분위기의 세상살이를 원했다. 어차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인데 놀 땐 놀아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집단생활 곤충답게 이런 풍조는 급속하게 퍼져갔다.

한편 베짱이는 여름내 죽으라고 노래만 불러제꼈다. 남들이야 놈팡이라 하든 말든. 그러다 세태가 변하는 걸 감지했다. 옳거니! 취미로만 노래를 부를 게 아니라 남들에게 재미를 주자. 그 대신에 돈을 받아 생계를 챙기자. 이런 생각에 다다른 베짱이는 콘서트 티켓을 팔고 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솔로 콘서트를 하다가, K-팝 그룹도 뜨는 마당에 난들 못할쏘냐 하고 떼창을 선도할 그룹 창단 아이디어를 냈다.

떼창 하면? 그렇지, 매미들이 있잖은가. 목청소리 뛰어나지, 종에 따라 음색 다양하지. 남들에겐 노는 것처럼 보이는 베짱이만의 타고난 기획에다 매미들의 별별 노랫소리에 개미들은 미치고 환장을 했다. 개미들은 그야말로 개미 소리도 못 내는데 저들의 떼창을 들어보라지. 심지어 인간들에게까지 계절 감성을 주지 않느냐고. 벌어 놓은 재산 이때 쓰지 언제 쓰겠느냐며 개미들이 우르르 몰려든 통에, 곤충 가수들은 말 그대로 떼돈을 벌었다.

이 정도 되면 인간들의 머리는 하나로 꽂힌다. 그 많은 돈 누가, 얼마를 벌었느냐에. 이 곤충 그룹은 추석 명절에 수입금을 나누기로 계약서까지 썼건만. 8월이 다 갈 무렵, 이슬을 맞은 매미 모두가 객사하고 말았다. 상속자에게 나누어 주려 해도, 인간들이나 7년 후에 매미 자식들이 성충이 된다는 걸 알지, 당사자인 베짱이와 상속받은 그의 자식들은 매미들에게 후손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수입금을 나눠 주겠는가. 하여 떼돈은 베짱이의 독차지가 되었다는 얘기다.


나도 ‘놀아서는 안 되지’라는 소리를 듣든 말든, 소설로 떼돈을 한번 벌어봤으면 좋겠다.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창작 그 자체를 즐긴다지만, 자기의 창작물이 밀리언 셀러 되기를 꿈꾸지 않는 작가는 없지 싶다. 그런 꿈을 안고 오늘도 내일도 베짱이처럼 빈둥대지 않을까. 머릿속은 육체노동보다 몇 배 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걸 그 누가 알아주리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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