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 수도 경찰 1200명이 관둔 이유
미국 사회에서 경찰은 ‘굳건한 공권력’의 상징이다. 규칙 위반, 불법 행위에 지체 않고 즉각 개입하는 것이 당연하다. 경찰관의 정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두 팔에 수갑이 채워진다는 걸 미국인들은 본능으로 안다. 거리를 불법 점거해 교통을 마비시켜도, 경찰 버스를 때려부숴도 경찰이 손 하나 까딱 못하는 한국의 풍경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부임 초기엔 주차된 경찰차만 봐도 주눅 들었다. 그런데 요즘 미국 경찰이 이상하다. 미 수도 워싱턴DC에서 경찰 공권력이 휘청거리는 현장을 목격했다.
며칠 전 오후 DC 북부 애덤스모건 유흥가 한복판에서 한 흑인 경찰관이 주위를 연신 둘러보고 있었다. 불과 이틀 전 새벽 총격 사망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불안한 눈빛으로 권총을 만지작거리는 그를 지켜보던 한 노숙자가 비웃었다. “총알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데 경찰이 뭘 할 수 있겠어.”
또 다른 총격 사건이 발생한 U스트리트 사거리에선 경찰관이 순찰차 창문을 일부만 열어놓은 채 주변을 잠시 살피다 자리를 떴다. 바로 맞은편 골목에 마약에 취한 남성이 휘청거리고 있었지만 어떤 제지도 없었다. 올해 이곳 살인 증가율은 28%로 20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차량 절도 증가율이 115%, 강도도 61% 증가했다.
1년 만에 치안이 이 지경까지 이른 건 미 민주당이 경찰 권한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킨 탓이 크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DC 의회는 작년 경찰이 용의자의 목을 과도하게 조르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조항 등을 담은 ‘경찰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3년 전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의식한 조치다.
과도한 공권력 행사는 통제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범죄 대응을 위한 정당한 물리력 행사까지 제한하는 건 다른 문제다. 이 법안은 도주하는 용의자가 즉각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판단되는 상황 등 외엔 경찰이 사실상 차량 추격을 할 수 없도록 했다. 경찰이 시위대 위협을 과대평가해 집회를 제지한 적은 없는지 과거 사례까지 조사하도록 했다. 반면 차량 절도 등 범죄자들에 대한 형량은 낮췄다. 경찰 내부에선 “범죄 대응을 하지 말라는 것”이란 반발이 나왔다.
이 법안은 결국 연방의회에서 폐기됐다. 범죄가 급증하자 DC 민주당 의원들은 경찰 권한을 다시 강화하는 법안을 허겁지겁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법안 발의 이후 1200명에 달하는 DC 경찰이 배지를 반납했다. 다른 경찰서로 근무지를 옮긴 것도 아니고 회의감에 경찰 직업 자체를 그만둔 사람들의 숫자가 이렇다. 경찰 인력 부족은 범죄 대응 약화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한번 무너진 경찰의 기강과 공권력은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권력이 무너지다시피 한 한국 경찰이 필요한 경찰력을 회복하는 것은 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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