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아버지의 답안지
문학의 가장 오래된 테마는 아마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빚어낸 기쁨, 행복, 슬픔, 좌절, 분노 같은 감정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다음 오래된 테마는 무엇일까. 아마 가족일 것이다. 사람은 가까운 곳에서 이야기를 찾는 법이니까.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자식 사이는, 굳이 셰익스피어를 길게 거론할 것도 없이, 길항과 연대를 교차하며 유구하게 이어져온 문학의 탐구 과제다. 지난해 한국문학 최고 베스트셀러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사람들은 이 관계에 마음이 끌린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끝내 알 수 없었던 아버지를 딸이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무렵 모처럼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기억이 났다. “날씨가 꽤 쌀쌀해졌어요, 감기 안 걸리셨죠?” “나는 괜찮다. 너는 네 걱정이나 해라.” 한국의 부자지간이 대개 그렇듯 나와 아버지도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별일 없으시죠?” “경기가 안 좋아서 큰일이다. 서울은 그래도 좀 괜찮지?” “여기도 엉망이죠, 뭐.” 잠깐의 정적 후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 “…나아지겠지?” 질문인지 아닌지 모를 그 말을 들을 때, 조금 슬펐던 것 같다.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당신의 답안지가 있는 분이었는데 그런 아버지가 나를 향해 나아지겠느냐고 묻고 있었다. 나에게는 더없이 문학적인 순간이다.
베이비부머인 아버지 세대를 수식하는 말이 여럿 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세대, 유사 이래 가장 많은 기회를 부여받은 세대…. 그 말에 얼마간 동의하면서도, 사회가 노쇠해가는 그들에게서 애써 눈을 돌리고 있다는 생각은 피할 수 없다. 문득 한국문학에 굳건하고 강인한 아버지가 자주 등장하던 때를 떠올린다.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 맞는 걸까,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까. “나아지겠지?” 하는 물음에 말뿐이라도 자신 있게 나아질 거라고 답하고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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