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한국인 학살 부정하는 고이케 도쿄도 지사
매년 보내던 추도문도 끊고
한국학교 이전도 백지화시켜
日지식인들이 嫌韓 막아줘야
일본에서 매년 9월 1일은 한일 관계에 관심을 가진 일본인들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날이다. 100년 전 이날 발생한 관동(關東) 대지진으로 6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억울하게 학살당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식의 유언비어 때문에 ‘후테이센진(不逞鮮人)’으로 불리던 한국인들이 무참히 창에 찔려 죽었다. 너무도 처참한 광경에 일본인 작가 아키타 우자쿠(秋田雨雀)는 관동대지진 발생 2주 후 긴급 발표한 ‘죽음의 도시’에서 탄식했다. “인간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우리 일본인은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아 온 걸까.”
당시 희생된 한국인을 추도하는 행사가 1970년대부터 매년 개최돼왔다. 이 추도식에는 극우 성향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를 비롯, 역대 도쿄도 지사들이 빠짐없이 추도문을 보내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형언하기 어려운 학살에 비해서는 아주 작은 추도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이런 전통은 2017년부터 중단됐다. 2016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현 지사가 취임하면서부터다. 그는 취임 첫 해를 제외하고는 한국인 희생자를 위한 추도문 발송을 매년 거부했다. 일본 역사가 기록한 학살을 아예 부정한다. 올 초 도쿄도 의회에서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질의에 대해 “무엇이 명백한 사실이었는지에 대해선 역사가가 연구해 밝혀야 할 일”이라고 답했다.
고이케 지사는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6월 ‘관동 대지진 100년 교훈’ 제목의 기획 기사에서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켰지만 요지부동이다. 이 신문은 “유언비어를 접하고 각 지역에서 자경단을 결성, 재일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묶어서 폭행해 죽게 했다”고 명시했다. 올해 학살 100주년을 맞아 최소한의 문제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고이케의 혐한은 뿌리가 깊다. 고이케는 2010년대 중반 일본 사회의 우경화 바람을 타고 당선될 때 ‘제2 한국학교 설립 계획 백지화’ 공약을 내걸었다. 그의 전임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지사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요청으로 동경한국학교의 확대 이전을 도와주다가 우익의 표적이 돼 낙마하자 극우 정책을 취했다. 고이케가 당선된 후 첫 일성(一聲)이 바로 한국학교에 도유지(都有地)를 유상 임대하기로 한 결정을 취소한 것이다.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던 2020년 7월 동경한국학교를 찾아가 취재하면서 고이케가 정말로 못할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신주쿠에 있는 한국학교는 초·중·고 한국 학생 1400명이 다니는데 시설과 부지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운동장이 좁아서 축구는 절대 금지다. 교실이 부족해 본관 지하의 회의실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햇빛이 거의 안 드는 지하 교실에 책걸상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지하실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치 지하 창고를 들어갔다가 나온 느낌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서울의 일본학교가 2010년 상암동의 최신 건물로 이전할 수 있게 한 서울시에 경의를 표했다. 한일 간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국에 와 있는 일본 청소년 교육을 가로막는 ‘막장 행정’을 하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고 할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서도 드러났듯이 조그마한 빈틈이 있으면 반일(反日)로 연결시키려는 세력이 한국에 존재한다. 언제든 죽창가가 다시 불리고 ‘NO 재팬’ 운동이 벌어질 수 있는 환경이 여전하다. 이럴 때 일본의 영향력 큰 정치인이 왜곡된 역사관으로 한국인의 가슴을 후벼 파고, 한국 청소년들을 열악한 환경에 방치한다면 한국의 반일 세력이 창궐할 수밖에 없다. 관동 대지진 100주년을 기점으로 과거의 갈등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본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고, 희망하고,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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