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7] 범죄자와 가족

김규나 소설가 2023. 8.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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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길 떠나야겠어. 사람들의 입방아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구나.”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난 이사 가고 싶지 않아요.” 갑자기 엄마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사람들이 우리가 여기 사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우리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린 것이다. 엄마의 삶과 내 삶은 물론 아버지 자신의 삶마저도.

- 비외른 잉발젠 ‘우리 아빠는 도둑입니다’ 중에서

새만금 잼버리는 특정 지역과 조직위원회의 축제였다. 공식 예산액 1170억원 중 870억원이 조직위 운영비 및 사업비 명목으로 사라졌다. 야영장 실태를 보면 시설비 130억원도 기반 시설에 쓰였을지 의심스럽다. 99번의 해외여행, 127억원의 후원금도 챙겼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주변 도로, 공원, 공항 건설 등에 투입되었거나 예정된 사업비는 20조원에 달한다.

철근 누락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악몽으로 바꿔 놓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임원들의 사직서를 받아 거듭나겠다고 했다. 신도시 투기 의혹 당시 ‘내부에선 신경도 안 쓴다. 차명으로 해놨는데 어떻게 찾냐? 투기하며 정년까지 꿀을 빨겠다’는 글이 직원 게시판에 올라왔듯, 공기업의 부정부패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절도 혐의로 아빠가 경찰에 체포되자 소년과 엄마는 이웃에게 따돌림당한다. 범죄자의 가족을 비난하는 것은 옳은가, 소설은 묻는다. 가족은 아빠의 도둑질 덕에 부족함 없이 살았다. 피해자와 이웃이 가해자 가족에게 친절하긴 쉽지 않다. 내 가족이 돌 맞는 일 없도록 힘들어도 정직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

정치와 세금 관련 범죄는 규모가 크고 관련자가 많을수록 원상복구, 피해보상이 없다. 하급 관리자만 잘라내고 임원은 사표를 받아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꿔 앉히면 책임은 끝난다. 기소돼도 재판은 길고 처벌은 약하다. 피의자가 사고로 죽거나 자살하면 수사는 종결된다. 남은 가족은 성실한 일반인보다 풍족하게 살 수 있다. 헐렁해진 국고는 국민의 고혈로 금세 채워질 것이다.

범죄가 가족 사랑, 성공과 부의 원천이 되었다. ‘왜 우리 남편은 도둑질도 못 하나, 아빠가 크게 한탕하고 죽어주면 좋을 텐데….’ 무서운 가족이 탄생하지 않을 거라 안심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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