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36] 규제와 소비 위축
현직 검사가 청탁과 함께 고급 승용차와 명품 핸드백을 선물받고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바탕으로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막상 법을 시행하니 볼멘소리가 커졌다. 소비가 위축된다는 항변이었다.
그런 일은 옛날에도 있었다. 6·25전쟁 중 공무원의 다방과 고급 식당 출입이 금지되었다. 국무총리 지시에 따라 업소를 급습해서 손님의 신분증을 압수하고, 공무원들은 직장에 통보했다. 그러자 다방과 요정 주인들이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쳤다. 결국 휴전하기도 전에 규제가 풀렸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출입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다.
공무원이 그 정도이니 일반 시민을 상대로 금욕을 강요하는 것은 성공하기 힘들다. 1950년 3월 정부는 식량난을 이유로 매주 수요일을 ‘무주무육일(無酒無肉日)’로 지정하고, 술과 고기를 파는 식당을 단속했다. 국민이 아우성치자 매월 25일 하루만으로 축소되었다가 이내 그것도 흐지부지되었다. 결국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무주무육일을 폐지했다. 조선일보가 그 소식을 1면 기사로 다뤘다(1957년 4월 27일).
술과 고기뿐만 아니라 춤도 금기 대상이었다. 1947년 12월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이 “해방의 경축 분위기를 이용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상술이 과도하다”면서 ‘땐쓰홀’의 불법 영업을 단속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1954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전국 땐쓰홀 일제 폐쇄령이 내려졌다.
그 와중에 은행원들이 재수 없게 붙잡혔다. 퇴근 후 삼삼오오 춤을 배우던 한국은행 목포지점 여직원 4명이 단속에 걸렸다. 경찰서에서 호되게 조사받던 그들은 “교양 삼아 운동을 배웠을 뿐”이라고 해명하면서 “사교 땐쓰를 허하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춤을 퇴폐 풍조로 보는 시각은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K팝 댄스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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