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일도 엘리제 조약 맺을 때가 됐다
지난 7월 유럽의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는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아태 4국 정상이 참가했다. 작년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에 이어 두 번째다. 필자가 처음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를 방문한 1994년에는 아직 냉전 시대의 혼란이 남아있던 시절로, 나토를 확대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3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나토 정상회의에 아태 4국 정상이 참석하는 데다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했고 우크라이나의 가입도 논의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토의 변화만큼이나 한·일 간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 리투아니아 나토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했다. 올해만 네 번째다. 오는 18일에는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리고 3국 정상회담을 정례화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한·일 관계는 1990년대 ‘준(準)동맹(quasi alliance)’이라는 말이 나온 지 3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미래 방향성이 보이는 것 같다. 유럽에서 프랑스·독일이 하는 역할을 아시아에선 한·일이 맡자는 이야기다. 필자는 줄곧 아시아 협력·통합의 중심 축이 한·일 협력이라고 주장해왔다. 한·일 관계를 프·독에 비유할 때는 단순한 안전 보장 협력을 넘어선, 문화적·사회적 상호 이해의 기반 위에 민주주의의 동지 국가로서 지역 안정화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가깝고도 닮았지만, 역시 다른’ 애증의 한·일 관계는 프·독과 비슷하다. 이런 한·일에는 엘리제 조약(프랑스·독일 화해협력조약)과 같은 조약이 적합하지 않을까.
올해는 엘리제 조약 체결 60주년이다. 아데나워 서독 총리와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1963년 1월 22일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조약에 서명한 지 60주년인 올해 1월 22일, 독일과 프랑스 정치인들은 소르본 대학에 모여 성대한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프랑스·독일 간 우호 관계의 기반인 엘리제 조약은 그 내용이 매우 포괄적이다. 양국 정상은 아무리 적어도 매년 2회는 만나야 한다. 외교부 장관은 최소 3개월에 한 번 씩은 만나, 서로 협조해야 한다. 양국 국방부 장관들도 최소 3개월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전략·전술을 맞춘다. 양국 군대의 인적 교류와 장비·예산 협조, 민간 방위 분야의 협력 등이 엘리제 조약에 기술돼 있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대목은 외교·국방뿐만 아니라, 교육·청소년 정책 담당자들도 2개월마다 정기 모임을 갖는다는 점이다. 교육 분야에선 독일과 프랑스 국민이 상대국 언어를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 조약에 강조돼있다. 독일 학생이 프랑스어를, 프랑스 학생이 독일어를 배우도록 양국 정부가 장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류 드라마나 K팝이 세계적인 콘텐츠로 부상했고, 이전보다 부쩍 많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무척 닮았으면서 어떤 대목은 근본적으로 다른 언어인 일본어와 한국어를 양국 젊은이들이 서로 배우는 건, 상대국의 문화·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기적으론 양국을 잇는 토대가 될 것이다.
엘리제 조약은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18년이 흐른 뒤에야 아데나워와 드골이라는 두 정치인이 일군 ‘전설’과도 같은 일이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는 둘 다 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신뢰성에 적잖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은 소련과는 데탕트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고 영국과는 핵잠수함을 축으로 하는 특수한 ‘핵동맹’으로 관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미국의 약속(commitment)이 얼마나 지속할지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서독의 아데나워 총리는 당시 핵 개발에 나선 프랑스를 훨씬 신뢰할 만한 파트너라고 여겼다.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바로 옆 나라와의 관계를 보다 확고한 토대 위에 올려놓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프·독이 느꼈던 당시의 필요성은 현재 한·일 관계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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