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다시 부활한 세습정치 [글로벌 이슈/하정민]
실각 후 잉락, 매제 솜차이 웡사왓을 모두 총리로 만들었던 탁신 전 총리는 이제 딸 패통탄을 통한 대리청정을 꿈꾼다. 패통탄이 이끄는 프아타이당은 5월 총선에서 2당에 그쳤다. 그러나 1위 전진당이 군부의 반대로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자 군부와 손잡고 연정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패통탄은 총리 후보로 부친과 가까운 부동산 재벌 세타 타위신을 내세웠지만 세타가 일종의 ‘바지사장’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집권에만 성공하면 언제든 패통탄이 총리에 오를 여건이 마련되는 셈이다. 한 집안에서 총리 4명이 나오는 ‘족벌정치의 끝판왕’ 현실화가 머지않았다.
2004년 집권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아예 ‘3대 세습’을 노린다. 당초 그는 “70세가 되는 2022년 물러나겠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어영부영 퇴임을 미루더니 2023년 또한 반이 흘렀는데도 물러날 기미가 안 보인다. 36세인 차남 리훙이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전 징검다리 노릇을 할 인물을 찾지 못한 탓이라는 게 정설이다.
리 총리의 부친 리콴유 초대 총리 또한 31년간 집권했고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전 고촉통 전 총리를 징검다리로 삼았다. 리훙이의 모친은 싱가포르 국영 투자사 테마섹홀딩스의 호칭 전 최고경영자(CEO)다. 사실상 1당 체제이고 별다른 경쟁자도 없으며 부모가 정재계 최고 권력자인 리훙이가 권력을 물려받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다. 부유하지만 태형 등 억압된 사회 체계를 지닌 싱가포르를 ‘잘사는 북한’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대대손손 세습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 두 나라의 공통점이다.
서구 언론은 5월 대선 승리로 사실상 종신집권 기반을 닦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 또한 차남 빌랄에게 권좌를 세습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빌랄은 지난달 부친이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날 때 동석했다. 2014년에는 빌랄이 부친과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의 비자금 은폐 방안을 논의하는 녹음 파일이 폭로돼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공직에 나서진 않았지만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1세기가 도래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곳곳에서 나타나는 세습 정치의 현장을 보노라면 민주 선거제도가 소수의 정치 독점, 봉건사회의 부활을 부추기는 것 같아 착잡하다. 이 4명의 권력자는 선거로 집권했고 이를 통해 자녀에게 권력을 이양하려 한다. 선거 부정이 조금도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19, 20세기처럼 총칼로 위협하는 전제 군주나 군부 독재자는 없으니 이들을 뽑은 사람들의 민의(民意) 또한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가 21세기 신흥 왕조의 탄생에 이바지하는 시대. 아직도 세계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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