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금희]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이제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역사학자 강동진의 ‘일제의 한국침략정책사’(1980년)는 일제 정부 기록을 통해 그 당시 개개인들의 저항적 면모를 뚜렷하게 환기할 수 있는 자료였다. 1919년 일제는 지방 유지들을 대상으로 ‘지방선전강습회’를 실시해 만찬을 베풀며 친일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애썼는데, 강연이 다 끝나기도 전에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그렇게 말했다가는 “우리 생명이 없어진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총독이 선사한 탁상시계도 도랑에 버렸다고 문서는 보고하고 있다. 일제는 민심을 살피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민정시찰 자료를 수집했는데, 한 보고자는 조선 민심은 한낱 여관 주인조차 “자치라든가 내정독립이라는 것은 결코 우리의 속마음이 아니다. 우리는 절대로 독립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실정이라고 전하고 있다. 대대적인 선전정치를 벌였지만 거의 효과가 없다는 보고서였다. 이러한 장면들, 행사장을 나온 조선인들이 그 당시 귀하디귀한 신문물 탁상시계를 주저 없이 내다 버리거나, 카운터를 무료하게 지키며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는 듯한 여관 주인이 내놓는 조국의 미래에 대한 자기 신념 등은, 그 시절을 살아간 사람들과 만나는 결정적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 후 일제가 패전하고 조선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은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했다. 식민지하 조선인들이 감내해야 했던 울분과 분노가 해방을 맞아 일순간에 분출하면서 ‘잔류 일본인은 기어서라도 당장 떠나라’는 격문이 나붙던 시절이었다. 부산항을 통해서만 67만여 명의 일본인이 빠져나갔는데, 그럼에도 이곳을 등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인과 결혼해 이주해온 일본인 여성들이었다.
사진가 김종욱의 논문 ‘근대기 조선 이주 일본인 여성의 삶에 대한 연구’는 잔류 일본인 여성의 삶을 기록하고 촬영한 소중한 자료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잔류 일본인 여성들이 여생을 보내고 있는 나자레원을 알게 된 뒤 오랫동안 그들의 육성을 듣고 초상 사진을 찍었다. 그 이야기와 사진을 눈에 담으며 계절들을 보낼 때 나는 자주 마음이 아파 읽기를 멈춰야 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이른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을 적극 장려하고 나섰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많은 일본 부모들이 딸의 그런 결혼을 반대했다. 대부분 가족들의 뜻을 어기면서 사랑을 선택해 조선으로 왔고 이후 펼쳐진 고통스러운 삶을 견뎠다. 숱한 일본인 처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질 만큼 비극적인 현실이었다. 나자레원의 한 할머니는 “육십 년을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이방인으로 배척받으며 살아간 이들을 위한 이 시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설립자인 김용성은 부친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청진감방에서 옥사한 사람이었다. 마지막 면회 때 그는 “슬픈 얼굴을 하지 마라. 나는 부끄러운 삶을 살진 않았어. (…) 정치로는 인간을 구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하는 것은 교육이나 종교나 예술이 아니면 안 된다. 내 말 명심해라”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듣는다.
그 뒤 만주를 떠돌며 고학으로 근근이 학업을 마친 그는 해방 후 함경북도 회령으로 돌아와 보육원을 세웠고 한반도에 잔류한 일본인 아이들에 대해 알게 된다. 개인사적으로는 아버지를 죽인 일제에 대한 반감과 원망이 누구 못지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일본인 아이들을 보호하느냐, 친일분자냐 하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그는 보육원을 포기하지 않았고, 저 일본인 아이들의 존재는 “우리 어른들의 양심을 시험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조선인이라 차별받던 우리들이 정녕 같은 행위로 되갚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이후 그는 잔류 일본인 여성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 귀국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서류를 만들어 주었고 갈 곳이 없는 이들에게는 거처를 제공했다. 사적 복수에서 나아가 더 큰 형태의 용서를 만들겠다는 한 개인의 양심에서 나는 묵직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때마다 다양한 이유로 고통스러운 역사와 영광스러운 역사를 기린다. 그 목적도 어쩌면 어떤 종류의 ‘시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억과 기념은 오늘의 우리 현실을 향한 죽은 자들의 물음이다. 그렇게 해서 되살아난 이들이 내놓는 호소에 귀를 기울일 때 속단할 수 없는 미래의 가능성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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